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이산가족 상봉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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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가족 326명 금강산으로
2박3일간 7차례 12시간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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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얼굴 본 父子
“술 입에도 못대는 게 똑같아”
“외세 몰아내야지” 어색한 분위기도
남북의 이산가족이 분단 후 65년 만에 다시 만나 진한 혈육의 정을 나눴다. 8.15 계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2회차) 첫날인 24일 오후 강원도 고성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우리측 목원선(85) 할아버지와 북측의 형 목원희(86) 할아버지가 눈물의 상봉을 하고 있다. 금강산=사진공동취재단

“어떡해. 엄마랑 똑같아.”

북측의 이모 신남섭(81)씨를 만난 김향미(52)씨 등 남측의 조카들은 이모를 둘러싸고 연신 눈물을 흘렸다. 생면부지 이모 얼굴에서 이미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비치자 만감이 교차했다.

신씨 가족은 6·25 전쟁 발발 뒤 외할아버지와 이모 신씨만 따로 피난길에 오르며 헤어졌다. 고향 충주에서 다시 만나자 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언니와 헤어진 김씨 모친은 2000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언니를 그리워하며 살았다고 한다. 남측 조카들은 이날 이모의 초등학교 졸업장과 상장을 챙겨왔다. 혹시라도 나중에 언니를 만나게 되면 꼭 전하라는 모친 유언에 따른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상봉이 24일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서 재개됐다. 20~22일 진행된 1차 상봉에 이어 남측 2차 상봉단 326명(81가족)이 북측의 혈육을 재회했다. 상봉이 시작된 이산가족면회소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외침과 오열로 가득 찼다.

형이 죽은 줄로만 알고 살았던 남측의 동생 목원선(85)씨도 이날 북측의 형 원희(86)씨를 재회했다. 백발이 되어버린 두 형제는 한참을 부둥켜 안고 서로를 놔주지 않았다. 전쟁이 터진 직후 형 원희씨는 인민군에게 징집됐다. 함께 징집됐던 원희씨의 친구로부터 “너희 형은 죽었다”는 말을 들은 뒤 원선씨는 형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았고 당연히 이산가족상봉도 신청하지 않았다. 형이 끌려간 뒤 국군에 입대했던 원선씨는 “아마 우리 형하고 총부리 마주하고 그랬을지도 몰라. 하여간 이제 (형이) 살아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라며 탄식을 쏟아냈다.

조정기(67)씨는 북측의 아버지 조덕용(88)씨 앞에서 “아버지 (제가) 맏아들이에요, 맏아들”이라며 목놓아 울었다. 부자(父子)는 이날 서로의 얼굴을 처음으로 확인했다. 아버지 덕용씨는 전쟁 때 홀로 북으로 갔고, 이때 아들 정기씨는 어머니 배 속에 있었다. 정기씨는 “살아계실 줄 꿈에도 몰랐다”며 생전 처음 보는 아버지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번 남측 상봉단에서 최고령인 강정옥(100)씨는 북측의 동생 정화(85)씨가 들어오자 단번에 알아보고 “저기다, 저기”라고 외쳤다. 연신 동생 볼과 손을 쓰다듬으며 “정화야, 정화야. 안아줘야지. 아이고 고맙구나 정화야”라며 그간 부르지 못했던 동생 이름을 부르고 또 불렀다.

이날 몇몇 자리에선 북측 가족이 작심한 듯 체제 선전에 나서기도 했다. 남측의 동생들과 조카를 만나러 나온 북측의 한 가족은 당국으로부터 받은 훈장을 보여 주며 “우리 민족이 외세를 몰아내야지”라고 말했다. 이에 남측의 조카는 “네. 우리나라 좋은 나라죠”라며 어색하게 웃었다.

두 시간가량 단체상봉을 마친 남북의 가족들은 휴식을 취한 뒤 이산가족면회장 1층 연회장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했다. 만찬 테이블 위엔 남측에서 준비한 전복, 한방 소갈비, 해파리 냉채 등이 올라왔고 막걸리, 백세주 같은 술이 곁들여졌다. 테이블 여기저기서 “건강하세요”라는 덕담과 함께 잔들이 부딪혔다. 이날 생전 처음 서로의 얼굴을 본 조덕용ㆍ조정기 부자는 두 사람 모두 술을 조금도 못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틀림없는 부자지간임을 재차 확인했다.

면회소 밖에는 촉촉한 부슬비가 내렸다. 태풍 솔릭이 강원도를 강타할 것이란 당초 예상은 천만다행으로 빗나갔다. 이날 첫 대면한 남북의 이산가족들은 26일까지 2박 3일간 7차례에 걸쳐 12시간 동안 그간 쌓아 뒀던 혈육의 정을 나눈다.

금강산=공동취재단ㆍ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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