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의 이력은 이채롭다. 명문 프린스턴대에서 건축학을 전공하다 우연히 연극을 접하고 배우가 됐다. 그는 1941년 영화 ‘필라델피아 스토리’로 아카데미영화상 남우 주연상을 받으며 배우로서 절정을 맞았다. 하지만 그는 수상 직후 활동을 중단했다. 폭격기 조종사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기 위해서였다. 할리우드 스타의 참전은 스튜어트가 처음이다. 유약한 외모의 스튜어트는 남성미를 내세웠던 동료 배우 존 웨인이 참전하지 않자 경멸했다.

▦ 미국 정부는 2차 세계대전에 뒤늦게 참전을 결정하면서 선전전 방법을 놓고 고민했다. 나치는 이미 당대 주류 미디어인 영화를 선전활동에 적극 활용하고 있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이 만드는 세계 최고수준의 제품 중 하나가 영화”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정부가 당시 할리우드 유명 인사들을 차출하려 하자 영화인들이 먼저 자원했다.

▦ 존 포드와 윌리엄 와일러, 존 휴스턴, 프랭크 카프라, 조지 스티븐스가 당시 자원 입대한 유명 감독들이다. 군에 입대하기에는 모두 40대 안팎의 늦은 나이였다. 후방에서 배우들과 함께 시나리오대로 선전영화를 만들어도 됐지만 이들은 모두 전방으로 갔다. 폭탄이 떨어지고, 비행기가 추락하는 전투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국민에게 전황을 제대로 알리려 했다. 와일러는 폭격기에 탑승해 수많은 출격과 전투 장면을 촬영하다 고압을 견디다 못해 한쪽 귀 고막이 터졌다.

▦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감독들의 삶은 전쟁 이후 달라졌다. 코미디로 일가를 이뤘던 스티븐스는 더 이상 웃음 충만한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나치의 유대인수용소를 최초로 촬영(다큐멘터리 ‘나치 강제수용소’)하기도 한 그는 종전 후 ‘젊은이의 양지’(1951) ‘안네의 일기’(1959) 등 사회성 짙은 영화를 연출했고, ‘자이언트’(1956)로 아카데미상 감독상을 받았다. 와일러는 난청 장애를 딛고 만든 영화 ‘벤허’로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참전 후 더 의미 있는 삶을 산 할리우드 영화인들의 모습은 25일 숨진 미국 ‘애국의 아이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삶과 닮았다. 국내 네티즌들은 미국을 ‘하늘이 돕는 위대한 나라’라는 뜻의 ‘천조국’이라고 칭한다. 미국은 하늘이 돕기 전 스스로를 돕는 나라 아닐까.

라제기 문화부장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