동물학대로 인해 사람을 두려워하고, 뼈 밖에 안 남은 개가 카메라를 보고 있다. 플리커

동물을 어떻게 학대해야 법은 실형을 내릴까? 지난 13일, 개 160여 마리를 방치하고 그중 79마리를 사망하게 한 펫숍의 주인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당시 현장 사진 속 개들은 늑골과 두개골이 훤히 드러난 채 죽어 있었다. 재판부도 개들이 병과 굶주림에 서서히 고통스럽게 죽어갔을 거라고 판단하면서도 실형을 선고하지 않았다. 치료비 때문에 병든 개는 방치했지만 건강한 개는 굶어 죽게 하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그렇구나. 병든 개는 굶어 죽어도 괜찮은 거구나.

버림 받아 오랜 시간, 떠돌아 다닐 수 밖에 없었던 개. 픽스히어

동물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이런 장면에 꽤 익숙하다. 애니멀 호더(많은 수의 동물을 집착적으로 키우면서 적절한 환경과 돌봄을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의 집이나 폐업한 생산 판매업소에서 발견되는 동물 사체의 모습은 대부분 비슷하다. 질병과 굶주림에 시달리다가 죽어서, 백지장도 이보다 얇을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동물들의 뱃가죽은 들러붙어있다. 이런 사건에 익숙해지는 게 무섭지만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보호하지 못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다.

좁은 유리 속에 갇혀 새로운 가족을 기다리는 개. 플리커

이 펫숍이 더 악랄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운영방식 때문이다. 펫숍은 사람들이 키우다가 버리는 개를 받아주면서 돈을 받았다. 돌보다가 입양을 보내겠다는 명목이었지만 제대로 돌보지 않았고 방치해서 죽였다. 무엇보다 나쁜 것은 개를 버리는 사람들이 평생 가져야 할 죄책감과 수치심을 돈 몇 푼으로 털어줬다는 점이다. 알량한 돈으로 자신은 개를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했다. 정확히 얼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비쌌다면 그냥 버리지 돈 주고 펫숍에 버릴 사람은 없을 테니까 알량하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버려지고 고통 받은 당사자는 개인데 펫숍이 무슨 자격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나.

재판부의 시각도 놀랍다. 펫숍 주인이 실형을 면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건강한 개들은 굶어 죽도록 두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병든 개의 죽음은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런 시각은 우리 사회의 건강 약자를 배제하고 무시하는 뿌리 깊은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 사회는 장애가 있어나 병이 있는 이들의 목소리에 관심이 없다. 권력, 자본이 있거나 그들 보기에 좋은 외모나 신체를 가지지 않은 이들은 모두 주변화되어 버린다. 심지어 ‘아픈 인간’도 아닌 ‘아픈 개’라니 오죽하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개의 존재 이유는 예쁨과 귀여움이지 병들고 추함이 아니다.

유기견 보호 센터에서 새로운 가족 만나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개들. 픽스히어

지난봄 유기 동물 보호소에 갔을 때다. 뙤약볕 밑에서 똥을 치우고, 산책을 나가는 등 한바탕 일을 하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누군가 보호소 문을 두드렸다. 길에서 헤매는 아이를 구조해서 왔다고 했다. 데리고 온 개는 셰퍼드였는데 나이가 많아 보였고 관절염이 있는지 걷는 게 불편했다. 이곳에서는 유기 동물을 받지 않고 구청에 신고해야 한다고 절차를 알려줬다. 그런데 함께 온 사람과 개는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가자고 하자 몸이 불편한 개는 자연스럽게 몸을 돌려 함께 걸었다. 어기적거리면서 사람을 따라 걷는 개. 병들고 늙은 개의 운명은 전적으로 함께 걷는 사람의 생각에 달려있었다.

개는 어떤 존재일까 함께 있는 것만으로 즐거운 가족 아닐까. 픽스히어

반려동물 암 전문 수의사인 세라 보스톤의 책 <차라리 개인 게 낫겠어>에서 저자는 보호자의 생각이 암에 걸린 개의 운명을 좌우한다고 말한다. 개가 암임을 알렸을 때 “암이면 치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하는 보호자들이 많다. 어떤 암은 많은 만성질환보다 오히려 치료가 쉬운데도 말이다. 물론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보호자에게 개가 어떤 존재냐는 것이다. 보호자에게 개가 털 달린 자식이라면 치료 결정은 빠르게 내려진다. 반면 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면 결과는 비관적이다. 생명의 가치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고, 개의 삶은 사람의 생각에 따라서 송두리째 위태로워진다. 저자의 어머니는 암 수술 전문 수의사를 딸로 두었으면서도 평생 “개에게 암 수술은 절대 시키지 않을 거야. 수술비가 얼마라고? 세상에나!”라고 말하는 분이었다. 그런데 14년을 함께 산 개가 암 진단을 받자 부지런히 돈을 마련한 후 수술을 결정한다. 평생 가족에게 많은 것을 주었으니 두 번째 삶의 기회를 얻을 자격이 있다는 이유였다. 어머니의 변화가 놀랍고 반갑지만 14년을 함께 한 개가 아니라도, 펫숍에 있더라도, 인간과 관계를 맺은 모든 생명은 아프면 치료받고, 보살핌을 받을 권리가 있다.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차라리 개인 게 낫겠어>, 세라 보스톤,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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