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투병 중인 토끼 돌보기

4번째 농양 제거 수술 후 랄라 턱 아래에는 절개 부위가 생겼다. 토끼의 농양 치료 방법 중 하나인데 매일 이 부위로 농양을 닦아내고, 소독을 해줘야 한다.

“3만 원 주고 산 토끼 병원비만 200만 원?”

토끼 랄라의 투병 소식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위로하며 걱정스럽게 한 말이다. 맞는 얘기다. 랄라는 2013년 대형 마트에서 3만 원에 데려왔다. 랄라가 지난 4월 아프기 시작한 후 병원비를 단순 계산하면 입양비보다 약 66배가 더 들었다.

랄라가 아프기 시작한 후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 책임을 수반하는 것인지 절실히 느끼게 됐다. 병원비보다 반려동물을 잃을 수 있다는 걱정, 혹시 ‘나 때문에 아픈 건 아닌지’ 하는 죄책감이 훨씬 크다.

랄라의 병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하악 치근단(뿌리) 농양’이라는 진단을 받았는데, 이갈이가 제대로 안돼 부정교합이 있을 때 주로 생긴다. 랄라의 오른쪽 턱에는 딱딱한 멍울이 생겼고, 뼈는 농양 때문에 녹아내렸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수술을 해도 90% 이상 재발하는 병이란 점이다.

‘수술만 4번째’ 토끼를 힘들게 하는 농양
12일 수술 직후 촬영한 랄라의 모습. 목에 ‘넥칼라’를 채웠는데, 상처 부위를 혀로 핥는 것을 막아준다.

지난 5월 4일 랄라는 첫 수술을 했다. 수술 전 수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토끼는 스트레스에 민감하고 마취 과정을 견디지 못해 수술 중 숨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거기다 랄라의 경우 상태가 심각한 편이었다. 턱뼈가 가늘어 수술 중 잘못 건드리는 경우에는 생명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첫 수술에서 랄라는 오른쪽 턱 아래를 절개해 농양을 긁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항생제 치료제를 넣어줬는데, 이 치료제를 넣으면 농양이 생기는 것을 막아 준다고 한다.

재발률이 높은 병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랄라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랄라가 처음 수술대에 오르던 날, 나는 병원에서 8시간을 기다리며 “제발 랄라가 수술대에서 죽지 않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다행히 랄라는 무사히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뒤로 매일 랄라에게 약을 먹이고 매주 주말 병원을 찾는 일상이 반복됐다. 5월 첫 수술 이후 랄라는 오른쪽 치아 위쪽에도 농양이 생겨 다시 수술을 받았다. 이번에는 치아를 뽑고, 비뚤어진 치아를 가지런하게 해주는 ‘트리밍’(Trimming)도 받았다. 두 번째 수술도 랄라는 잘 견뎌냈다. 다만 입속에 남아있던 치아 뿌리 일부가 얼굴을 자극해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다.

불행히도 랄라의 수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지난달에는 첫 번째, 두 번째 수술 부위가 아닌 턱 가운데에 작은 농양이 생겼다. 시간이 흐를수록 농양 크기는 커졌고, 또다시 랄라는 수술대에 올랐다. 절개 부위에 항생제 치료제를 넣는 방법으로 농양 제거 수술을 마쳤다.

영국 토끼복지협회 등에 따르면 토끼 농양을 제거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농양이 있는 부위의 피부를 절개한 후, 농양을 모두 긁어내는 과정까지는 같다. 그 뒤에는 항생제 치료제를 넣어서 봉합하거나, 절개 후 봉합하지 않고 매일 치료하는 방법으로 나뉜다.

랄라는 3번의 수술 후에도 또 농양이 생겼다. 결국 절개 후 봉합하지 않고 반려인이 농양을 직접 제거하는 방식을 선택해야 했다.

랄라 턱에 구멍이 생기다
수술 받은 랄라 얼굴이 퉁퉁 부어있다. 랄라는 수술 후 기운을 차리지 못해 한동안 음식을 거부했었다.

랄라는 지난 12일 또 수술을 받았다. 세 번째 수술했던 부위가 결국 재발한 것이다. 이번에는 더 큰 농양이 손에 잡혔다. 수의사는 “이번에는 치료 방법을 바꿔 반려인이 매일 해야 할 일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세 번째 수술과 이번 수술은 확연히 달랐다. 수술 후 랄라 턱에는 지름 5㎜ 정도의 큰 구멍 2개가 생겼다. 반려인의 역할이 커지는 순간이다. 매일 이 부위를 소독하고, 농양이 나오면 구멍 안에 면봉을 넣어 닦아 줘야 한다. 그리고 매주 병원을 방문해 치료받는 과정을 반복한다.

랄라의 턱 아래 상처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수술 후 절개 부위에는 거즈가 박혀있었다. 절개 부위가 붙지 않도록 넣어놓은 것인데, 직접 이 거즈를 빼내야 했다. 피가 거즈에 엉겨 붙어, 떼어낼 때마다 랄라는 커다란 눈동자를 이리저리 흔들며 발버둥 쳤다.

랄라의 수술 부위.

눈물을 흘리며 랄라를 향해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이날 치료를 마무리했다. 그 뒤 랄라는 좋아하던 간식도 마다하고 구석에 앉아 멍한 눈으로 어딘가를 바라봤다. 랄라가 수술 후 음식을 먹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죽음이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그래서 억지로 랄라를 붙들고 영양제를 주사기에 넣은 후 먹였다. 랄라는 꼬박 48시간이 지난 후 기운을 차리기 시작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랄라를 위해 나도 씩씩해지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씩씩한 랄라와 반려인의 하루
매일 랄라 목 부분을 소독해 준다. 위로 올려봐야 하는 부위라서 탁자 위에 랄라를 올리고 소독을 한다. 소독 용품은 하트만 수액, 면봉, 주사기, 재생연고, 거즈 등이다.

랄라와 나의 일상은 이렇다. 매일 아침 7시 랄라에게 사료를 준 후 약을 먹인다. 이후 내가 퇴근할 때까지 랄라는 이불 위에 올라가 운동도 하고 남동생과 시간을 보낸다. 내가 퇴근한 후 랄라는 다시 약을 먹고, 치료를 받는다.

수술 받은 턱 아래 부위를 치료하기 위해 랄라는 탁자 위에 올려진다. 치료에 필요한 물품은 수액, 주사기, 재생연고, 핀셋, 거즈, 면봉 등이다. 일단 절개 부위에 수액이 담긴 주사기를 넣고, 소독한다. 이때 농양이 있을 경우 같이 흘러나온다고 한다. 아직 랄라에게서는 농양이 나오지 않았다. 그 다음에는 면봉으로 절개 부위 안쪽을 닦아준다. 상태가 심각할 경우 면봉에 농양이 잔뜩 묻어 나온다고 한다. 이후에는 재생 연고를 절개 부위에 잘 발라준다.

토끼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치료 전 필요한 것은 미리 준비해 놓는다. 가능하다면 거즈를 절개 부위 안에 넣어주는 것도 좋은데, 절개 부위가 붙는 것을 막아준다. 절개 부위를 열어 농양을 제거하는 치료법이기 때문에, 이 곳이 붙어버리면 병원에서 다시 해당 부위를 찢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씩씩한 랄라는 요즘 이 치료를 잘 견디고 있다. 처음 치료할 때는 고통스러운지 이른바 ‘저금통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다리를 모두 몸 쪽으로 넣은 후 몸을 둥그렇게 하는 것인데, 토끼가 기분이 나쁘거나 아플 때 취하는 행동이다.

랄라는 이제 치료 후에도 방 안 이곳 저곳을 다니며 뛰어 논다. 가끔은 가족 옆에서 애교를 부리기도 한다.

랄라의 치료에 사용하는 물품들. 치료 후엔 항상 탁자가 난장판이 된다.

벌써 4번째 수술을 받은 랄라의 투병기는 언제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 아픈 토끼들은 많게는 10차례 넘게 수술을 받는다.

적잖은 치료 비용, 고통스러운 수술 등을 거치면서도 반려인들이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것은 반려동물의 눈빛 때문이다. 힘든 수술을 받은 랄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행복하게 뛰어 논다. 또 큰 눈을 반짝이며 반려인들을 쳐다본다. 삶의 의지가 눈빛에서부터 느껴진다.

랄라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에게 인사하듯 문 밖까지 따라 나온다. 그런 랄라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랄라의 삶을 내 마음대로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글ㆍ사진 이순지 기자 seria112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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