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평직원서 출발, 최고수장 오른 입지전적 인물
국제분쟁 중재 등 업적… 2001년 노벨평화상 수상
“인도주의적 개입 신개념으로 유엔에 활력” 평가
2003년 이라크 침공 반대… 한때 美와 불편한 관계도
전 세계 지도자들 애도 물결… 트럼프는 언급 없어
18일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 있는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의 초상화에 검은 리본이 달려 있다. AP 연합뉴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이 1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80세.

스위스에 본부가 있는 ‘코피 아난 재단’은 이날 트위터에서 “매우 슬프게도 아난 전 총장이 짧은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고통이 있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에든 다가가 깊은 연민으로 많은 이들을 어루만져 주었다”면서 아난 전 총장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난 전 총장은 스위스 베른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아프리카계 출신 첫 유엔 사무총장이었던 아난 전 총장은 유엔 사상 처음으로 평직원으로 출발, 최고 수장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특유의 카리스마뿐 아니라, 평소 공손하고 절제된 언행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었다. 삶의 대부분을 유엔 회의실, 복도에서 보낸 그는 2003년 “나는 근본적으로 아프리카인이라고 느낀다. 내 뿌리는 아프리카”라면서 “어릴 적 가르침이 내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1938년 영국 식민지였던 가나 쿠마시에서 부족장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난 그는 가나 과학기술대 재학 도중 미국으로 유학했다. 미네소타주 매칼레스터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유엔에서 그의 경력은 24세였던 1962년 세계보건기구(WHO) 예산ㆍ행정담당관으로 시작됐다. 케냐 나이로비와 스위스 제네바, 이집트 카이로 등의 유엔 기구에서 일선 행정 경험을 쌓았고, 인사관리, 기획예산 책임자, 감사관 등 요직을 거쳐 1993년 부트로스 갈리 당시 사무총장에 의해 유엔평화유지군(PKO) 담당 사무차장으로 발탁됐다.

그리고 4년 후인 1997년 1월, 제7대 유엔 사무총장에 올랐다. 유엔 입성 35년 만이었고, 평직원 출신 첫 번째 사무총장의 탄생이었다. 이후 유엔 개혁과 에이즈(AIDS) 확산 방지, 세계 빈곤 퇴치, 아프리카 내전 등 지역분쟁 중재 등과 관련해 여러 업적을 남겼다. 2002년 사무총장 재선에 성공, 2006년 말 두 번째 임기를 마치고선 42년간의 유엔 생활을 마무리했다.

특히 1998년 유엔사찰단 문제 협의를 위해 이라크 바그다드를 방문, 사담 후세인과의 직접 협상을 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하나로도 꼽힌다. 독재자 후세인과 악수를 한 게 일부 논란이 되긴 했지만, 일시적이나마 이라크와 서방의 긴장을 완화시켰기 때문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선 “불법적이다”라면서 반대하기도 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그에 대해 “9ㆍ11 테러, 미국의 이라크 침공 등 국제적 혼란의 시기에 유엔 수장을 지냈다”며 “양심과 도덕적 중재자로서 유엔과 자신을 내던졌고, PKO가 지킬 평화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 ‘인도주의적 개입’이라는 신개념을 창안해 유엔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아난 전 총장은 2013년 2월 시사주간지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전쟁은 내게 가장 암울했던 순간이었다. 내가 그걸 막을 수 없었다는 사실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재임 시절인 2001년에는 노벨평화상도 유엔과 함께 공동 수상했다. 현직 유엔 사무총장이 이 상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던 데다, 노벨평화상 100주년 기념 수상자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더욱 컸다. 퇴임 직후인 2007년 창립된 세계 원로정치인 모임 ‘엘더스(The Elders)’의 회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2013년 이 단체 회장에 올랐고, 자신의 이름을 딴 재단도 만들어 글로벌 거버넌스 문제에도 집중했다.

한국과의 인연도 적지 않다. 1998년 제4회 서울평화상을 받은 그는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공개 지지했다. 북한 방문을 희망했지만 실현되진 못했다. 아난 전 총장이 이끌던 ‘엘더스’는 지난 4월 청와대에 서한을 보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문재인정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 지지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날 그의 별세 소식에 전 세계에선 애도 물결이 이어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성명을 내고 “깊은 슬픔으로 그의 별세 소식을 접했다”며 “그는 (세상을) 선(善)으로 이끄는 힘이었고, 나는 그를 좋은 친구이자 멘토라고 부르는 게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난 전 총장은 유엔 그 자체였다”며 “평직원에서부터 시작해 독보적인 위엄과 결단력으로 유엔을 새천년으로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도 트위터에서 “위대한 지도자이자 유엔의 개혁가인 그는 (자신이) 태어난 세상보다 더 나은 세상을 남겼다”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그의 헌신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문제 해결에 있어서의 차분하고 단호한 접근법은 절대 잊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구테흐스 총장에게 조전을 보내 “고인의 유족과 유엔 사무국 직원들, 가나 정부에 진정한 위로와 지원의 말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역시 “글로벌 문제의 공동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우리는 그의 목소리를 그리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아직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아난 전 총장의 타계 소식이 전해진 이후 10개에 가까운 ‘폭풍 트윗’을 올리긴 했지만 대부분 정적들에 대한 불만이나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표출한 것이었을 뿐, 아난 전 총장에 대한 애도 언급은 전혀 없었다. 앞서 아난 전 총장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를 표명했을 당시,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와 불편한 관계였던 적이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와 관련, “유엔은 사무총장과 미국의 대통령이 주요 이슈에 같은 의견을 공유했을 때 가장 잘 굴러갔는데, 미국의 이라크 침공 반대로 인해 백악관이 분노하면서 그의 재임기간이 타격을 입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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