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페인팅의 즐거움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최고요 작가의 현관 신발장 모습. 원목 재질의 신발장(왼쪽)이 밝은 회색페인트 칠을 통해 세련되게 재탄생 했다. 최고요 제공

셀프인테리어가 취미이자 놀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의뢰 받은 공간 프로젝트들을 이어가느라 제 공간에 예전만큼 시간을 쏟지 못하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퇴근 후 혹은 주말 동안 ‘어떻게 하면 내 집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주로 쉽게 바꿀 수 있는 것들을 혼자 야금야금 바꾸어가며 뿌듯함을 즐겼는데 물건을 새로 사거나 가구를 바꾸는 일 외에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큰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페인팅이었습니다.

약속도 없고 할 일도 없는 주말에는 문짝이나 찬장을 칠했습니다. 한 번 칠했던 곳을 다른 색으로 칠하기도 했습니다. 페인팅이 묻지 않아야 하는 곳에는 꼼꼼하게 커버링 비닐을 씌우고 마스킹 테이프를 붙입니다. 페인트가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 작업을 건너뛰거나 대충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트레이에 페인트를 붓고 칠하는 부분에 맞는 적당한 크기의 롤러와 붓을 준비합니다. 찬장이나 문짝을 칠할 때는 주로 4~6인치 정도의 작은 롤러를 사용했습니다. 빨리 칠하고 싶다고 페인트를 잔뜩 묻혀서 바르면 흘러내려서 좋은 모양이 나오지 않습니다. 적당히 흐르지 않을 정도의 양을 묻혀서 W나 M 자를 그리고 가로나 세로 방향으로 펴준다는 생각으로, 천천히.

한 번 칠을 하고는 충분히 말려야 하기 때문에 잠깐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처음과 같이 칠하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보통은 두 번, 페인트나 칠하는 표면에 따라 세 번을 칠할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중간에 사포질을 하거나 롤러가 닿지 않는 귀퉁이에 붓질을 해야 할 때도 있고요. 꼼꼼하고 섬세한 작업이어서 평소 성격이 급하고 덤벙대는 저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수행이나 수련 비슷하게 느껴지곤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나서 떼어 두었던 손잡이를 돌려 끼우며 찬장을 바라보던 그 뿌듯함은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어제는 오랜만에 클라이언트를 위해 테이블 상판을 페인트로 칠했습니다. 비록 주문한 테이블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된 일이었지만 셀프인테리어가 취미이자 즐거움이었던 예전, 다른 일들도 모두 잘할 수 있을 것처럼 느끼게 해주었던 페인팅 작업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공간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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