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JTBC 뉴스에 출현해 안희정의 성폭력 사건을 폭로했다. 사건이 공론화되면서 안희정은 SNS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모든 분들께 정말 죄송합니다.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고통을 받았을 김지은씨에게 정말 죄송합니다.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입니다. 모두 다 제 잘못입니다. 오늘부로 도지사직을 내려놓겠습니다. 일체의 정치 활동도 중단하겠습니다.”

그 후로 간음ㆍ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안희정은 지난 8월 14일, 1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위력’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어리석은 행동”과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는 비서실의 입장은 잘못”이라고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성범죄가 일어났고, 피해자가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판결문을 통해 바라본 법원의 시각은 이랬다. 김지은씨는 사회적 지위를 갖춘 성인 여성으로서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성폭행을 당한 다음 날에도 평소처럼 비서업무를 수행했고, (비공개 심문에서) ‘정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법원이 상정하는 ‘피해자’의 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여기서 간과된 것은 도지사와 수행비서 사이에 놓인 권력 관계이다.

수행비서가 상사의 명령에 불복종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할 수 있을까. 단순한 상상으로도 어떤 권력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는데 법원은 ‘위력’의 증거를 핑계 삼아 그녀의 용기와 목소리를 무력화시켰다. 때리고, 강제로 성관계를 강행하는 것만이 위력은 아니다. 위력은 극단적이고 과격한 폭력 행위에서 발생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일상에서 업무나 지시를 가장한 채 빈번하게 발생한다. 식사 메뉴를 지시받고 배달하는 것에서부터, 일정을 조율하고 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것에서부터, 메시지 하나 만으로 위력은 작동한다.

이 사건과 판결이 상징적인 이유는 그동안 여성을 향한 성희롱ㆍ성폭력이 일상에서 정치 권력의 중앙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판결 과정에서 가해를 하는 남성들의 시각이나 이를 심판하는 법원의 시각이 결코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법원은 무죄 선고를 통해 사건에서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삭제했다. 그리고 그 죄를 도리어 피해자에게 ‘피해자답지 않은 태도’로 물었다. 아무리 판결문에서 ‘그루밍’ ‘성인지 감수성’ ‘성적 자기 결정권’ 등 여성주의적 용어들을 차용하여 인용했더라도, 여전히 남성 가해자는 죄가 없고, 여성 피해자는 피해자답지 못한 행실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가부장의 가해 권력이 법의 탈을 썼을 뿐, 여성들이 성폭력으로부터 지키고자 했던 삶과 목소리에 응답하기보다 그를 무력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그동안 여성은 매일 가정, 일터, 화장실, 거리 등에서 성폭력과 성희롱에 노출되어 살아 왔다. 이런 문화가 자리 잡게 된 데에는 남성의 성폭력에 대해 관대한 문화와 구조 때문이다. 그것을 이번 판결이 상징적으로 보여 주었다.

여성들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백하더라도 혐의를 부인하면 무죄를 선고하는 부조리함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낼 것이다. 법원은 무엇이 여성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는지, 왜 여성들이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고 외치는지, “안희정이 무죄라면, 사법부는 유죄다”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똑바로 들어야 한다. 그리고 젠더권력의 피해를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판관의 자리를 그대로 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김지은이고, 우리가 김지은이다!

천주희 문화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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