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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신발 끈과 아버지

입력
2018.08.19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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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발 끈을 매는데 서투르다. 서투르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분명히 나는 신발 끈을 혼자서 맬 수 있다. 하지만 그 메커니즘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난해하다. 왼손으로 한 쪽 끈을 잡고 말아 그 사이로 오른쪽 끈의 허리를 뺀다. 그리고 오른쪽 끈의 끝을 남은 구멍으로 살살 달래듯이 욱여넣으며 질질 끌어 매듭을 낸다. 그 모습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자기 눈을 의심한다. “뭐? 그런 식으로도 신발 끈이 묶여?”

이 매듭은 그럭저럭 보통 매듭처럼 원 두 개와 선 두 개로 구성된다. 하지만 매번 이들끼리는 서로의 알맞은 위치 관계를 잃은 채 정면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60도로 느슨하게 뒤틀려 있다. 그래서 매듭은 구경꾼의 경탄을 자아낼 뿐 쉽게 풀어져 주인을 불편하게 만든다. 올바른 방법을 동무들에게 배워보기도 했지만, 한두 번 성공하다가도 금세 이전 버릇으로 돌아가 기괴한 매듭을 짓곤 했다.

항변을 하려면 30년 전 어느 날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당시 여섯 살의 미취학 아동이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야채를 먹지 않거나 이빨을 닦지 않았다고 혼나며 세상 매운맛을 제법 보던 중이었다. 그날 나는 아침부터 놀이터로 뛰어나가기 위해 현관에 들어섰다. 하지만 신발 끈을 아직 못 묶던 터라, 평소처럼 신발에 발을 넣어놓고 휴일이라 쉬고 계셨던 아버지를 불렀다. 그러자 정말 갑작스러운 불호령이 떨어졌다.

“몇 살인데 신발 끈을 아직도 못 매. 오늘 마지막으로 보여줄 테니 밤까지 신발 끈을 못 매면 다리를 전부 분질러 버리겠다.” 그건 지금까지의 삶의 경험에서 절대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게다 그 강도는 밥에서 소시지만 골라 먹은 다음에 이빨을 닦지 않고 잠자리에 드는 것보다 훨씬 심했다.

나는 최후로 신발 끈을 묶는 방법을 관전했는데, 눈물로 시야가 가려서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하루아침에 채득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일단 울면서 놀이터로 뛰어나와 한구석에서 신발 끈 묶기를 연구했다. 이렇게 저렇게 묶어 보고 비틀어 보다가, 오후에 간신히 물리적으로 신발 끈을 묶을 수 있는 비책을 개발했다. 한쪽으로 매듭을 만들고 끈을 억지로 집어넣는 방법이었는데, 기형적인 모양이었지만 그럭저럭 형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저녁에 나는 아버지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손으로 그 비술을 실현했다. 간신히 일궈낸 그 모양새는 미학적으로 끔찍했지만, 아버지는 아침과는 다른 어조로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냈다. 나는 모양을 지적받지 않아 조금 의아했지만, 정강이의 두 뼈가 온전하게 붙어있을 수 있으므로 크게 안도했다.

이후 나는 그 방법 그대로 신발 끈을 묶고 있다. 탄생 이래로 그것은 유전자처럼 바꿀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나는 신발 끈을 묶을 때마다 불호령을 떠올리며 의아해했다. 이윽고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아이가 야채를 안 먹는 것과 신발 끈을 못 묶는 것과의 차이를 깨닫고야 말았다.

아이가 야채를 안 먹으면 그냥 안 먹을 뿐이고, 글자를 모르면 모를 뿐이다. 하지만 신발 끈을 못 묶으면 천방지축 아이가 집 밖에 나갈 때마다 따라가 신발 끈을 묶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귀찮은 일이었을까. 그래서 앞으로의 평온한 주말을 보장받기 위해 아버지는 한방에 혼쭐을 내는 방법을 택했고, 기괴하게라도 매듭을 묶자 흡족했던 것이다. 이 ‘어른의 품’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는 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유년기엔 현관에서 신발 끈을 묶으며 원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면, 근래에는 요란하게 들락거리면서 천연덕스럽게 신발 끈을 묶어 달라는 얄미운 아이를 떠올린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후루룩 풀어지는 기괴한 매듭을 지으며 이제 정말 어른이 되었구나 혼자 되뇌는 것이었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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