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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솔깃하지 않은 미래

입력
2018.08.26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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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사람친구’가 한 문화예술 관련 기관 면접에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데 예술의 역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무척 곤란해했다며 나였다면 어떤 답을 했겠냐고 아들이 묻는다. 잠깐 그 대답을 궁리하던 사이 광화문 교보문고 글판에 내걸려 많은 이의 감성을 저격했던 정현종의 시 ‘방문객’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그는/그의 과거와 현재와/그리고/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사람 하나 더 만나는 것 조차도 이토록 어마어마한 일이라는데 막상 저출산 문제에 대한 대책들은 너무 복잡하거나 아예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다. 기업이든 개인이든 오랫동안 한 방향으로 일을 하다 보면 생존에 대한 나름의 깨달음이 생긴다. 그 깨달음은 생존에 알맞은 곳[niche, 적소(適所)]에 자리잡도록 도와준다. 자연계의 서식처 안에 종(種)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 즉 생태적 지위는 단지 위치적 장소로서만이 아니라 생활환경으로서 개체의 적응도나 개체군 증가율에 영향을 미친다. 작년 기준 35개 OECD국가 중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는 우리나라 출산율의 문제도 지금까지는 알맞던 생태적 지위가 시간이 흐르고 환경이 바뀌면서 앞으로는 그렇지 않게 되면서 생긴 일이다. 결혼과 출산, 양육과 교육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 버리지 않고서는 당최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운 일인데 도대체 무슨 힘으로 이 상황을 돌려놓을 수 있는가를, 그것도 ‘예술’을 화두로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한 발 앞서 이 문제를 겪은 일본은 AIㆍIoTㆍ빅데이터 기술을 모든 산업과 생활에 도입한 초연결스마트사회(‘Society 5.0’) 정책을 펼치며 인구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1억 총활약사회의 실현을 위해 다양한 근로형태를 받아들이는 등 일하는 방식을 개혁한다’는 구호는 파시즘을 연상시켜 섬찟하지만 인구문제 해결에 효과를 내고 있다. 내수보다 수출의 비중이 높고 통화의 위상이 일본과는 확연히 다른 우리가 쓸 수 있는 수단은 한층 제한적이다. 첨예한 갈등을 낳고 있는 연금 등 사회안전망에 대해 세대 간의 타협을 이뤄내지 않고서는 저출산을 결심한 젊은 세대들의 마음을 돌리기 어렵다. 인간중심의 사고를 개인과 기업 두 영역 모두에서 경영 깊숙한 곳으로 끌어 들인 최근의 인문학 열풍에라도 기대어 30년 뒤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창의와 소통이 화두가 된 요즘의 생활환경에서는 예술의 역할도 커졌다. 과학은 과거를 분석하지만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은 예술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결국 수많은 이해관계자들과의 무수한 커뮤니케이션의 집합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제대로 잘 하기 위해 예술만큼 좋은 도구도 없다. 미술이 창조의 상징이라면 음악은 조화의 상징이지 않은가. 우리가 지닌 예술적 창의성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연료를 얻는다는데, 그 연료를 태워 사람들이 서로 안전하게 연결되는 사회적 유대나 신뢰로 맺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는 없는 걸까.

아들의 질문에 대한 답이 길어졌다. 아니 차라리 답을 찾지 못했지만 ‘당신이 해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이라도 당신이 질문조차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해답보다는 낫다’는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의 금언이 위로가 된다. 기술이 개인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 미래를 생각하면 이 질문 자체가 한가해 보이기까지 한다. 미국에서만도 사람들이 하루 80억번씩 스마트폰을 체크하면서 생성되는 데이터로 우리의 습관, 생각, 삶 자체를 우리 보다 더 잘 알게 된 소수의 엘리트 테크기업들을 생각하면 되레 그들에게 이 질문을 돌리고 싶다. 우리가 후배 세대에 진 채무와 의무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래는 더 이상 솔깃하지 않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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