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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다시, ‘공예마을’을 꿈꾼다.

입력
2018.08.2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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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목수로서의 오랜 꿈이 하나 있다. ‘공예마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다.

그런데 내 꿈을 들은 사람은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언제부터인가 ‘공예’나 ‘공예마을’이라는 단어가 식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는 공예의 핵심적인 요소에 ‘동시대성’이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공예라는 단어가 고루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지금의 공예가 동시대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공예가 시대의 요구를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공예마을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여러 지자체가 지역 활성화를 위해 공예마을을 표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현재도 몇몇 계획들이 추진 중인 것으로 안다. 최근에는 2023년 완공을 목표로 청주 전통공예촌 프로젝트가 발표돼 주목을 받고 있다. 공예인으로서 청주를 포함해 현재 진행 중인 공예마을 프로젝트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하지만 기대에 비례해 그간의 사례들이 보여 준 한계를 무겁게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기존 사례들은 공예의 동시대성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생활에 깊이 스며드는 공예마을이 아니라 용인의 한국민속촌이나 롯데월드처럼 일회성 관광과 이벤트를 위한 기획으로 다가오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공예마을’을 꿈꾼다. 개인이 이루기에는 벅찬 일임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사례를 찾기 힘들기에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내가 꿈꾸는 공예마을의 핵심은 역시 공예작가들의 구성이다. 공예란 ‘감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혹독한 기술 수련은 물론 동시대의 필요와 감성을 기술 속에 녹여내는 경험이 필요하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10년 이상의 수련은 필요하다고 본다. 그래서 대략 10년 차 이상의 공예작가 구성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전통’과의 거리도 중요하다. 기존 사례들은 모두 전통에 적극적으로 기대고 있다. 예를 들어 청주 전통공예촌의 경우 마을 공방을 한옥으로 짓는다는 계획이다. 서울 북촌 공예마을 역시 공예작가들에게 한옥을 임대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어쩌면 당연한 듯 보인다. 하지만 공예에 있어서 전통이란 적절한 방향 설정 없이는 올바르지 않거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생활과 밀착된 기물을 만드는 공예에 있어 전통은 하나의 중요한 레퍼런스(reference, 참조)일 뿐 직접적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예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박물관이 아니라 시장이다.

한옥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는 지금의 주거환경에서 한옥공방은 이벤트라는 측면에서는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공예의 동시대성에는 적절하지 않다. 공예작가가 ‘한옥이라는 특별한 공간에 사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 공예마을은 과거를 소환하는 마을이 아니라 현재를 담아내는 마을로 계획돼야 한다.

공예마을은 현대의 주거 형태와 연동돼야 하며, 전통이 아닌 동시대적인 작업을 하는 공예작가들, 그리고 공예 시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관 분야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고 운영돼야 한다.

숙련된 중진 공예작가들의 공방과 샵이 가득하고, 전문 전시기획자가 운영하는 공동 갤러리, 공예 매체들이 운영하는 공예 강연실과 방송국, 그리고 공예성을 가진 음식점과 카페가 들어선 지금 이 시대 그대로의 공예마을. 관광상품으로서의 공예품이 아니라 우리 실생활을 유용하고 아름답게 할 수준 높은 공예품을 살 수 있고, 그것을 만든 공예작가들을 그들의 공방에서 만나고 교류할 수 있는 마을.

공방에 갇혀 나무만 만지고 사는 목수의 좁은 식견이 꿈꾸는 이런 공예마을이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공예마을이 하나쯤 있는 것도 의미 있는 일 아닐까?

김윤관 김윤관목가구공방 대표 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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