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없이도 오갈 수 있던
남서쪽 에콰도르ㆍ페루 통제 강화
해외 탈출 루트 동시에 꽁꽁 묶여
경제위기로 자국을 떠나는 베네수엘라인들이 증가하면서 인접국의 국경폐쇄, 비상사태 선포 등의 조치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18일 에콰도르 툴칸의 루미차카 다리에 국경을 넘으려는 베네수엘라 난민들이 뒤엉켜 있다. 연합뉴스

“베네수엘라로 다시 돌아가느니 여기서 죽겠다.”

데이지 산타나(61)는 에콰도르로 향하는 관문인 루미차카 다리 앞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열흘 전 세탁기, TV, 냉장고 등 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버스를 타고 콜롬비아를 거쳐 900마일(1,450㎞) 떨어진 에콰도르 국경까지 왔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루 4,000여명이 신분증만 보여 주면 무사통과 하던 길이다.

하지만 에콰도르 정부가 18일부터 정상 여권을 소지해야 국경을 넘도록 통제를 강화하면서 발이 묶였다. 극심한 경제난과 부패가 겹친 베네수엘라에서 일반 시민이 여권을 구하려면 수백 달러 뒷돈을 주고도 1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 여권을 구할 수 없으니 결국 베네수엘라에서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페루에서 살려고 가는데 왜 에콰도르가 문을 걸어 잠그는 건가요.” 월스트리트저널이 20일(현지시간) 전한 에콰도르 국경 검문소의 실상이다.

베네수엘라 국민의 해외 이탈이 폭증하면서 난민 유입으로 골치를 썩는 남미 주변국들이 국경을 옥죄고 있다. 그간 여권이 없어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던 베네수엘라 남서쪽의 에콰도르와 페루마저 등을 돌렸다. 이들 국가들은 비상사태를 선포하거나 이민법을 발표해 이동을 엄격히 규제했다. 해외 탈출의 유력한 루트가 동시에 봉쇄되면서 베네수엘라의 해외 이주자들은 고국을 떠나 인접국 콜롬비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됐다. 콜롬비아 유엔 난민사무소의 유키코 이리야마 소장은 “수용시설이 이미 포화 상태”라며 “남미 지역 차원의 포괄적인 해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이주기구(IOM)의 분석에 따르면, 베네수엘라를 등지고 떠난 이주자는 2015년 70만명에서 지난해 164만 명으로 급증했다. 매일 수천 명이 국경을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마두로 대통령의 무리한 포퓰리즘 정책으로 물가가 살인적으로 치솟고 경제가 추락하면서 생필품이 부족해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국민들이 선택한 마지막 탈출구다.

특히 이 중 절반이 넘는 88만명은 ‘베네수엘라→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칠레→아르헨티나’로 연결되는 육상의 도피 경로를 통해 인접 국가로 이동했다. 2015년 8만9,000명 수준에서 불과 2년 만에 10배 가까이 늘었다. 북쪽 중남미나 미국으로 가는 경우에 비해 카리브해를 건너야 하는 위험 부담을 덜 수 있는데다, 1980년대 이후 남미 국가 간 이주가 활발해져 정착하는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 남동쪽 브라질, 軍 병력까지 투입
이주민 1200명 본국으로 쫓겨나
“남미지역차원 포괄적 해법 절실”

하지만 주변국이 돌연 강경 기조로 바뀌면서 베네수엘라 해외 이주자들의 생명 줄이 막혔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은 18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모든 것은 한계가 있다”며 국경 통제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남동쪽의 브라질로 방향을 틀기에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오히려 브라질과는 일촉즉발의 험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브라질 당국은 최근 접경 도시인 북부 호라이마주 파카라이마에 최소 60여명의 군 병력을 투입하기로 했다. 베네수엘라 출신 괴한이 상점 주인을 흉기로 찌르고 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지역 주민들과의 폭력 사태로 번졌고, 이곳에 머물던 이주민 1,200여명은 본국으로 쫓겨났다. 지난해 베네수엘라 국민 2만여명이 브라질로 탈출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조치다. 이처럼 숨통을 쥐고 있는 주변국들이 잇따라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경제위기와 난민문제에 시달리는 베네수엘라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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