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정 집계는 사망자 6700명
노르웨이 등 다국적 연구진의
3300가구 샘플 조사 결과
2만5000명 학살 다시 밝혀져
어린이 사망자가 성인의 4배

미국∙EU 등 제재 칼 뽑았지만
학살 지휘관은 책임 피해가
난민촌 통행금지도 재연장
로힝야족은 가슴 졸이기만
22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쿠투팔롱 난민캠프에 있는 한 로힝야 난민(가운데)이 이슬람교 성절인 ‘에이드 알 아드하(희생절)’를 맞아 기도를 하던 중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콕스바자르=AP 연합뉴스

지난 21일 싱가포르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는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 주최로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의 강연이 열렸다. 수치는 연설에서 “(라카인주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이 지역 테러리스트의 활동에서 비롯됐다”고 말했다. 라카인주는 미얀마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의 본향으로, 지난해 8월25일부터 70만명 이상이 박해를 피해 대탈출을 감행했다. 연설 당시 수치가 ‘로힝야’를 직접 거론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가 말한 ‘테러리스트’가 로힝야 반군을 지칭했다는 걸 짐작하긴 어렵지 않다. 수치는 수 차례의 집단학살(1만명 이상 사망 추정)과 무수한 집단강간 사례, 심지어는 18개월짜리 아기까지 불에 던져 버렸던 반인도주의 범죄의 책임 소재를 가해자 그룹(군대와 경찰, 불교도 민병대)이 아니라, 피해자 그룹인 로힝야족에 교묘히 얹어 놓았다.

그 참혹한 대학살이 25일로 1주기를 맞았다. 유엔인권대표부의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은 이를 “인종청소의 교과서”라고 표현했다. 미얀마의 이웃국가인 방글라데시와의 국경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큰 난민캠프가 형성돼 있는데, 지난 1년간 이 곳으로 몸을 피한 로힝야 난민은 70만 6,363명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UNOCHA) 미얀마 사무소에서 일하는 피에르 페론은 20일 트위터에 “올해 상반기만 해도 1만1,000명이 방글라데시로 몸을 피했다”고 적었다. 탈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1978년 5월14일자 파키스탄 일간지 ‘돈(Dawn)’에 게재된 한 기사. 당시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군인들이 로힝야족을 학살하는 현장을 생생히 지켜본 목격담을 담고 있다. 이유경씨 제공

미얀마의 로힝야족 박해는 단지 지난 1년의 역사가 아니다. 1978년, 1991~92년, 2012년, 2016년, 그리고 2017년까지 총 5, 6차례에 걸쳐 자행된 인종청소의 누적된 역사다. 예컨대 25만명이 방글라데시로 축출됐던 1978년의 한 단면을 보자. 파키스탄 일간지 ‘돈(Dawn)’은 그 해 5월14일자 ‘목격자 증언: 총살당한 버마의 무슬림’ 제하의 기사에 프랑스의 ‘누벨 옵세르바퇴르’ 특파원의 목격담을 담았다. 마지막 문단은 이렇다. “왼쪽 가슴에 칼로 베인 상처를 입은 한 로힝야 여성은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군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여성 17명 가운데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군인들은 여성들의 가슴을 잘라내고 칼로 찔러 죽이고는….”

40년 전 인종청소 현장과 오늘날의 학살은 궤를 같이 한다. 카친, 카렌, 샨, 라카인 등 지역에선 로힝야족이 아닌 다른 소수민족의 무장반군 활동이 왕성한데, 미얀마 정부가 이들에게 가하는 탄압은 ‘소수민족 길들이기’ 성격이 강하다. 반면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는 ‘로힝야 존재 지우기’ 의도를 담고 있다. 전자가 전쟁범죄와 반인도주의 범죄로 설명된다면, 후자는 이들 두 가지의 범죄 유형은 물론이거니와 인종청소, 더 나아가 ‘제노사이드(집단학살)’까지 적용될 수 있는 최악의 양상을 보여 왔다. 물론 제노사이드는 특정 커뮤니티의 부분 또는 전체를 말살하려는 ‘의도(intent to)’가 중요한 만큼, 이렇게 규정하는 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지난 1년의 상황은 논쟁을 잠재웠다. 미얀마의 ‘로힝야족 말살 의도’는 선명해졌고, 단기간 발생한 사상자의 수치도 대량살상 조건을 충족했다. 게다가 민 아웅 라잉 미얀마군 총사령관은 지난해 9월 로힝야족을 상대로 벌인 군경의 ‘청소 작전’에 대해 “끝내지 못했던 과업(unfinished business)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미얀마 당국의 ‘의도’를 스스로 자백한 꼴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9월14일 방글라데시 테크나프 지역에서 한 로힝야 난민 여성이 미얀마에서 탈출하던 중 보트가 전복돼 숨진 자신의 생후 40일짜리 아들을 안고 오열하고 있다. 테크나프=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그렇다면 지난해 8월 25일 이후 대체 몇 명이나 숨진 걸까. 로힝야족 의료구호를 오랫동안 수행해 온 ‘국경없는 의사회(MSF)’는 첫 한 달(8월25일~9월24일) 동안 최소 6,700명이 폭력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된다고 밝혔다. 부상자 치료 과정을 통해 추산한 수치였다.

그런데 최근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노르웨이와 방글라데시, 필리핀, 호주, 캐나다 등 다국적 연구자들이 발표한 보고서 ‘로힝야 강제이주, 알려지지 않은 경험들’이 그것이다. 로힝야 난민촌의 3,300가구를 샘플로 한 이 보고서는 로힝야족에 가해진 폭력을 여러 범주로 나누고 피해자 그룹도 세분화해 분석한 뒤, “사망자는 2만5,000명 수준”이라는 결론을 냈다. 성폭행 피해자는 1만9,000명, 화염 속으로 내던져진 이들도 3만6,000명(일부는 생존) 정도에 달했다. 특히 어린이 사망자가 성인의 4~4.5배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 통계는 의미심장하다. 로힝야족의 미래를 살해한 것이며, 이는 곧 커뮤니티 말살 의도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를 고려할 때, “미얀마가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을 때 로힝야족은 지배계층이 되어 나쁜 짓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는 식의 ‘인과응보 프레임’은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로힝야 인종학살은 70여년 전의 과거와는 거리가 먼 ‘21세기의 증오 범죄’다.

지난 1년간 국제사회는 미얀마의 ‘로힝야 청소 작전’에 경악하며 수많은 비판을 쏟아 냈다. 그러나 실질적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가해자들을 향해 제재의 칼을 뽑아 든 건 유럽연합(EU)과 미국 정도인데, 이 역시 학살의 최고 사령관인 민 아웅 라잉은 피해갔다. 지난 17일 미 재무부가 발표한 제재 내용에 따르면 학살에 관여한 고위 장성 4명과 제33 경보병사단(이하 33사단), 제99경보병사단(이하 99사단)이 ‘미국 내 자산 동결’과 ‘미국인과의 거래 금지’ 대상에 올랐다. 99사단은 지난해 8월 30일 여성과 어린이, 남성들을 강 기슭에 따로 모아 집단 총살한 ‘툴라톨리 학살’에 관여한 그 부대다.

23일 방글라데시 콕스바자르 발루칼리 난민 캠프에서 로힝야 난민들이 구호 식량과 물품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콕스바자르=로이터 연합뉴스

그 동안 로힝야 인종학살은 작년 8월 25일 새벽 로힝야 반군의 미얀마 군경 초소 공격 때문에 촉발됐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미얀마군이 그에 앞서 학살을 준비했다고 볼 만한 징후는 적지 않다. 2017년 8월10일 33사단이 라카인주로 이동, 로힝야족 거주지역 배치를 앞두고 시트웨 공항에 정렬하던 장면도 그 중 하나다. 이후 33사단은 ‘춧핀 마을 학살’(8월 27일)과 ‘인딘 마을 학살’(9월 2일)에 직접 관여했다. 국제인권단체 ‘포티파이 라이츠’는 지난달 20일 발표된 보고서에서 8ㆍ25 학살 준비 징후를 ▦체계적인 로힝야족 무장해제 작업 ▦로힝야 가옥 울타리의 체계적 철거 및 군의 공격시야 개선 ▦비(非)로힝야족 주민들의 훈련 및 무장 ▦로힝야족에 대한 구호물자ㆍ구호단체의 접근 차단 ▦무슬림에게만 적용되는 통행 금지 ▦통상적이지 않은 대규모의 군인 추가 배치 등 6개로 정리했다.

학살 1주기를 앞두고 라카인주의 통행금지는 또다시 연장됐다. 방글라데시와 미얀마 간 국경지대의 긴장도 풀리지 않은 상태다. 작은 냇물이 국경인 한 미얀마 영토 지역, 이른바 ‘노 맨즈 랜드(No Man’s Land)’에선 지난 19일 긴급 전보가 전해졌다. 이곳 난민 대표가 전하는 ‘제로 포인트 뉴스레터’에는 “미얀마 352경보병여단이 인근 통퓨레티아르 학교에 초소를 차려놓고 있다. 그들이 지금 순찰을 돌고 있다”고 적혀 있다. 노 맨즈 랜드의 일부는 지뢰밭이기도 하다. 이곳의 로힝야족 4,600명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난해 8ㆍ25 폭력사태가 발생하자 인근 지역에서 몰려든 첫 피난민 그룹이다. 그들은 지금도 여전히 미얀마군의 확성기 위협과 무장군인들의 순찰을 가슴 졸인 채 바라보며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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