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년 로마 약탈을 그린 프랑스 화가 조셉 노엘 실베스터의 1890년 그림.

도시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지만, 1500년 지중해와 유럽 대륙의 패권을 누린 제국 로마의 수도이자 서방 기독교 세계의 정신적ㆍ문화적 구심이라는 상징적 가치를 지금도 누린다. 역사가 시작된 이래 로마는 모두 6차례 약탈의 시련을 겪었다. 410년 서고트족(Visgoths)의 침략은 그 6번 중 2번째이지만, 켈트 골족(Celt Gauls, 갈리아)에 의한 B.C 360년의 수난은 아우구스투스의 황제체제(B.C 27년)로 시작된 ‘로마 제국’ 이전의 일이었다. 따라서 ‘영원의 도시(Eternal City)’라 불리던 로마의 피침은 410년의 저 사건이 최초라 할 만했다. 지중해 세계를 뒤흔든 그 충격을 당시 베들레헴에 머물던 성직자 겸 신학자 히에로니무스(St. Jerome)는 이렇게 기록했다. “목소리가 목구멍에 붙어 나오지 않고, 흐느낌에 숨이 막힌다.(···) 세계를 장악해온 도시가 장악되다니.”

395년 숨진 제정 마지막 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는 두 아들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에게 제국을 나누어 통치하게 했다. 그렇게 동-서로마가 분할되면서 제정은 끝이 났고, 동로마는 콘스탄티노플로, 서로마는 라벤나로 수도를 옮겼다. 하지만 로마는 제국의 상징적 수도로 건재했다. 경제적으로 부유했던 동로마가 비잔틴 제국으로 번성한 반면 서로마는 군벌의 발호와 게르만의 침탈로 출발부터 불안했다. 훈족에 밀려 대이동을 시작한 게르만족의 일파인 서고트족은, 지중해 서쪽 즉 이탈리아 북부를 거쳐 이베리아 반도로 나아간 민족이었다.

제국 말기 테오도시우스는 서고트와 평화조약을 맺고 경제적 지원을 약속했지만 로마 분할 이후 그 약속은 백지수표가 됐다. 서로마는 지원의 여력이 없었고, 동로마는 의지가 없었다. 서고트의 젊은 왕 알라리크 1세(Alaric I, 재위 395~410)는 발칸-이탈리아반도를 휩쓸며 약탈을 재개했다. 그 결과가 410년 8월 27일의 로마 약탈이었다. 그들은 사흘 동안 로마의 숱한 공공시설과 황제들의 영묘를 파괴하고, 살육과 강간을 자행했다. 황제의 누이를 비롯한 수많은 귀족ㆍ시민들이 노예로 팔려나갔다. 서고트는 반도를 종단해 남단까지 약탈한 뒤 이베리아 반도로 진출, 서고트왕국(711년 이슬람에 멸망)을 건설했다.

물리적 피해는 45년 뒤 이교도인 반달족의 약탈이 더 커서 ‘반달리즘’이란 말을 낳았지만, 로마의 상처는 410년 오늘 시작됐다. 최윤필 기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