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국민 교과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전통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 선사
국민들이 쉽게 다가서게 만들어
전통ㆍ외래 문화 ‘창조적 융합’
#가장 공들인 분야는 미술사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 연구 통해
우리 문화의 정체성 대중적 탐구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 ‘새 지평’
#“전통이란 과거의 유물 아니다”
세계화에 ‘서구문화 종속화’ 우려
전통 존중하되 변화된 현실 반영
우리만의 성숙한 미래 문화 꿈꿔
답사 여행을 역사, 문화재 전공자와 학생을 넘어 전 국민에게 퍼뜨린 사람이 누구냐고 한다면, 당연히 유홍준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느 나라든 그 나라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이 있다. 전문적 지식인이 학술 연구에 주력하는 이들이라면, 공적 지식인은 시민들과의 적극적 소통을 통해 정치·문화적 계몽을 추구하는 이들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놈 촘스키와 대니얼 벨, 프랑스의 장 폴 사르트르와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는 전후 서구사회의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들이었다.

광복 이후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공적 지식인들로는 함석헌, 리영희, 이효재, 백낙청, 최장집, 박세일, 그리고 강준만을 꼽을 수 있다. 문화 영역에서는 이어령, 김우창, 그리고 유홍준이 대표적인 공적 지식인들이라고 나는 생각해 왔다. 유홍준을 주목한 까닭은 세 가지다.

첫째,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등의 책들을 통해 우리 문화유산을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둘째, ‘화인열전’ 등의 저작들을 통해 미술사를 체계화하는 데 작지 않게 기여했다. 셋째, 수많은 강연을 통해 대중과 활발히 소통함으로써 문화유산은 물론 미술사에 대한 시민적 계몽에 앞장 서왔다.

유홍준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헝가리 태생의 예술사가 아르놀트 하우저가 떠오른다. 서구사회의 경우 문화사의 중심을 이룬 것은 미술사였다. 하우저는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에서 조토에서 피카소에 이르는 미술사를 변화무쌍하게 추적함으로써 서구 예술과 문화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제공했다. 우리 사회의 경우 전통문화는 물론 현대미술에 많은 국민들이 좀 더 가깝게 다가설 수 있게 한 지식인은 바로 유홍준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

유홍준은 194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미학 및 미술사학을 공부한 그는 미술평론으로 공적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1993년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서였다. 그 동안 그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국내편 11권과 일본편 4권을 내놓았다. 2015년 기준으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7)는 350만권이, 이 가운데 제1권은 100만권이 훌쩍 넘게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히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국민적 교과서라 할 수 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답사의 용도에 맞게 포켓본으로 발간되는 등 다양하게 진화 중이다. 창비 제공

소설이 아닌 답사기가 이렇게 널리 읽힌 까닭 중 하나는 박물관으로서의 국토 인식에 있다.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제1권의 첫 문장이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라면, 그 대표적 유물은 문화유산이다. 제1권 제1장 ‘남도답사 일번지-강진ㆍ해남(1)’의 첫 쪽에서 유홍준은 말한다.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 무위사, 다산초당, 백련사, 칠량면의 옹기마을, 사당리의 고려청자 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 윤선도 고택인 녹우당, 그리고 달마산 미황사와 땅끝(土末)에 이르는 이 답사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

이 구절을 읽으면 절로 강진과 해남의 풍광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문화유산이 곳곳에 놓인 우리 국토야말로 진정한 박물관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문화유산에는 미술ㆍ건축ㆍ문학 등 다양한 예술양식이 공존한다. 미술과 인문학에 대한 현란한 지식을 바탕으로 유홍준은 우리 예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선사한다.

이 책은 답사 여행기인 동시에 우리 문화의 전통과 현대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다. 답사기를 따라 가다 보면 정겨운 국토 안에서 살아온 선조들의 인생과 그 인생들이 주조한 역사를 만나게 되고, 그 현재적 의미를 돌아보게 된다. 이 여행기는 망원경처럼 북한 지역까지 확대됐다가 현미경처럼 서울 문화유산에 초점을 맞춘다.

주목할 것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오랜 시간 읽히게 된 비결이다. 유홍준은 답사 지역을 넓혀가는 과정에서 우리 미술과 문화, 역사에 대한 이해의 깊이를 능수능란하게 더함으로써 독자들의 흥미를 잃지 않게 한다. 흥미가 감동으로 바뀌고, 그 감동이 다시 전통예술과 문화에 대한 성찰로 이어지는 게 이 책의 미덕이다.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

유홍준의 본령은 미술비평과 미술사학에 있다. 미술가와 미술사를 아우르는 연구가 그의 일차적인 정체성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대중적 명성에 가려져 있어 그렇지 그가 펴낸 미술평론집과 미술사 연구들은 주목 받아 마땅하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유홍준의 저작은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다. 이 평론집에서 그는 이응로, 변관식, 박수근, 이중섭에 더하여 오윤, 신학철, 김정헌, 이종구, 임옥상, 강요배의 작품을 주목하고 분석한다. 신학철과 임옥상 등 민중미술가들을 널리 알리는 데 유홍준의 기여는 결코 작지 않다.

유홍준의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 오윤, 신학철 등 민중미술가들의 작품에 주목하고 분석한다. 창비 제공

미술사는 유홍준이 가장 공들인 분야다. ‘조선시대 화론 연구’, ‘화인열전’(1~2), ‘완당평전’(1~3), ‘추사 김정희’, 그리고 ‘유홍준의 한국 미술사 강의’(1~3)는 그동안 펴낸 미술사 저작들이다. 그에 따르면, 인문학의 꽃이 문화사라면 문화사의 꽃은 미술사다. 그가 겨냥한 것은 미술사를 통해 문화사를 연구하고 그 과정에서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데 있다.

‘화인열전’과 ‘추사 김정희’에서 유홍준이 채택한 미술사의 방법은 평전이다. 이탈리아의 화가이자 건축가,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서 볼 수 있듯, 평전은 미술사학과 인문학이 결합된 영역이다. 연담 김명국에서 공재 윤두서, 관아재 조영석,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능호관 이인상, 호생관 최북, 단원 김홍도를 거쳐 추사 김정희에 이르는 평전은 인문학으로서의 미술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그 동안 유홍준의 저작과 활동에 대해 좋은 평가만이 있던 것은 아니다. ‘추사 김정희’를 위시한 그의 연구에 대해 학문적 엄격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또 왕성한 그의 대중적 활동에 대해선 아카데미의 관점에서 비우호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후자의 문제에 대해 나는 유홍준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파악하고 싶다. 시민들과의 생산적 소통은 공적 지식인이 가져야 할 미덕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최근까지 유홍준은 우리 미술과 문화유산에 대한 책을 열정적으로 발표해 왔다. 그의 저작들이 선풍적 인기를 모은 까닭은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 높은 논리에 있다.

이 못지않게 주목할 것은 이 시기에 문화의 세계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문화의 세계화에 맞서 전통을 어떻게 계승하고 문화적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지를 미술사 연구와 문화유산 답사를 통해 유홍준은 성실하고 깊이 있게 모색해 왔다. 바로 이점이 ‘유홍준 열풍’의 또 하나의 이유이자 우리 현대 지성사에 대한 유홍준의 기여라고 나는 생각한다.

문화의 미래

문화는 정치ㆍ경제와 더불어 사회를 구성하는 주요 영역이다. 이 문화는 이중적 의미를 갖는다. 한 집단이 갖는 공동의 생활양식과 삶의 이유를 제공하는 의미체계가 그것이다. 문화를 이루는 요소들 가운데 예술이 갖는 위상은 각별하다. 예술은 미적 즐거움을 안겨준다. 더하여, 인간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미와 통찰을 선사한다.

1980년대 석굴암 본존불 앞에 선 유홍준. 휴휴당 제공
카메라 들고 답사다니던 시절의 유홍준. 휴휴당 제공

1980년대 이후 예술을 포함한 우리 문화가 직면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앞서 말한 문화의 세계화다. 문화의 세계화란 고급문화는 물론 대중문화가 세계 시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것을 말한다. 문화의 세계화는 지구적 차원에서 문화의 ‘동질화’를 낳아온 한편, 미국문화로 대표되는 서구문화에의 ‘종속화’를 가져 왔다.

이 문화의 세계화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어느 시대든 전통문화는 외래문화와의 ‘혼융’을 이루고, 이 혼융을 통해 문화는 성숙하고 발전하게 된다.

“전통이란 과거에 존재하는 유물이 아니라 우리가 확보하고 세워가야 하고, 또 가게끔 되어 있는 흐름인 것이다. ‘개화바람’과 ‘신문화운동’의 과정에서 한때 단절이 있었고 굴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또 세월이 흘러 그 자체가 전통의 맥이 되고 있다.” 1996년에 나온 ‘다시 현실과 전통의 지평에서’에서 유홍준이 강조한 말이다. 전통문화를 존중하되 변화된 현실을 반영하는 새로운 전통문화를 일궈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화가 존재의 이유를 안겨주는 의미체계라면, 바람직한 의미를 위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창조적 혼융’은 오늘날 더없이 중요하다. 문화에 내재된 자발성을 존중하면서도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할 창조적 혼융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우리 문화의 미래에 부여된 매우 중대한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이효재의 ‘한국의 여성운동’이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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