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첫 흑인 대통령 탄생 불구
흑백 불평등 여전... 빈부 차 확대
2008년 8월28일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날, 버락 오바마(맨 오른쪽) 당시 상원의원이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마친 뒤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부부, 부인 미셸(왼쪽부터)과 함께 당원들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덴버=AP 연합뉴스ㆍ한국일보 자료사진

“케냐 출신 남성과 캔자스 출신 여성은 유복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은 뜻하는 게 무엇이든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선거는 21세기에도 미국의 약속을 살아 숨쉬게 할 기회입니다.”

2008년 8월28일 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인베스코 풋볼 경기장. 연단에 선 한 47세 흑인 남성의 말에 관중석의 8만4,000여명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화답했다. 그는 “위협받고 있는 미국의 꿈을 되살리겠다”고 했다. 바로 전날 미국의 주요 정당 역사상 처음으로 ‘흑인 대통령 후보‘(민주당)로 지명된, 그리고 4개월 후 대선 승리로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를 쓴 버락 오바마(57) 얘기다.

이날 대선 후보 수락 연설을 한 오바마는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서 킹(1929~1968) 목사의 ‘재림’으로 비쳤다. 오바마의 후보 연설 당시 기준으로 정확히 45년 전인 1963년 8월 28일, 킹 목사는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계단에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는 명연설을 남겼다. 오바마도 대선 후보를 수락하며 “우리는 홀로 걸어갈 수 없다. 우리는 언제나 앞을 향해 행진할 것이라고 약속해야 한다. 우리는 뒷걸음질쳐선 안 된다”는 킹 목사의 연설을 그대로 인용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은 킹 목사의 꿈이 거의 반 세기 만에 실현되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보였다.

그러나 두 사람을 동일선상에 두는 건 무리라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미국 흑인사회 지도자들이 킹 목사에게 필요로 했던 건 동기와 비전이었고, 오바마에게 기대한 역할은 예산과 입법이었다”라고 짚었다. 오바마는 킹 목사처럼 ‘운동의 리더’가 아니라 ‘현실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그가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마틴 루서 킹’이라는 이름 대신, “45년 전 젊은 목회자”라는 표현만 사용한 데에서도 선거를 앞두고 ‘흑인 지도자’ 이미지만 부각되는 걸 피하려는 정치인의 모습이 엿보인다.

게다가 흑인 대통령 탄생이 ‘인종 간 불평등’을 사라지게 한 것도 아니다. 오바마 정부 시절 흑인 실업률은 여전히 백인의 두 배였고,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흑백 빈부격차는 더 벌어졌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틈만 나면 흑인(멍청이)과 라틴계(범죄자)를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의도이든 아니든, 자신의 절대적 지지층인 극우 백인우월주의 세력을 부추기는 행보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미국의 이런 현실에 빗대 “오늘날 인종차별주의란 ‘백인의 자부심’을 정치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분석했다. 미국 사회가 킹 목사가 꿈꾸던 세상에서 오히려 멀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1963년 8월28일 미국의 흑인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미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 계단에서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로 유명해진 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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