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리더]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 버진 그룹 홈페이지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은 괴짜 경영자로 유명하다. 고국 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 60개 이상의 회사를 운영하며 6조원에 이르는 자산을 지닌 재벌이지만, 콜라 브랜드의 미국 진출을 위해 뉴욕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탱크를 끌고 가 코카콜라 간판에 가짜 포격을 하고 모바일 서비스 홍보를 위해 영화 ‘풀 몬티’를 패러디한 반라 퍼포먼스를 하는 등 파격 행보도 서슴지 않는다. 항공사를 운영하는 그는 다른 항공사 최고경영자(CEO)와의 내기 레이싱에서 진 뒤 스튜어디스 복장을 하고 항공기에 오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열기구를 타고 목숨을 건 대서양ㆍ태평양 횡단에 도전해 몇 차례 죽을 뻔한 위기를 극복하고 성공한 이력도 있다.

브랜슨 회장의 기행만 본다면 그를 ‘사업해서 번 돈으로 쾌락만 좇는 괴짜’ 또는 ‘관심을 끄는 데 안달이 난 기인’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좌우명을 실천에 옮긴 것일 뿐이다. 도전과 재미는 그가 일찌감치 사업에 뛰어들어 굴지의 재벌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키워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일단 용기를 내서 해본다. 철저히 준비한 뒤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가면 된다. 일과 재미는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업에 있어 최우선 목적은 이윤이지만, 단순히 돈만 벌기 위해 사업을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사업을 하면서 즐겁게 일하니 돈이 자연스레 굴러들어왔을 뿐이다.”

잡지ㆍ음반 사업으로 그룹 초석 마련

브랜슨은 1950년 영국 런던에서 법정변호사였던 아버지와 발레리나였던 어머니 사이 3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다. 칭찬, 격려, 존중이 넘치는 가정 환경은 훗날 브랜슨이 직원을 이끄는 리더십의 뿌리가 됐다. 특히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도전정신은 그를 대범한 기업가이자 모험가로 성장할 수 있게 했다. 비행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던 어머니 이브 브랜슨은 남자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말에 남장을 하고 비행 교육을 받아 하늘을 날았고, 스페인어를 못해 자격 미달이었는데도 비행기 승무원이 됐다.

브랜슨는 아홉살에 첫 사업을 시작했다. 묘목을 심어 8개월간 키운 뒤 크리스마스트리용으로 팔겠다는 계획이었는데 토끼가 묘목을 먹어 치우는 바람에 결국 나무를 팔진 못하고 대신 토끼를 잡아 팔아 적자를 겨우 메웠다고 한다. 진정한 첫 사업은 잡지 발행이었다. 심한 난독증으로 글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기자가 되고 싶었던 그는 열다섯살 때 베트남전과 교육 시스템 등 사회 문제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스튜던트’를 창간했다. 2년간 수백통의 전화를 돌리고 또 수백통의 편지를 쓴 결과 광고수입으로 2,500파운드(현재 약 7,000만원 가치)를 벌어들였다.

잡지 콘셉트를 학생 취향으로 바꾸고 장 폴 사르트르, 존 레넌, 믹 재거 등 유명 인사를 인터뷰하며 주목 받게 되자 브랜슨은 부모를 설득해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전업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러나 제대로 된 유통망을 확보하지 못한 탓에 판매부수는 적었고 광고수입도 많지 않아 인쇄비를 내기도 충분치 않았다. 자금난이 심해지자 아이디어를 낸 것이 우편주문 음반 판매였다. 이마저도 사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체국이 파업에 들어가 그만둬야 했다.

브랜슨은 직접 음반 가게를 열기로 했다. 인기 음반을 싸게 팔고 10대 학생들이 편하게 시간을 보내며 음악을 직접 들어보고 살 수 있게 하면 승산이 있다고 여겼다. 예상대로 손님이 밀려들기 시작했고 브랜슨은 전국 주요 도시에 지점을 하나 둘 늘려갔다. 이렇게 우편 판매를 시작으로 태어난 버진 레코드는 버진 그룹의 모태가 됐다. 그룹 이름은 ‘사업 초짜’라는 뜻으로 지은 것이다.

1977년 영국의 전설적인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앨범을 자신의 음반사 버진 레코드에서 발매한 뒤 자축하고 있는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홈페이지
음악 사업 이어 항공ㆍ철도까지 도전

브랜슨은 음반 가게를 키우는 한편, 새로운 도전을 이어갔다. 거액을 들여 레코딩 스튜디오를 만들었고, 무명 음악가였던 마이크 올드필드와 계약해 데뷔작 ‘튜불라 벨스’를 제작했다. 유통망을 갖춘 대형 음반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마케팅과 유통을 해내는 모험을 통해 올드필드의 음반을 세계적으로 히트시켰다. 버진 레코드는 이후 섹스 피스톨스, 컬처 클럽, 휴먼 리그 등의 성공과 함께 영국 주요 음반사로 성장했다.

음반 사업이 본 궤도에 오르자 브랜슨은 항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승무원이었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지만 사업을 위해 자주 비행기를 타면서 느꼈던 실망이 보다 직접적인 동기였다. 마침 작은 항공사를 막 시작하려던 변호사 출신 미국인 랜돌프 필즈로부터 투자 제안도 받았다. 하지만 버진 레코드 임원들은 이를 결사 반대했다. 창업한 지 12년 밖에 안 된 음반사가 대규모 자본이 필요한 항공 사업에 뛰어든다니 분명 무모한 결정이었다.

버진 애틀랜틱이 1년 이상 버틸 거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브랜슨은 성공을 자신했고 결국 자신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줬다. 신생 항공사가 기존 항공사들의 집요한 견제 속에서도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순했다. 고객이 원하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는 “혁신이란 최초나 최대가 아니라 최선”이라고 말한다.

항공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희생도 따랐다. 1992년 은행의 대출 상환 요구에 버진 레코드 매각을 결정한 것이다. 버진 레코드에 대한 애착이 컸던 그는 매각 계약서에 서명하고 나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항공 사업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991년 브랜슨은 일본 신칸센에서 큰 자극을 받아 열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유럽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던 영국 철도 서비스를 최고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다. 정식으로 사업을 시작한 건 6년 후인 1997년이지만 브랜슨은 다시 한번 세간의 예상을 깨고 성공을 거뒀다. 버진 그룹은 이후 이동통신, 출판, 금융, 애니메이션, 호텔, 유통, 건강관리, 헬스클럽, 음료, 술, 여행, 콘돔, 웨딩, 스포츠, 우주여행 등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사업을 계속 늘려가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물론 모든 사업이 성공한 건 아니었다. 대표적인 실패 사례가 버진 콜라다. 코카콜라에 맞서 새로운 붐을 일으키겠다는 브랜슨의 원대한 꿈은 결국 코카콜라의 아성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실패로 끝이 났다.

버진 애틀랜틱 항공기 앞에서 승무원들과 포즈를 취한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 버진 그룹 홈페이지
“쓰러질 때까지 도전한다”

브랜슨은 사회 공헌과 환경ㆍ인권 운동에도 열정적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지구상 모든 사람과 자원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며 “세계의 기업가들과 부의 창조자들이 선을 행하는 긍정적인 힘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기 오염에 적잖은 책임이 있는 항공사 운영자의 모순적 태도라 할 수도 있지만 그는 “항공사를 모두 없앨 수도 없는 노릇이고 누군가 항공사를 경영해야 한다면 조금이라도 환경 문제에 책임감 있는 사람이 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그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저탄소 비행 연료를 찾기 위한 연구ㆍ개발(R&D)을 계속하고 있다.

브랜슨은 버진 그룹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모든 회사를 개인회사로 운영하고 있다. 주주나 이사회에 휘둘리지 않고 브랜슨 자신과 각 기업 CEO, 임원들 뜻대로 회사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다. 이는 우주여행과 초고속 열차 사업 같은 도전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하늘을 나는 기구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우주여행을 비즈니스로 연결시켜 보려는 생각에 2004년 버진 갤럭틱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2009년에는 세계 최초의 민간 우주여객선 스페이스십2를 공개하면서 1인당 3억원이 드는 우주여행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순조로운 사업은 아니었다. 2011년 첫 비행을 예고했지만 수 차례 연기되다 올 5월에야 시험비행에 처음 성공했다.

우주선 시험비행 성공과 함께 브랜슨은 다시 속도를 내고 있다. 앞서 지난 4월에는 최대 시속 1,300㎞에 이르는 초고속 열차 하이퍼루프(진공 상태인 튜브 안에서 초고속으로 움직이는 캡슐 열차) 상용화가 2~3년 내에 가능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그는 “비즈니스에는 후진 기어가 없다”고 말한다. 시작한 이상 어떻게든 해보겠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겪은 모든 과정을 통해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목표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비전과 신념이 있는 사람에게는 가능한 것이 될 수 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끊임없이 도전할 것이다.”

'말은 더 적게, 웃음은 더 많이.' 리처드 브랜슨 버진 그룹 회장의 좌우명 중 하나다. 버진 그룹 홈페이지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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