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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비자림로 관광객 몰리자
도로 확장하며 삼나무 숲 훼손 논란
‘경관 접근 편의 위해 경관 파괴’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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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릉 추산마을 해안ㆍ인제 곰배령도
도로ㆍ진입로 확장공사 놓고 갈등
주민 반대로 부분 중단ㆍ착공 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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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편의보다 공공적 가치를” 목소리
담양 가로수길 등 경관 보전 사례도
[저작권 한국일보]21일 오전 제주 제주시 비자림로 삼나무 숲이 도로 확포장 공사로 삼나무가 잘려져 나가 붉은 속살을 드러내 있다. 이 공사는 환경파괴 논란이 일면서 현재 중단된 상태다. 김영헌 기자.

21일 오전 제주 제주시 구좌읍 대천교차로에서 송당리 방향 비자림로에 진입하자 양쪽에 10여m가 훌쩍 넘는 아름드리 삼나무들이 왕복 2차로를 따라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짙은 녹색의 삼나무 숲을 따라 5분여를 달리다 보니 갑자기 오른쪽으로 삼나무 대신 붉은 속살을 드러낸 휑한 흙길이 드러났다. 잘려나간 삼나무들은 이미 치워져 있고, 대신 안전펜스가 길게 설치돼 아름답던 숲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돼 매년 수많은 관광객과 도민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즐기던 그 길에 깊은 상처가 생긴 것이다.

제주도는 관광객 증가 등으로 급증하는 동부지역 교통량을 해소하고, 교통안전 문제 해결 등 주민들의 요구에 따라 지난 6월부터 제주 비자림로 2.9㎞구간(대천~송당)을 기존 2차로에서 4차로로 확ㆍ포장하는 공사에 착수했다. 도는 공사 구간에 포함된 삼나무숲 가로숫길 800m 양쪽 부분에 있는 삼나무 총 2,160그루를 벌채할 계획이며, 이 중 915그루를 잘라냈다. 수십년간 그 자리를 지켜왔던 삼나무들이 한꺼번에 잘려 나가자 환경단체들이 반발했다. 또 처참한 모습을 드러낸 비자림로 사진들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제주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환경파괴 논란이 일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비자림로 공사 중단을 촉구하는 청원이 줄을 이었고, 21일 현재 3만명 넘게 청원에 참여했다. 결국 도는 지난 10일 삼나무숲 훼손 최소화 등을 포함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할 때까지 공사를 중단키로 했다. 도는 9월 중순까지 대안을 마련한 후 환경단체와 지역주민, 교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최종 대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하지만 환경단체 등은 공사 전면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반면 지역 주민들은 공사 재개를 요구하면서 갈등은 이어지고 있다.

제주 비자림로 문제는 개발이냐 환경보존이냐는 단순 논리를 뛰어 넘는 그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도로와 주변 나무가 어우러지는 아름다운 경관을 보기 위한 관광객들이 넘쳐나면서 지자체의 주요한 관광 수입원으로 자리잡자 도로 확장을 통해 더 많은 수익을 얻고자 하는 게 본질이라는 것이다. 좁은 도로의 불편 속에서 얻는 환경적 가치보다 더 많은 관광객 유치와 편리함을 쫓는 상업적인 가치가 우선되면서 난개발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관보존과 개발 사이에 신음하고 있는 제2, 제3의 비자림로는 전국 곳곳에 산재해있으며 향후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할 소지도 적지 않다.

[저작권 한국일보]울릉 북면 추산마을 일주도로 확장 공사 현장. 화산섬인 울릉도 특유의 검은색 조면암이 모두 사라지고 건설업체가 육지에서 싣고 온 돌들로 뒤덮였다. 독자제공

경북 울릉군 추산마을 해안도로도 비자림로와 비슷한 처지다.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 급증하자 지난해 초부터 섬의 유일한 간선도로인 일주도로 확장공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절경으로 꼽히던 해안선이 망가졌다. 추산마을 해안은 올 초만해도 화산섬인 울릉도 특유의 검은색 조면암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섬에서 볼 수 없는 얼룩덜룩한 돌로 꽉 들어찼다. 시공업체가 기존 폭 6m의 도로를 8m로 확장하고 바다 쪽 가장자리에 옹벽을 설치하면서 해안가 조면암을 부수고, 대신 육지에서 싣고 온 돌로 쌓아 덮었기 때문이다.

울릉도의 특색 있는 해안선이 사라지자 주민들은 환경 훼손이 지나치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시공업체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자 결국 일부 구간의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하지만 도로 확장을 기다려 온 추산마을 일대 주민들은 작업 재개를 요구하고 나서 민민 갈등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울릉 일주도로 확장공사는 경북도가 1,424억원을 들여 기존 일주도로 39.8㎞ 가운데 20.44㎞ 구간의 폭을 넓히거나 신설하는 개량 공사로, 2020년 12월 마무리될 예정이다.

'천상의 화원'으로 불리며 최근 들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강원 인제군 곰배령. 그러나 늘어난 관광객으로 탐방로 곳곳이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최근 인제군이 기린면 진동리 곰배령 집입도로 확장공사를 추진, 환경훼손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인제군 제공

‘천상의 화원’이라 불리는 강원 인제군 곰배령으로 향하는 진입도로 확장을 놓고도 자치단체와 주민간 갈등이 빚어졌다. 곰배령을 보존하는 의견과 개발을 통해 관광객을 유치하자는 주장이 맞선 것이다.

인제군은 관광객 증가에 대비하고 도로가 좁아 차량 통행 시 주변 주택이 흔들리는 등 주민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4m 가량인 기린면 진동리 곰배령 진입도로 폭을 6.5m로 늘리는 공사를 계획 중이다. 공사 구간은 2.3㎞다.

그러나 인제군이 지난달 진행한 주민설명회에서 일부 주민들은 도로 확장 공사로 관광객들이 더 몰려 자연 훼손이 불보듯 하다며 공사 철회를 요구했다. 당시 주민설명회에서 반대 의견이 우세해 군은 공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군민의 힘으로 살려낸 전남 담양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 전경. 담양군 제공/2018-08-21(한국일보)

도로 확장 과정에서 마구잡이 개발 대신 보전을 선택한 사례도 있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수차례 선정된 전남 담양군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수차례 사라질 위기를 극복했다. 첫번째 위기는 2000년 5월 담양 읍내를 통과하는 국도 24호선 구간을 장하기 위해 메타세쿼이아 178그루를 베어내야 할 형편이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지역 시민단체와 군민들이 힘을 합쳐 메타세쿼이아 지키기에 나선 끝에 도로확장 노선을 바꿔 전체 제거대상 178그루 중 114그루를 지켜냈다. 두번째 위기는 2009년 담양과 전북 순창을 잇는 국도를 2차선에서 4차선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메타세쿼이아 37그루가 베어질 예정이었지만,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들이 나서 도로가 직접 통과하는 4그루만 제거하고 나머지는 살릴 수 있도록 익산지방국토관리청ㆍ담양군과 협의를 이끌어 냈다. 결국 수차례 위기를 넘겨 다시 태어난 담양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연간 70여만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담양메타세쿼이아길의 명성은 전북 순창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담양군과 순창군이 국도 24호선을 따라 메타세쿼이아길을 연장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순창군과 담양군은 2020년 이 길이 완성되면 순창 강천사에서 담양호에 이르는 구간에 순환관광버스를 투입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양 지역의 특성을 살린 인문학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예정이다.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꼽히는 ‘하동포구 100리 벚꽃길’도 보존을 택했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은 2004년부터 2020년까지 경남 하동군 하동읍에서 화개장터까지 19번 국도의 19㎞ 구간을 4차선으로 확장하는 사업을 추진하려 했지만,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강한 반대에 부딪치자 최대한 기존 2차선 도로를 살리는 방향으로 계획을 변경해 공사를 진행 중이다. 부산국토관리청은 당초 계획을 변경해 기존 도로(2차선)은 최대한 살리고, 도로에 편입되는 벚꽃나무를 옮겨 심도록 하는 친환경 확ㆍ포장 개념으로 변경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하동 벚꽃길은 도로폭과 벚꽃나무의 절묘한 배치가 가져다 주는 미학적 가치로 인해 관광객들의 발길을 사로 잡는 대표적 공간”이라며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도로 확장을 단행했더라면 자칫 환경 재앙으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지역인 광릉숲 진입도로에 자전거도로를 개설하려다 무산된 사례도 있다. 경기도와 남양주시는 지난해 광릉숲 길인 남양주 진접읍~봉선사 입구 2㎞ 구간에 자전거도로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환경단체가 “주변 나무 훼손이 불가피해 광릉숲 보전 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발하면서 논란 끝에 결국 계획이 백지화됐다. 결국 남양주시는 결국 광릉숲길이 아닌 길 옆 하천변을 따라 자전거도로를 개설 중이다. 또 광릉숲길인 봉산사~포천 소흘읍 국립수목원 2.3km구간도 크낙새 서식처 등이 파괴될 것이란 반발이 일면서 자전거길 확장계획이 없던 일로 됐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는 “빨리 지나가는 편리성보다 다소 불편하지만 비자림로를 이용하는 수많은 관광객과 도민들이 아름다운 경관을 보면 즐길 수 있는 공공적 가치를 더 고려해야 한다”며 “도로가 좁고, 지나다니는 차량이 늘고 있다는 이유로 도로를 확장하자는 것은 전형적인 난개발의 패턴”이라고 지적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ㆍ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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