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 라트비아 총선

최대 소수 민족인 러시아인과
라트비아인 갈등 사회적 문제로
화합당, 중도 성향 경제학자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세 불리기
"화합당 빼고 모든 정당과 대화"
우파들은 노골적인 배제 움직임
라트비아 리가에서 지난 5월 라트비아어 사용 확대를 골자로 한 정부 교육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리가=타스 연합뉴스

“인구의 3분의1이 사용하는 언어(러시아어)가 외국어로 취급되는 건 난센스다. 우리는 외국인이 아니며, 외국인이 될 수 없다.”

지난 6월 세 자녀를 둔 러시아계 라트비아인 유제니아 크리우코바는 라트비아 정부가 추진 중인 교육개혁안에 반발, 유로뉴스에 이렇게 말했다. 개혁안에 따르면 취학 전 교육은 기존처럼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로 각각 진행되지만, 새로운 개혁안이 시행에 들어가면 초등학교 과목의 50%, 중학교(7~9학년) 과목 80%를 라트비아어만으로 진행한다. 또 고등학교(10~12학년)에서는 소수 민족 언어와 관련한 과목을 제외한 전 과목을 라트비아어로 수업 받아야 한다.

크리우코바와 생각을 같이 하는 이들은 최근 ‘우리의 아이들, 우리의 권리’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라트비아어 사용을 확대하는 내용의 교육개혁안에 반대하는 거리 시위를 벌였다. 발틱타임스는 “지난 6월 2일 적어도 500여명이 항의 시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이 발끈한 이유는 라트비아 정부의 조치를 그 곳에서는 소수인 러시아계 주민들을 차별하려는 시도로 보기 때문이다. 1991년 소련 연방에서 독립한 라트비아는 라트비아계 57.7%, 러시아계 29.6%, 벨라루스계 4.1%, 우크라이나계 2.7% 등으로 구성돼 있다.

독립 이후에도 구 소련 지배 시기 넘어온 사람들이 라트비아에 거주하다 보니, 라트비아 내 최대 소수 민족인 러시아계와 라트비아계 주민 사이의 갈등이 존재해왔다. 앞서 라트비아 민족주의 계열 정당이 정부를 구성할 때 친러 성향 정당을 자동으로 배제하고 모든 학교에서 라트비아어로만 수업하도록 한 헌법 개정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반대로 2012년에는 러시아어를 제2의 공용어로 채택하려는 러시아계의 시도 역시 좌절됐다. 당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78% 이상이 러시아어에 대해 라트비아어와 동등한 지위를 주자는 헌법 개정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그래서 현재 라트비아의 공용어는 라트비아어가 유일하다.

라트비아계ㆍ러시아계 간 갈등 탓 분열된 사회

라트비아계와 러시아계의 첨예한 대립 분위기는 라트비아 정치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친러 좌파성향의 화합당이 단일 정당으로는 지지율 1위지만, 여러 우파 정당들이 합세해 화합당을 견제하는 구도다. 구 소련에 점령됐던 경험 탓에 라트비아에서는 친러 정당이 정부에 참여하는 일이 금기 시 돼 왔다. 2014년 총선에서 소수 러시아계의 견고한 지지를 받고 있는 화합당이 단일 정당으로 가장 많은 표(23.25%)를 얻었지만 정부 구성에서 배제된 이유다.

현재 중도 우파 성향의 녹색농민당 소속 마리스 쿠친스키스 총리가 이끄는 라트비아 내각은 녹색농민당을 비롯, 중도 우파 연합당, 극우 민족주의 성향의 국민연합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우파 연합은 지난 총선에서 57.86%(연합당 21.62%, 녹색농민당 19.74%, 국민연합 16.50%)를 얻어 정부를 구성했다.

마리스 쿠친스키스 라트비아 총리가 지난 3월 브뤼셀에서 열린 EU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라트비아는 2004년 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에 가입한 바 있다. 브뤼셀=EPA 연합뉴스
지지율 1위에도 친러 정당 배제 가능성

화합당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은 10월6일 치러지는 총선을 앞두고도 감지되고 있다. 지난 4월 국민연합은 연정 파트너들에게 선거를 앞두고 러시아의 정치 선동으로부터 라트비아 매체를 보호해야 한다며 러시아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중도 우파 계열의 새보수당은 지난달 30일 새 정부를 구성할 때 화합당을 빼놓고 모든 정당과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야니스 보르단 새보수당 대표는 “화합당은 친러 성향 탓에 연정 파트너로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겉으로 사회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실제론 유럽의 사회 민주주의 주류와 여러 문제에서 의견을 달리하는 정당”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10월 총선 이후에도 화합당이 정부 구성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있다. 지지율 5%가 넘는 주요 정당 가운데 화합당과 연대를 모색할 좌파 정당이 없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라트비아 정치 분석가인 이바르 아이잡스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민족 간 분열이 라트비아 정치에서 좌파의 발전을 막았다”며 “라트비아에서 좌파라고 하면 ‘전후 공산주의’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 화합당은 중도 성향의 경제학자를 총리 후보로 내세워 사회 민주주의 정당임을 강조하며 세력 확대를 위해 총력전을 벌이는 중이다. 화합당 총리 후보인 바체슬라브스 돔브로브스키스는 지난 6월 공영 LSM방송에서 “지난 3년 간 연구소에서의 생활은 라트비아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력을 줬다”며 자신이 가진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여론조사업체 FACTUM의 조사에 따르면 각 당의 현재 지지율은 화합당(19%), 누가국가를소유하나(16%), 운동당(14%), 새보수당(10%) 국민연합(13%), 녹색농민당(11%), 연합당(5%) 순으로 나타났다.

화합당 총리 후보인 바체슬라브스 돔브로브스키스(왼쪽)와 닐스 우샤코프(오른쪽) 화합당 대표의 사진이 담긴 화합당 광고물을 붙인 버스. 바체슬라브스 돔브로브스키스 트위터 캡처
100석 놓고 역대 최대 경쟁

이번 총선은 역대 라트비아 선거 중 가장 치열한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현재 라트비아에서 정당이 선거에 참여하려면 최소 500명의 당원이 있어야 하고, 설립된 지 1년이 지나야 한다. 라트비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의회 내 100석을 놓고 지난 7일까지 총 1,470명이 후보자로 등록했다. 신화통신은 “의원 한 석당 15명의 후보가 경쟁하는 셈인데, 이는 91년 독립 이후 가장 피 튀기는 경쟁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퓰리즘 우파 정당의 약진도 눈에 띈다. 지난 6월만 해도 지지율이 4.4%에 그쳤던 ‘누가국가를 소유하나’당은 지난달 7%(SKDS 기준)를 기록하며 의회 진출에 필요한 최소 기준선(득표율 5% 이상)을 넘겼다. 여론조사업체 FACTUM이 지난달 말과 이달 초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정당의 지지율이 14~18%까지 나타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바르 아이잡스는 “이 당의 대표인 배우 출신의 아르투스 카이민스가 6월 말 반부패 수사 당국에 적발 돼 구금되면서 정치 음모론을 꺼내 든 것이 지지율 반등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채지선 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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