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튼 존 등 추모 물결 이어져
전설적인 '솔의 여왕' 어리사 프랭클린이 지난해 11월 엘튼 존 에이즈 재단 기금 마련 무대에 서 공연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솔(soul)의 여왕’이 하늘의 별이 됐다.

미국 가수 어리사 프랭클린이 16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 자택에서 눈을 감았다. 프랭클린은 2010년부터 췌장암 투병 중이었다. 지난해 11월 뉴욕에서 열린 ‘엘튼 존 에이즈재단’ 기금 마련 공연이 그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약간의 ‘존중’뿐.” 프랭클린의 대표곡 ‘리스펙트’의 가사다. 여성이자 흑인으로서 프랭클린은 몸 사리지 않고 인권 운동에 힘을 보냈다. 1965년 발표한 ‘리스펙트’는 1960년대 인권운동을 상징하는 대표곡이 됐다. 프랭클린은 다른 여성 가수들에게 “여성이 노래 부르고자 하는 이유를 만든 가수”(흑인 알앤비 가수 메리 제이 블라이즈)였다.

16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의 헐리우드 명예의 거리의 아레사 프랭클린 별위에 추모의 꽃과 사진이 놓여 있다. AP=연합뉴스

프랭클린은 1942년 테네시주 멤피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침례교 목사, 어머니는 가스펠 가수였다. 둘은 프랭클린이 6세 때 이혼했다. 프랭클린은 가스펠 가수 머핼리아 잭슨, 클래라 워드 등에게 음악을 배웠고, 14세 때 디트로이트에서 가스펠 가수로 데뷔했다. 18세 때 솔 가수로 전향해 뉴욕으로 무대를 옮겼다. 몇 년 뒤 발표한 ‘리스펙트’로 스타 중의 스타가 됐다.

프랭클린은 폭넓은 음역대와 리듬감, 호소력 등을 고루 갖춘 독보적인 가수다. 1987년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2010년 음악전문잡지 ‘롤링스톤’이 선정한 ‘역대 가장 위대한 가수 톱 10’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래미상을 18차례 받았고,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 곡 최다 보유 기록도 썼다. ‘아이 세이 어 리틀 프레이어’, ‘내추럴 우먼’ 등의 히트곡을 줄줄이 냈다.

프랭클린의 폭발적 가창력이 입증된 장면. 2015년 워싱턴에서 열린 케네디센터 아너스 갈라쇼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프랭클린의 노래를 듣고 감동해 눈물을 흘렸다. 프랭클린이 피아노를 치며 ‘내추럴 우먼’을 부르기 시작하자 오바마 전 대통령은 눈가를 훔쳤다. 프랭클린은 1988년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불참한 전설적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대신해 남성인 파바로티의 음역대로 ‘네순 도르마’를 부르기도 했다.

미국 전역에서 프랭클린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SNS에 올린 글에서 “우상, 가수들의 가수, 내 인생에서 가장 위대한 가수이자 음악가였다. 내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자 멘토, 친구였다”라고 추억했다. 엘튼 존도 SNS에서 “프랭클린을 잃은 것은 악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아픔”이라고 추모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연예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