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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청년의 방은 어디 있는가

입력
2018.08.26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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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국토부 제공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국토부 제공

‘우리 아파트 옆 부지에 청년임대주택이란 미명 아래 1인용 5평짜리 빈민 아파트를 신축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파트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됩니다. 아파트 가격 폭락, 빈민 슬럼화로 범죄 및 우범지역 등 이미지 손상, 불량 우범지역화가 우려됩니다.’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기로 한 서울 모 지역 인근의 한 아파트에 나붙은 안내문이다.

반면 지난 5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청년임대주택 건립 지지 집회 참가자들은 다음과 같은 글귀의 손 팻말을 들고 있었다.

‘월세 버느라 집에도 못 간다.’ ‘가난한 청년 심은 데 가난한 미래 난다.’

미래학자들이 우려하는 ‘세대 전쟁’의 압축판을 보는 듯하다. 이 같은 갈등은 정부의 대학 기숙사 및 기숙사형 임대주택 확충 정책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입시전쟁 벗어나면 입실전쟁.’ 요즘 대학생들의 현실이다. 대학생 10명 중 4명이 입학과 동시에 집을 떠나 생활하지만, 학교 가까운 곳에 방을 구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한 부동산 정보회사에 따르면 상반기 서울 대학가 원룸 평균 월세는 49만원, 보증금은 1,378만원이다. 작년보다 각각 2.5%, 19.0% 올랐다. 이렇다 보니, 2017년 기준 청년층 월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RIR)은 18.8%로 소득의 5분의 1에 달한다. 대학생 등 20대의 30% 이상은 소득의 37%를 임대료로 쓴다.

가뜩이나 비싼 등록금과 취업 걱정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의 어깨를 집 걱정까지 짓누르고 있다. 월평균 비용(2인실 기준)이 13만2,000(국립대)~23만1,000원(사립대)으로 저렴한 기숙사가 희망의 동아줄이 되어주면 좋은데, 이마저도 대학생의 21.2%만 수용할 수 있다. 특히 서울 소재 사립대는 기숙사 수용률이 11.7%에 불과해 더 심각하다. ‘기숙사 합격이 효도’라는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정부는 대학생의 집 걱정을 줄여주기 위해 2022년까지 기숙사에 5만 명, 기숙사형 임대주택에 1만 명이 입주할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4월 기준으로 기숙사 입주를 희망하는 대학생은 모두 47만 명이다. 이 중 13만 명이 아직도 기숙사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어 정부의 기숙사 확충 물량이 부족할 수 있지만, 이마저도 최근 지역주민의 반대에 부딪쳐 사업이 더뎌지고 있다. 작년 말 착공한 동소문동 연합기숙사는 지역주민 반대로 6개월 넘게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응봉동 연합기숙사도 민원으로 인허가 절차가 늦어지고 있다. 이렇게 지연되고 있는 곳이 서울에만 7곳에 이른다.

지역주민 반대와 민원의 주된 이유는 기숙사로 인한 원룸 공실 증가, 임대수입 감소, 집값 하락, 범죄 발생 등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우려와 달리 서대문구 가좌지구를 비롯해 송파구 삼전동, 강동구 강일동, 구로구 천왕동 등 청년과 대학생이 입주할 수 있는 행복주택이나 임대주택이 들어선 지역의 주변 주택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올랐다. 기반시설 확충이나 노후도 개선, 젊은 인구 유입과 구매력 증대, 버스노선 신설 등 긍정적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많다. 범죄나 치안 문제는커녕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다.

무엇보다 주변 임대업자들과의 갈등을 해결하고 기숙사를 건립한 대학의 경우, 기숙사 단체 생활이 아닌 독립된 생활을 원하는 대학생, 사회초년생, 독신 직장인들의 수요가 있어 대학가 임대업자들이 큰 타격을 입지 않았다.

청년의 주거불안은 청년의 정신을 좀먹고 현재와 미래를 갉아먹는다. 젊은 세대가 눈앞의 주거불안에 발목이 잡혀 미래를 희생당하지 않도록 해야 나라의 미래도 존재할 수 있다. 청년이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세울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버팀목이 될 것이고, 이들이 결혼과 출산에 적극적으로 나서면 경제는 활력을 얻게 될 것이다. 청년의 주거안정은 비용이 아니라 효율적 투자다. 중앙정부와 함께 지자체, 지역주민 모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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