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 많은 것과 싸웁니다. 적이 많다는 얘깁니다. 예를 들어 투병한다고 하거나 병마와 싸운다고 합니다. 싸움까지는 하지 않아도 씨름을 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수학 문제나 사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을 한다 하지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씨름을 하건 싸움을 하건 이런 것들에 무진장 힘을 쓰고 빼는 것인데, 그래봤자 기껏해야 이기거나 판판이 질 수도 있지요. 그러니 꼭 힘을 쓰고 싸워야 할 것에 힘을 쓰고, 그래서 승리를 한다면 그럴 가치가 있겠는데 만약 그럴 가치가 없는 것과 싸워 힘을 뺌으로써 정작 싸워야 할 것과는 싸우지 못하고, 이겨야 할 것에 이기지 못한다면 헛수고입니다.

장일순 선생님의 얘기가 생각납니다. 그분은 좁쌀 한 알이라는 뜻으로 ‘일속(一粟)’이라는 호를 쓰셨고, 장자의 무위자연의 의미를 담고 있는 ‘무위당(無爲堂)’이라는 호도 쓰셨는데, 이 호들 안에 당신이 어떤 존재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한 그분의 마음이 들어 있지요. 1960~7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시고, 80년대부터는 생명운동을 하셨으며, 많은 민주화 운동가들의 존경을 받으신 분이셨지만 시골 원주에서 없는 듯이 사셨고, 대단한 일을 하시면서도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듯이 곧 인위적이지 않게 하셨지요. 선생님이 일속이라는 호를 쓴 것은 거의 틀림없이 소동파의 적벽부에 나오는 창해일속(滄海一粟, 넓고 푸른 바다에 좁쌀 한 알)의 그 일속일 터이니 당신은 좁쌀 한 알처럼 작은 자로 사시겠다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당신 자신은 그렇게 사셨지만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좁쌀 한 알에도 우주의 생명이 들어 있다는 생명존중의 정신을 갖고 있으셨기에 보잘 것 없는 사람도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셨지요. 그분에게는 좁쌀 한 알이 우주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명을 억압하고 훼손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권력자건 제도건 법이건 싸우셨지요. 물론 당신은 일속이고 작은 자이셨기에 폭력으로 투쟁하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당시 많은 민주화 투사나 운동권 인사들처럼 투쟁을 통해 또 다른 권력을 형성하지 않으셨고요. 그러니 그 분이 싸우신 것은 보통사람인 우리가 싸우는 것과 같은 싸움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고 노력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며, 그렇기에 당신 말년을 생명운동에 바치신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귀결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것과도 싸우지 않으셨고, 자신을 위해서는 어떤 것과도 그리고 누구와도 싸우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선생님은 우리에게 귀한 모범을 삶과 죽음으로 남겨 주셨지요. 선생님은 말년에 암을 얻으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암과 싸운다거나 투병한다는 표현을 극구 쓰지 않으셨습니다. 암을 친구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한몸 안에서 같이 잘 지내며 사셨습니다. 그러니 싸울 일이 없었고, 만일 선생님이 싸우셨다면 아마 오래 살고 싶은 욕망과 싸우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싸우셨을 것입니다. 욕망과 두려움이 있으셨다면 말입니다.

사실 위대한 사람들은 자신과 싸우지 남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저희 수도회를 세운 성 프란치스코는 해, 달, 별, 공기 등 모든 것을 형제라고 하였고, 죽음도 자매라고 하였으며, 그러니 지렁이를 형제라고 하거나 이슬람을 형제라고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싸운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지요. 지어낸 얘긴지 모르지만 옛날에 어떤 위대한 선사는 모기장 밖에 손 하나를 내놓고 주무셨다지요. 자기의 피를 모기들에게 보시하기 위해서. 그러니 그분은 우리와 달리 모기와 싸우지도 않으셨겠지요. 이번 여름 더위와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 더위도 한풀 꺾인 뒤에야 ‘괜히 별 거 아닌 것을 가지고 싸운 거 아닌가!’ 생각을 하는 요즘입니다.

김찬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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