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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길 잃은 교육 개혁

입력
2018.08.1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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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틀과 다를 바 없는 개편 대입제도

대중 따라만 가서는 방향 못 잡기 쉬워

더 멀리 내다본 근본 개혁 정책 내놔야

서울역사박물관이 서울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해 꾸준히 내는 생활문화보고서가 있다. 30권이 가까워져오는 이 작업의 지난해 대상은 대치동이었고, 그 결과물로 최근 ‘대치동 사교육 1번지’라는 두툼한 책이 나왔다. 책에 따르면 대치동 학원 숫자는 2017년 현재 1,208개로 역시 학원 밀집지역인 목동(963개), 상계동ㆍ중계동(724개)을 훌쩍 넘는다.

보고서는 대치동이 말 그대로 사교육의 메카가 된 시기를 1990년대 중반으로 본다. 중산층 이상이 집단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가 생겨나고, 강북 인구밀집 분산 대책으로 종로 등의 명문고가 강남으로 옮겨온 토대 위에서 학원들이 우후죽순 생겨난 촉매제가 있었다. 바로 386 운동권들이 대학을 나와 일자리를 찾고, 전교조 결성 뒤 다수의 해직교사들이 생겨난 게 그 시기였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학원 경영으로 사교육 시장을 선도했던 운동권 출신 인사들 중에는 자신이 한 일을 속으로 후회한 사람들이 있었다. 한때 노동운동을 한 ‘사교육의 대부’는 공개적으로 “사교육 시장에 몸담은 인생을 후회한다”고 말했다. 연봉 18억원을 버리고 학원가를 떠난 스타 강사는 “한국 경제의 검은 구멍에서 내가 아가리를 벌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은 적도 있다.

사교육은 자식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필수 코스로 많은 학부모의 각광을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교육 불평등 나아가 계층 불평등을 조장하고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비난받았으니, 한국사회 개혁에 열의를 품었던 그들로서는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새삼스럽지만 현실 교육이란 이기적인 욕망의 도가니 속을 휘젓고 다니는 것이어서, 참으로 풀기 어려운 과제라는 답답함마저 든다.

최근 대입제도 개편 공론화 과정을 보면서도 비슷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애초 공론화에 부치기 어려운 주제이긴 했지만 무언가 결론이 나온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결론은 나오지 않았다. 교육부가 국가교육회의에 주문한 세 가지 논의 과제가 전문가 논의를 거쳐 네 가지 유형으로 압축된 사정을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납득했을지도 의문이니, 얼떨결에 그중 하나로 확정되는 것보다 결론 내지 못한 게 더 나은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공론화 시민참가단의 선호를 확인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것은 정시 확대와 수능 절대평가 찬성이라는 언뜻 상충하는 방향이다. 시민참가단의 선호대로 국가교육회의는 교육부에 대입제도 개편을 권고했고, 그 권고를 구체화해 교육부는 17일 대입 개편 방향을 발표했다. 공론화 작업과 별도로 진행된 학생부 개편을 논외로 하면 수능 전형 비율을 30%로 지금보다 늘리고, 기존 영어 한국사에 추가해 제2외국어와 한문을 절대 평가하는 정도의 변화다. 달라진 게 무어냐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다.

이번 대입 제도 개편 과정에서 교육부는 다양한 교육적 가치를 고려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학생 선발은 공정해야 하고, 대입 절차는 단순해져야 하며, 입시 경쟁은 완화하면서, 교육 혁신 목표 달성에도 기여한다는 고려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결과를 보면 이런 가치들을 얼마나 인상적으로 반영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왜일까. 대치동 학원 주역들이 사교육 확대에 이바지한 자신의 삶을 후회한 것처럼 교육에 대한 대중의 들끓는 욕망이라는 풀에 갇힌 채 문제를 풀어내려 했기 때문은 아닐까.

공론화와 국가교육회의 권고 이후 대입 제도 개편 작업에서 미래지향적, 전인적 교육에 대한 의지를 읽을 수 없다는 지적이 수두룩했다. 저출산으로 대학이 하나둘 문 닫는 시절에, 제4차 산업혁명으로 세계와 경쟁하기 위한 창의 교육이 절실해지는 시대에 더 멀리 보고 좀 더 근본적인 개혁을 해달라는 요구들이다. 앞으로 교육 개혁마저 이번 대입제도 개편처럼 우왕좌왕해서는 안 될 일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도, 김상곤 교육부장관의 지론도 이런 식으로 하자는 건 아니었지 않나.

김범수 논설위원 bs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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