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블랜드 병원서 보관하다
저장고 오작동 탓 수천개 손상
낙태문제 결부돼 논란 가중
난자와 배아를 담은 캡슐이 냉동 보관소에 저장돼 있는 모습. 게티이미지

냉동 보관 중이던 인간 배아가 병원 실수로 훼손됐다면 이는 자산 손실인가 과실치사일까?

올해 초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소재 한 병원에서 냉동 보관돼 있던 수천 개 배아가 손상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같은 물음을 두고 법정 공방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3월 클리블랜드에 위치한 병원인 유니버시티 호스피털스는 냉동 저장고 오작동으로 보관 중이던 4,000여개의 배아와 난자를 잃었다. 특히 내부 직원 실수로 저장고의 온도 감지 경보 시스템을 꺼 놓는 바람에 피해가 컸던 것으로 조사됐다. 비슷한 시기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도 400개의 배아가 냉동고에서 훼손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클리블랜드 사건이 현대 인공 출산 분야에서 역대 발생한 최대 규모 사고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병원 측은 사과와 함께 냉동 보관에 소요된 비용을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배아를 잃은 다수의 부모들이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특히 랜디와 릭 페니먼 부부는 배아가 인간 생명체라며 병원 측이 과실치사 책임을 져야 한다는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병원 측은 그러나 이들이 배아를 자산으로 간주하는 계약서에 서명했을 뿐만 아니라 오하이오주 법은 배아를 권리를 가진 인간 생명체로 보지 않는다며 맞서고 있다.

실제 부부의 승소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지난 5월 1심 재판에서 프리드먼 판사는 “부모들은 배아가 이미 사람이라고 믿을지 모르지만, 이는 그들의 믿음과 개인적 신념이지 과학이나 법률의 문제는 아니다”며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은 다른 부모들은 제품 보증과 관련된 법에 근거해 병원 측이 제대로 된 서비스를 하지 않았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하지만 인간의 난자, 정자 수정체를 어느 시점부터 인격체로 볼 것이냐는 낙태 문제와 결부된 논쟁적 이슈여서 논란이 커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달 초 항소를 제기한 페니먼 부부는 필요하다면 연방대법원으로 사건을 가져가겠다는 입장이다. 연방 대법원은 1973년 임신 후 6개월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역사적인 ‘로 대 웨이드’ 사건 판결을 내렸지만, 보수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도전을 받고 있다. 더군다나 최근 보수 성향의 브렛 캐버노 판사가 새 연방 대법관 후보자로 지명되면서 연방대법원의 인적 구성이 보수 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고 있다. 인공 출산 기술이 갈수록 발전하는 상황에서 낙태 문제와 별개로 배아 관련 사고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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