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억원의 세금을 체납했더라도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키려고 한 증거가 부족하다면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 박성규)는 임모씨가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출국금지 기간을 연장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법무부는 국세청의 요청을 받아 지난해 5월 임씨에게 출국금지 처분을 했고, 이후 두 차례 그 기간을 연장했다. 임씨는 지난해 11월까지 총 4억1,000여만원의 국세를 체납했는데,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반 회사에 근무하면서 4,300여만원의 소득을 얻었음에도 체납 세금을 내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부는 임씨가 과거 아내와 자녀들이 거주했던 필리핀 등 해외로 자주 출국했다며,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킬 우려가 있다고 봤다. 반면 임씨는 “건물 신축 때문에 많은 돈을 빌렸지만 분양이 잘 안 돼 빚을 갚지 못하는 등 경제적 문제로 세금을 내지 못했을 뿐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킨 것은 아니다”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은 임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임씨가 18회에 걸쳐 필리핀 등에 체류한 사실을 보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킨 건 아닌지 다소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의심스럽다는 사실만으로 체납세액의 강제집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임씨 아내는 하루에 음식점 두 곳에서 주방보조원으로 근무하면서 일당 12만원을 받았다"며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켜 경제적 여유를 가지고 있는 자의 배우자가 하루에 두 곳의 음식점에서 일당을 받는 생활을 했을 것이라고 보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임씨와 아내가 근로소득이 있는데도 체납된 세금을 내지 않은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그 소득은 생계 유지와 자녀 교육에 전부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달성하려는 공익에 비해 임씨가 받게 될 불이익이 더 크므로 재량권 일탈ㆍ남용으로 위법한 처분”이라고 밝혔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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