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파키스탄 등 미국 영향력 우려에 친중행보


“IMF 지원은 주권 포기 행위”
위기 맞은 터키ㆍ파키스탄 등
美 영향력 우려에 친중 행보

中도 “터키에 36억弗 대출” 등
신흥국 구조 요청에 반색
미중 패권 다툼에 영향 미칠 듯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미국의 경제 압박에 강하게 맞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경제 위기에 처한 신흥국들이 국제통화기금(IMF) 대신 중국에 구제금융 지원을 요청하는 형국이다. 미국의 영향력이 강한 IMF의 지원을 받을 경우 내정간섭에 가까운 긴축 정책을 강요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터키, 파키스탄 등 위기 신흥국의 이러한 친중 행보는 무역분쟁을 통해 본격화하고 있는 미중의 경제패권 다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국제금융센터와 일본 닛케이 등에 따르면 터키 정부는 IMF 구제금융에 대한 거부 방침을 구체화하고 있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연설에서 “(IMF 구제금융 지원은) 정치적 주권을 포기하는 행위”라며 “중국, 러시아 등과 새로운 경제 동맹을 형성할 것”이라고 공언했고,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도 외국인 투자자 6,000여명이 참석한 행사에서 “IMF로 갈 계획은 없으며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흥국 외환보유액. 신동준 기자

터키 경제는 한계에 달한 상황이다. 이 나라 외화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53%로 신흥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갚으려면 내년까지 2,000억달러(224조원)을 빌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미국인 목사 구금, 시리아 사태 등을 두고 터키와 갈등하던 미국 정부가 터키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관세를 2배 올리기로 결정한 지난 10일 이후 리라화 가치가 연초 대비 60% 가까이 급락하며 빚 상환 부담은 증폭됐다. “터키는 IMF에 전화를 거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미국기업연구소)는 진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터키가 IMF 지원 요청을 거부하는 이유는 내정간섭에 대한 우려 때문으로 분석된다. IMF는 통상 경제위기국에 자금을 지원하면서 시장 개방, 기업 민영화, 재정 건전화 등의 조건을 내건다. 이는 재정 긴축, 세금 인상 등 국민적 고통이 따르는 일로, 저금리를 통해 경기를 확장하려는 에르도안 정부의 방침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IMF 최대 출자국으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이 금융 지원에 동의할지 불투명하다는 점도 터키가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연초 대비 통화가치 변화. 신동준 기자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터키의 ‘구원자’로 부상하는 모양새다. 중국 공상은행(ICBC)은 최근 터키에 36억달러 규모의 자금을 대출하겠다고 밝혔고, 중국은행(BOC)의 터키 자회사도 올해 말까지 터키 정부의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을 지원한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터키 외무장관과의 통화에서 “신흥국의 정당한 권익 보호를 위해 함께 하겠다”고 강조했다.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중국의 자금지원 방침이 내정불간섭에 기초하기 때문에 신흥국 입장에선 (IMF보다) 우호적으로 여긴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취약 신흥국인 파키스탄도 IMF를 제쳐두고 중국에 손을 내밀고 있다. 중국과 620억달러 규모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파키스탄은 지난달 중국으로부터 10억 달러를 빌리는 등 올해에만 50억달러에 가까운 대출을 받았다. 지난해 말 201억달러이던 파키스탄의 외환보유액은 지난 5월 159억달러, 지난달 90억달러로 급감하는 추세다. 90억달러는 2개월치 수입대금에 불과하다는 것이 시장 평가다. 초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 역시 중국의 지원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상황이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최근 “국가가 회복되길 원하지만 여기에 IMF의 영향력이나 잘못된 처방은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닛케이는 “베네수엘라도 중국 금융기관에 지원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국가별 국내총생산비중 변화. 신동준 기자

중국은 잇따르는 신흥국의 구조 요청에 반색하는 분위기다.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영향력 확대를 꾀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신흥국 구제를 통해 아시아 및 중동 지역에서 강력한 동맹국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약 신흥국의 과도한 중국 자본 의존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0년 중국으로부터 18억원 규모의 차관을 도입했다가 상환하지 못해 지난해 말 중국 국영기업에 99년간 항구 운영권을 넘긴 스리랑카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국이 자금을 지원한다고 해도 한번에 수천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하면서 투자자 신뢰 회복을 불러오는 구조개혁까지 요구할 수 있는 IMF를 대체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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