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함께’ 흥행 신화 김용화 감독

삶 각박한데 극장서라도 웃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영화로

관객 예상 깨되 기대는 안꺾어

결핍투성이 주인공 많은 이유?

99% 고통속 1% 희망 찾는게 삶

흥행 실패 ‘미스터 고’ 만든 회사

이젠 亞최고 CG회사 된 것처럼

3, 4편? 만들지 않을 이유 없죠

당분간은 제작자로 살아갈 것

김용화 감독은 ‘대중영화 감독’을 자처한다. 최대 다수를 만족시키는 게 목표다. 그는 “감독으로서 존재 증명을 하려면 늘 새로워야 한다”고 말했다.

김용화(47) 감독을 만나기 전 그의 영화 관객수를 더해 봤다가 흠칫 놀랐다. 총 4,558만5,610명. 거의 남한 인구다. 고작 작품 6개만으로 말이다.

‘신과 함께’ 이전에도 그는 흥행 마술사였다. 데뷔작 ‘오! 브라더스’(2003)는 314만8,748명, ‘미녀는 괴로워’(2006)는 661만9,498명, ‘국가대표’(2009)는 848만7,894명을 불러 모았다. 작품마다 관객수가 불어났다. 실패작으로 꼽히는 ‘미스터 고’(2013)조차도 132만8,890명으로 결코 적지 않다.

김 감독은 온화한 미소 뒤에 ‘한 방’을 숨겨 둔 승부사다. 영화로 번 돈을 ‘미스터 고’에서 잃었지만 보란 듯이 재기했다. ‘신과 함께’는 김 감독과 그가 이끄는 VFX(시각특수효과) 회사 덱스터스튜디오가 아니었다면 만들기 힘들었을 영화다. 김 감독을 만나기 전 ‘신과 함께’ 기획안은 수년간 충무로를 표류했다.

컴퓨터그래픽(CG)으로 창조한 7개 지옥의 풍경은 스펙터클했다. 감 감독 개인을 넘어 한국영화계의 성취로 평가된다. 뭉클한 가족애 이야기에 남녀노소가 눈시울을 적셨다. ‘신과 함께-죄와 벌’은 지난 겨울 1,441만931명을 동원했고, 속편 ‘신과 함께-인과 연’은 올여름 1,158만9,649명(23일 기준)을 더 보탰다. 한국에서 시리즈 영화가 ‘쌍천만’을 기록한 건 처음이다.

1년 사이 영화 두 편을 잇달아 개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김 감독은 23일 가족과 함께 미국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다. 22일 만난 그는 “24개월 된 딸의 얼굴을 실컷 보고 싶다”고 했다. ‘쌍천만’ 흥행을 얘기할 때보다 수천 배는 밝은 표정으로.

망자의 저승재판을 그린 ‘신과 함께-죄와 벌’은 1,441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역대 흥행 2위에 올랐다.
영화 ‘신과 함께-인과 연’은 저승차사들의 숨겨진 과거사를 그린다.
–한국영화 시리즈로는 최초 쌍천만 기록이네요.

“1편 때도 1,000만 돌파는 상상도 못했어요. 2편 개봉에 도움될 수 있는 만큼만 흥행하길 바랐어요. 1, 2편 합쳐 손익분기점 넘고 300만~400만 관객 수익을 내면 성공이라고 봤죠.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지만 기분은 담담해요. 허탈감도 들고요. ‘쌍천만’이라는 수식어가 저에게 영원히 부담이자 족쇄가 되지 않을까 해요(웃음).”

–마블 영화처럼 시리즈 전체가 세계관을 공유하는 서사 방식이 통했어요.

“러닝타임 2시간 안에 사건의 경과를 다 담아내기가 사실 쉽지 않아요. 1편에서 기본 설정을 잘해 놓으면 이후로는 캐릭터나 세계관을 설명하는 데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돼요. 곧바로 재미 요소를 던지면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지요. 그래서 2부작으로 만들자고 결심했죠. 관객이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데, 우리가 시리즈 영화를 안 해서 못하는 건지, 못해서 안 하는 건지도 고민해 보고 싶었어요.”

–같은 세트가 배경으로 나오는 장면을 한꺼번에 모아서 촬영하는 방식으로 1, 2편을 동시 제작하셨죠. 예산을 아끼려고요. 시행착오는 없었나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잘못된 방식이라고 느껴요. 최소한 클라이맥스 장면만이라도 배우가 충분히 감정이 쌓인 뒤에 찍을 수 있도록 촬영 순서를 짜야 할 것 같아요. 촬영 난이도가 높은 장면도 스태프가 숙련되고 호흡이 맞을 때 찍었으면 한결 유려한 이미지가 왔을 거라는 아쉬움도 들고요.”

–아시아 동시 개봉도 한국영화로는 최초지요.

“앞으로 제 영화는, 그리고 덱스터스튜디오가 만드는 영화는 반드시 아시아 동시 개봉을 시도할 생각입니다. 그래야 영화가 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어요. IPTV 같은 부가판권 수익이 극장 수익의 20~30% 수준인데, ‘신과 함께’는 해외에서도 30%가량 수익을 거뒀어요. 이상적 기대이긴 하지만, 부가 수익이 60%에 이를 수도 있는 거죠. ‘신과 함께’가 선례를 남겼으니 앞으로는 좀더 수월해지지 않을까요.”

–3, 4편이 벌써 기다려져요.

“많은 사람이 보고 싶어 한다면 만들지 않을 이유는 없어요. 다만 관객보다 감독이 먼저 나서는 건 교만 같아요. 그래도 다음 이야기에 대한 단초는 충분히 제공했다고 봐요.”

김용화 감독의 데뷔작 ‘오! 브라더스’.

–항상 ‘재미’가 최우선이라 말씀하시죠. ‘김용화식 재미’는 무엇인가요.

“감독이 주인공의 입을 빌려 전하는 메시지와 그 정서에 관객이 동의하면 재미가 생겨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제 경우엔 ‘위로’가 중요해요. 엔딩에 도달했을 때 살며시 미소 지어지지만 좀 씁쓸하기도 한데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소재만 바꿔서 계속 만들고 있어요. 삶이 각박한데 극장에 가서까지 고통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도 힘들 때는 ‘로보캅’, ‘백 투 더 퓨처’ 같은 영화 보거든요.”

–‘오 브라더스’,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는 주목받지 못하다가 개봉 2, 3주 지나서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어요. ‘신과 함께’도 우려 속에 개봉했고요. 늘 반전을 만드시네요.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오네요(웃음).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게 만든 게 통한 것 같아요. 관객의 예상은 깨뜨리되 기대는 꺾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제 신조예요. 팝콘과 콜라 먹으며 즐기는 영화라고 생각한 관객들이 팝콘과 콜라 먹는 걸 잊게 만드는 것. 넋 놓고 시간 때우려 보는 영화는 아니었다는 말이 저에겐 최고의 찬사죠.”

–보편적 소재를 쉬운 화법으로 풀어내는 이야기꾼이라는 걸 새삼 느꼈어요.

“어려운 이야기를 쉽게 푸는 게 진짜 어려운 거예요. 시나리오 쓸 때 포스트잇부터 준비해요. 이야기를 단계별로 정리해 벽에 한가득 붙여 놓고 시작하지요. 그걸 수백 번 뗐다 붙였다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 가요.”

–자기 영화를 보다가 운 적도 있나요.

“엄청 많이 울어요(웃음). 촬영 현장에서 배우 연기를 보면서 울기도 하고요. ‘신과 함께-죄와 벌’에서 자홍(차태현)이 투병 중인 어머니(예수정)가 차라리 돌아가시기를 바랐던 과거를 대면하고 주저앉아 울 때 같이 울었어요. 아기가 낮잠 자다 깼는데 엄마가 안 보이면 공포감 때문에 울지요. 차태현씨에게 그 울음을 표현해 달라고 얘기했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연기하더라고요. 제가 어머니, 아버지를 잃었을 때 느낀 슬픔, 당혹감에 맞닿아 있다고 느낄 정도였죠.”

–그게 바로 진정성일까요.

“감독 스스로 모르는 감정을 연출하는 건 거짓이니까요.”

얼굴 없는 립싱크 가수의 이야기로 외모지상주의를 풍자한 ‘미녀는 괴로워’.
동계올림픽 유치를 유해 급조된 스키 점프 국가대표팀의 도전을 그린 ‘국가대표’.

김 감독은 중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잡지에서 우연히 본 사진 한 장이 인생을 바꿨다. ‘지옥의 묵시록’을 찍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헬기를 타고 카메라 밖으로 몸을 내민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재수해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진학했다. 불행이 닥쳤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어머니는 간경화와 당뇨병으로 투병했다. 김 감독은 밤에는 부모님을 간병하고 낮에는 병원비를 벌었다. 당시 생선 장사를 5년이나 한 그는 지금도 5초 만에 고등어 한 마리를 손질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영화 속 주인공은 결핍투성이다. 흥신소 청년과 조로증 소년이 형제로 만나고(‘오! 브라더스’), 외로운 고아 소녀와 고릴라는 가족이 된다(‘미스터 고’). 외모 콤플렉스가 있는 립싱크 가수(‘미녀는 괴로워’)와 해외입양아 스키점프 선수(‘국가대표’)는 난관을 헤치고 꿈에 가까이 간다. 김 감독이 빚은 인물들은 끝내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김 감독이 그런 것처럼.

–결핍투성이인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나요.

“제가 그런 사람이니까요. 삶에는 기쁨과 즐거움보다 고통과 좌절이 훨씬 많아요. 결핍이 99%에 달한다 해도 1%의 영롱한 희망을 찾는 게 인생 아닐까요. 제 영화는 가장 큰 비극에서 출발하는 희극이에요.”

–‘나쁜 사람은 없다, 나쁜 상황이 있을 뿐’이라는 대사가 떠오르네요.

“이 세상이 아이러니 자체죠. 20대 때 생선 장사부터 채석장 막노동, 운전 기사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어요. 인도네시아산 갈치를 제주 갈치로 속여 팔기도 했죠. 어머니 병원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서였지만, 과연 정당한 행동이었을까요? 영화에서 저승차사들의 주장도 그거예요.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 죄를 저승에서 심판하는 게 합당한가, 하는 거요.”

–어머니가 오래 투병하는 걸 지켜본 자홍은 어머니가 차라리 돌아가시길 바라다가 죄책감을 느껴요. 감독님 경험에서 나온 얘기라지요.

“긴 병 앞에 효자 없다고,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어요. 저는 어머니가 건강하신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돌아가시기 전 2, 3년은 정말 힘들었어요. 새벽에 생선을 받아 와야 장사를 하는데 어머니는 의식이 없고, 간병인 쓸 돈도 없고…. 어머니가 입원해 있던 의료원 원장님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 같은 효자는 사회에서 지켜 줘야 한다면서요.”

–‘신과 함께’에 부모님을 향한 그리움이 담겨 있는 거죠.

“맞아요. 1편은 어머니 진혼곡이고, 2편엔 아버지 임종을 지키지 못한 반성과 회한이 녹아 있어요.”

–많이 힘드셨겠어요.

“그때는 오히려 눈물이 안 났어요. 너무 큰 고통이 오니까 회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영화감독이 됐나 봐요. 영화를 보면 현실도피가 그렇게 잘될 수가 없어요(웃음). 영화 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2시간짜리 이야기로 나도 위로받고 남도 위로할 수 있으니 얼마나 멋진 직업인가요.”

–영화를 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꿈을 지켰나요.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오히려 용감해졌어요. 책임질 가족이 없으니까요. 원래 CF감독이 되려고 했어요. 그 꿈을 단번에 바꾼 게 강제규 감독님이에요. ‘쉬리’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어요. ‘쉬리’가 저를 완전히 바꿔 놨어요. 데뷔하고 나서 강 감독님과 형님 동생으로 지내면서 제작사도 잠시 같이 운영했어요. 우상과 그렇게 가까운 사이가 되다니, 지금도 신기해요.”

–‘어릴 때 힘들게 살았지만 불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하셨죠.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기가 힘든 처지 아니었나요.

“아내가 오늘 어떤 사진 보면서 눈물을 글썽거리더라고요. 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복지단체 아이들에게 아내가 티켓을 선물했나 봐요. 영화 잘 봤다고 선생님이 찍어 보내 주신 단체사진이었어요. 사진 보다 저도 눈물이 나서 화장실로 숨었어요. 눈물이 또 날 것 같네요.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에 이런 말이 있어요. ‘남이 불행하다고 해서 내가 행복한 게 아니다.’ 삶이 고통스럽더라도 한 번쯤 살아 볼 가치가 있지 않나요. 저처럼 모두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어요.”

김용화 감독은 “영화에서 위로받고 영화로 위로하고 싶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덱스터스튜디오는 영화 ‘미스터 고’의 도전과 실패로부터 시작됐다.

덱스터스튜디오는 김 감독의 용기와 도전정신이 집약된 곳이다. ‘미스터 고’의 고릴라 CG를 만들다가 아예 차려 버린 회사가 아시아 최고의 VFX 스튜디오가 됐다. 김 감독은 “사진처럼 정교한 디지털 캐릭터가 2시간 동안 스크린에서 뛰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아시아 스튜디오라고 자부한다”고 했다.

–‘미스터 고’는 실패했지만, 덕분에 덱스터스튜디오가 탄생했죠.

“사실 저는 영화가 잘될 줄 알았어요. 오만한 기획이었죠. 제가 꼽는 삶의 목표 중 하나가 공동체 가치 실현이에요. ‘미스터 고’ 실패로 힘든 시절을 지나고 보니 회사 구성원들이 엄청 성장해 있더라고요. 영화 만들 때도 엄청 든든한 원군이에요. 예산을 고민하면 회사 분들이 ‘CG로 만들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고 찍으라’고 하세요.”

–영화의 기술과 예술을 앞으로 어떻게 버무려갈지 궁금해요.

“기술이 드라마를 넘어설 순 없어요. CG는 감정을 거드는 도구일 뿐이에요. 영화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감정이에요.”

–‘신과 함께’ CG를 할리우드에서 작업했다면 비용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못해도 400억~500억원 써야 했을 거예요. 우리는 편당 60억~70억원 정도 들었어요.”

–차기작은 언제 볼 수 있나요.

“할리우드와 ‘프로디걸’을 논의 중이고요, 우주 영화 ‘더 문’은 아시아 프로젝트로 구상 중이에요. 당분간은 제작자로 살 것 같아요. 제가 제작하는 영화 3편이 내년에 촬영을 시작해요.”

–김병서 감독의 ‘백두산’, 고봉수 감독의 ‘봉수만수’, 우문기 감독의 ‘배드민권’을 만든다지요.

“한국의 마블, 아시아의 디즈니가 되는 게 목표예요. VFX를 두려워하지 않는 패기 있는 감독들과 손을 잡았어요. CG 작업 외주 비율은 내년부터 20~30% 비중으로 줄이려고요. 덱스터스튜디오의 영화로 먹고살아야죠.”

–도전을 멈추지 않는 삶이군요.

“도전하는 삶이 재미있어요. 살면서 모험을 하지 않는 게 가장 큰 죄악이라고 생각해요.”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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