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지금이 골든타임] <상> 수술 미룰수록 종기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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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8년까지 재정 안정 위해
2013년엔 “12.9%로 인상해야”
올해는 “16.3%로 올려야”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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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방식 그대로 기금 고갈되면
2057년 보험료율 24.6%로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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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대체율 40%로 줄이더라도
보험료율 한 해라도 빨리 올려야
미래세대가 짊어질 무게 줄어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국민연금공단 남부지역본부 사무실 앞을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홍인기 기자

2057년 40세가 된 국민연금 가입자 김미래(2017년생ㆍ가명)씨는 갑작스럽게 날아온 보험료 납부 고지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매달 9%의 보험료율을 부담하고 있었는데, 국민연금기금이 소진돼 ‘부과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소득의 24.6%를 보험료로 내야 할 상황이다. 김씨의 자녀 어깨는 더 무겁다. 김씨의 자녀가 국민연금 가입자로서 2088년에 부담할 보험료율은 최고 37.7%로 올라 월 100만원을 벌면 37만7,000원을 내야 한다. 국민연금은 세대 간 연대를 전제로 만든 제도인데, 2088년에도 합계출산율이 1.05명을 밑돌고 평균수명은 남녀 모두 90세를 훌쩍 넘어 어쩔 수 없다는 게 미래정부의 설명이다.

지난 17일 제4차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이하 추계위)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국민연금이 쌓아 놓은 기금이 2057년 고갈되면서 벌어질 것으로 예상한 가상 상황이다. 국민연금을 지금이라도 수술하지 않으면 이미 커질 만큼 커진 종기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경고다.

당장의 고통은 불가피하겠지만, 국민연금 개혁이 빠르면 빠를수록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는 줄어든다. 소득대체율을 예정대로 2028년까지 40%로 감액하고 2088년까지 국민연금이 고갈되지 않게 유지하려면 2020년에 보험료율을 올릴 경우 16% 수준이지만, 10년을 허비하다 2030년에 올릴 경우 17.8%, 그리고 2040년이 되면 20.9%로 올려야 한다.

제도발전위 위원들이 내놓은 두 가지 개혁안조차도 당장의 급격한 인상을 막기 위해 미래세대에 부담을 많이 지우도록 설계돼 있다. 소득대체율을 45%로 유지하는 1안에서는 2034년 이후 5년마다 0.69~2.22%포인트씩 보험료율이 치솟도록 설계돼 있고, 소득대체율을 40%로 유지하는 2안은 최종 보험료율을 17.2%로 묶는 대신 수급개시연령 상향이나 급여 삭감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마저도 안 한다면, 미래세대가 ‘폭탄’을 떠안는 건 당연하다. 실제 2013년 3차 추계에서 2088년까지 국민연금 재정 안정을 위해 필요한 보험료율은 2015년 인상 기준 12.9%였지만, 이번 4차 추계에서 2020년 16.3%로 불과 5년 만에 3.4%포인트 높아졌다.

연기금 고갈 위기는 우리나라만 겪는 특수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보다 앞서 연금제도를 도입한 선진국들은 20세기 중ㆍ후반에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1889년 세계 최초로 공적연금 제도를 도입한 독일은 1920년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데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금의 적립기금을 전시자금으로 전용하면서 기금이 소진돼 1957년 부과방식으로 변경했다. 미국도 1935년 공적연금 도입 후 적립금을 쌓다가 수급자가 늘고 급여 수준이 향상되면서 1972년 부과방식으로 전환했다. 반대로 부과방식으로 제도를 도입했던 캐나다는 고령화가 심각해지며 보험료율이 급격히 오를 것을 막기 위해 적립금을 쌓는 적립식으로 전환하며 보험료를 올렸다. 미리 손질을 해야 충격을 그나마 흡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늦을수록 국민 저항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브라질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은 현재 연금 수급연령을 55세에서 65세로 10년 늦추고 납부기간을 늘리는 등의 연금개혁을 추진 중이지만, 시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반대하면서 좌초될 처지에 놓여있다. 김상균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명예교수)은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70여개 국가 중에 완전한 부과방식을 적용한 나라는 없으며 모두 제도를 운영하며 수정해 수정적립 방식이나 수정부과 방식을 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정부에서조차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개혁을 미룬다면 손 쓰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릴 수 있다고 말한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은 모든 가입자가 자신이 낸 보험료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제도여서 적립금 고갈은 불가피하다”며 “소득대체율 40%라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려면 보험료율은 16% 수준까지 가능한 한 빨리 올라야 미래세대 부담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세대가 보험료 부담을 짊어지되 소득보장 수준은 국민연금의 주인인 국민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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