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오늘 루브르의 '모나리자'가 도난 당했다가 2년여 뒤 회수됐다.

1911년 8월 21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가 루브르 박물관 전시장 벽에서 사라졌다. 그날은 휴관일이어서 경비 요원 수가 평소(약 200명)의 절반이었고, 야간 근무자는 더 적었다. 또 박물관측이 소장품 사진 사본작업이 한창이던 때여서 사진가 등 외부인의 출입이 잦았고, 작품을 잠깐씩 옮기는 일도 상대적으로 빈번했다. 전반적인 보안의식 자체도 요즘 같지 않았을 것이다. 박물관측이 도난 사실을 알게 된 것도 하루 뒤인 22일이었다.

파리 경시청은 박물관을 임시 휴관하게 한 뒤 60여명의 전담 형사를 투입, 직원과 전 직원, 외부 용원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알리바이 조사를 벌였다. 갓 도입된 지문 검사도 병행했다고 한다. 그림만 떼어 가고 버려둔 액자에는 범인의 것으로 보이는 왼손 엄지 지문이 남아 있었다. 다만 미국 장르 작가 R A 스코티의 논픽션 ‘사라진 미소’에 따르면, 당시 지문 채증 기준은 오른손이어서 왼손 지문은 별 의미가 없었다고 한다.

해프닝으로 밝혀졌지만, 시인 아폴리네르가 유력한 용의자로 경찰 조사를 받았는데, 한 도둑이 언론에 제보하며 밝힌 이름이 그의 작품 속 주인공 이름이었고, 평소 그가 “박물관은 예술가의 상상력을 마비시킨다”며 박물관 파괴를 주장한 것도 의심을 사게 했다. 아폴리네르의 친구인 화가 피카소도 공범 혐의로 취조당했다. 저 모든 일이 당시 한창 독자를 확장해 가던 신문 등 활자매체를 통해 유럽과 전 세계로 알려졌고, ‘모나리자’는 일약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됐다.

그림은 27개월 뒤인 1913년 12월 회수됐다. 범인은 박물관에서 2년 남짓 액자 유리공으로 일한 23세 이탈리아 남성 빈센초 페루자(Vincenzo Peruggia)였다. 피렌체의 한 미술상에게 작품을 팔려다가 체포된 그는 경찰 조사에서 이탈리아의 예술품이 프랑스에 있는 게 못마땅해 조국에 작품을 돌려주려고 했다고, 이탈리아 정부 포상금과 국민적 환호를 기대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포상금 대신 7년형을 살았지만, 이탈리아인들의 격려 편지와 선물이 그의 감방으로 쇄도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훔친 건 세계의 관광객들이 연일 손톱만 한 크기로나마 감상하려고 줄을 서는 루브르의 대표작 ‘모나리자’를 2년 넘게 자신의 창고에서 독점적으로 감상하는 기회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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