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 육성
김숨 작가가 기록해 두 권으로 펴내
기승전결 정연한 서사 없이
이어지는 독백이 詩와 같아
#2
“나는 나를 사랑해 살아남아
너도 너를 사랑해…”
김숨 작가. 사진=김흥구 작가, 현대문학 제공

어떤 고통은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고통을 묘사하는 언어들이 그 앞에서 부서지고 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93), 길원옥(90) 할머니의 삶은 그런 고통이다. 그 삶을, 고통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건 육성뿐이다.

김숨(44) 작가가 받아 적은 두 할머니의 육성이 소설이 돼 나왔다. 김 할머니의 증언집 ‘숭고함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야’와 길 할머니의 증언집 ‘군인이 천사가 되기를 바란 적 있는가’. 올 들어 할머니들을 20여 번 만나 들은 이야기에 ‘아주 조금의’ 상상력을 보탰다. 그래서 ‘증언 소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암 투병 중인 김 할머니는 시력을 잃었다. 길 할머니는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 20년간 할머니들과 동고동락한 김동희 전쟁과인권여성박물관 관장이 “더 나빠지시기 전에 삶을 글로 남겼으면 한다”고 올 초 김 작가에게 부탁했다. 끝내 듣지 않은 ‘그들’을 향해 이미 수없이 증언했지만, 책이 된 말들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김 작가의 ‘한 명’(2016), ‘흐르는 편지처럼’(2018)은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정통 장편이다. 이번 소설은 시에 가깝다.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끌려 가고…’ 식의 정연한 서사 없이 이어지는 넋두리가 어떤 증언보다 더 리얼하다. 할머니들은 ‘몇 번째 피해자’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 김복동’, ‘귀한 인간 길원옥’으로서 독백한다.

김 할머니는 62세에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나’를 찾았지만, 외로워졌다. “큰언니는 발을 끊고. 나는 큰언니가 벗고 간 블라우스를 입고. 꿈에 언니들도 간혹 나와…… (…) 언니들이 나를 보고 달아나.” 마음을 꽉 닫고도 사랑을 그리워한다. “사랑이라는 말을 입에 담아 본 적 없어, 일생을…… 37년을 내 옆에 그림자처럼 있었던 사람에게도 그 말을 안 했어, 못 했어. 끝까지,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어. 못 견디게 보고 싶은 게 뭐야? 죽을 만큼 보고 싶은 게. 사랑은 내게 그 냄새도 맡아 본 적 없는 과일이야. 빛깔도 본 적 없는.”

길 할머니가 붙들고 있는 기억은 단 두 개다. “평안북도 평양시 서성리 76번지”라는 집주소, 속아서 중국으로 떠나던 그 날 남동생의 목소리. “누나- 빨리 갔다 와!”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태어난 길 할머니는 끝내 사랑을 놓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사랑해서 죽지 않았어. 나를 사랑해서 오늘까지 살 수 있었어. 말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를 사랑해서 할 수 있었어. 너도 너를 사랑해. 네가 있어야 내가 있지, 내가 있어야 네가 있고. (…) 내가 나를 사랑해야 용서도 할 수 있어. 나를 사랑하는 거…… 그것이 시작이야. 그리고 말해. 군인들이 천사가 될 때까지.”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