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 취임 한 달 맞아
“현 정부, 기업 지배구조서 먹방까지 규제
탈국가주의 필요… 자율적 새 성장모델을
한국당 개조, 철학 기반ㆍ담론 정립이 우선”
취임 한 달을 맞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김정곤 논설위원을 만나 한국당 혁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혁신 속도가 느리다는 지적에 “근본부터 바꾸는 공사라 시간이 걸린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오대근기자

자유한국당 구원투수로 나선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이 등판 한 달을 맞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방선거 이후 궤멸 상태에 빠진 정당을 구하기 위한 쇄신 작업이 우선이지만 민생 현장에서 서민들의 생활을 만나고 지역구를 돌며 낙선자를 다독이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당 지지율은 영 오를 기미가 없다. 조바심이 날 만한데도 김 위원장은 “재건축 수준의 공사에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고 유유자적이다.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비판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끄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렇다 할 정책방향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대권욕심에 눈이 어두워 한국당 혁신은 뒷전’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17일 취임 한 달을 맞는 김 위원장을 국회 당 대표실에서 만나 한국당 혁신의 방향을 들어봤다.

_최근 문재인 정부를 국가주의로 비판하면서 탈국가주의를 화두로 제시했다. 왜 지금 탈국가주의라는 이슈가 문제가 되나.

“우리 국민 하나하나 성공에 대한 집념과 의지가 강하다. 그런데 국민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 국가가 도리어 각종 규제를 부여하고 발목을 잡고 있다. 그래서 정책이나 제도를 자율의 시대에 맞게끔,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탈국가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_대체로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을 국가주의로 비판하는 듯하다. 그렇다고 정부가 복지나 분배를 외면할 수는 없지 않나.

“시장이나 시장을 구성하는 주체가, 그게 기업이든 소비자든 생산자든 상관없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정부가 덜 개입하거나 개입을 안했으면 좋겠다는 게 핵심이다. 시장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데도 정부가 완장을 차고 옆에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경향이 많다. 크게는 기업 지배 구조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작게는 먹방까지 규제를 하겠다고 한다. 물론 시장자율에 모두 맡길 수는 없다. 복지문제나 약자보호, 공정한 질서 확립, 평화와 안보를 지키는 국방의 문제는 당연히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결론적으로 개인과 시장에 대한 국가의 보충적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아무 데나 완장차고 나서지 말라는 얘기다. 완장 차고 경제를 성장시킨 적이 옛날에는 있을지 몰라도, 시민 사회와 시장이 이만큼 컸으면 시장과 시민사회가 성장의 주체가 돼야 한다.”

_문재인 정부에서 특히 시장 자율을 침해하는 분야가 어떤 게 있나.

“먹방 규제라든가 학교에서 커피자판기를 퇴출시키는 아주 사소한 것까지 문제 삼는다. 적폐라는 이름 아래 곳곳에 개혁조치를 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적폐만 들어냈지 자율적 운영 매커니즘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사회의 성장과 분배의 매커니즘을 고민해보자는 것이다.”

_시장에 대한 개입이라면 진보 진영보다 과거 보수 정권에서 더욱 심했던 것 같다. 국가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향유한 보수 진영이 먼저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국가주의 전통이 물론 오래됐다. 박정희 시대 국가주도 문화를 거쳐서 규제완화라든가 자유화가 많이 됐지만 그 뿌리는 여전하다. IMF 이후에도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지 못한 데 대해서는 모든 정부가 반성해야 한다. 이제는 자율 정신에 입각한 새로운 성장모델을 만들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이 취임한 지 한 달이 다 돼가지만 한국당 안팎으로 가시적 변화를 감지할 수가 없다. 너무 속도가 느린 것 아니냐는 질문에 김 위원장은 “사람 자르고 새 피 수혈하는 게 상징적으로 눈에 띄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게 철학적 기반이나 담론을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깃발부터 분명히 하겠다는 의미다. 국가주의를 화두로 던져 논쟁을 확산시키는 과정에서 정당의 철학적 기반이 단단해졌고 새로운 정책을 수립할 토대도 마련했다는 게 김 위원장의 판단이다.

_한국당 혁신의 가시적 성과가 더디다 보니 방향성을 의심하는 시선이 많다. 특히 인적 쇄신은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인적 쇄신의 방향과 플랜은 무엇인가.

“현역 교체율이 우리만큼 높은 나라가 없다. 그만큼 사람을 바꿔도 정치가 후진적인 이유를 질문할 때가 됐다. 사람 바꿀 때 뚜렷한 가치나 기준이 없다 보니 정당의 정체성이 점점 약해진 거다. 그런 점에서 인적 청산에 앞서 가치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또 인적 쇄신은 총선 때 하는 것이다. 공천권이 없는 위원장으로서는 새로운 공천제도와 인재풀을 만드는 것 외에는 도리가 없다. 팍팍 잘라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알지만 조금은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십사 당부 드린다.”

_아무래도 변화는 사람에서 오는 것이다. 영국 보수당의 경우 위기 때마다 과감한 세대교체로 승부수를 던졌다. 당 안팎에서 세대교체에 적합한 인물을 찾고 있나.

“당내에도 영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 동안 계파논쟁으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 분들도 있고, 누구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새로운 리더십을 갖춘 분들이 분명히 있다. 다만 당의 모순 때문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고 앞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었지만 분명히 있을 수 있다. 당 밖에서도 당이 잘 정비되면 얼마든지 새로운 인물이 들어올 수 있다.”

_한국당의 이념적 좌표설정은 문제가 없나.

“국회의원 다수가 탈국가주의나 시장경제에 강한 신념을 갖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복지나 시장의 실패에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분들도 상당히 많다. 가치재정립 소위에서 제대로 방향을 잡아가리라고 본다.”

_반공주의에 입각한 외교 안보관을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가 대화나 협상, 타협으로만 달성되지는 않는다. 역량을 갖춘 상태에서 때로는 압박과 제재로 대화와 협상에 나서야 하는 게 맞다. 한 때 대화와 협상은 뒤로 한 채 제재에 역점을 뒀던 대목은 반성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은 진보와 보수 진영을 넘나든 이력으로 인해 양쪽에서 공격을 받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인사들 입에서 ‘배신자’라는 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그는 “진영논리와 싸우다 죽겠다”고 도리어 반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모습은 낯설었다. 문 대통령에게 축하전화가 왔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_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이나 52시간 근로제 등 경제정책에서 힘겨운 씨름을 하고 있다. 정책방향의 문제인가 운용의 잘못인가.

“처음부터 정책방향 자체가 무리한 부분이 많다. 현실을 제대로 못보고 간과하면서 이상에 치우친 측면이 크다. 경제나 사회에 대한 자기 판단, 즉 스스로 판단하고 정책을 만드는 부분에서 상당히 부족했다. 남의 나라에서 한다고 쉽게 도입한 것인데 그 지점에서 무리가 생긴 것이다. 자영업자들이 이렇게 많은 국가가 세상 어디에 있나. 이런 분들한테 임금을 지불하라? 모자라면 정부가 메꿔 주겠다?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_자유한국당에 몸을 담은 뒤에도 ‘노무현 정신’을 말하고 있다. 정치인 노무현은 김 위원장에게 어떤 의미인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분이다. 정치지도자라면 다 그렇겠지만 정말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분이지만 결국은 실패했다. 스스로도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_더불어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문재인 대통령을 ‘문실장’으로 호칭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참여정부에서 같이 일한 문 대통령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있나.

“늘 말하지만 문 대통령은 부드럽고 좋은 사람이다. 문 대통령과는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많이 접할 기회가 없었다. 사법개혁을 비롯해 민정수석실 소관 정책이나 한미FTA와 관련한 투자자국가소송 등 법률 문제 외에는 별로 소통한 적이 없다. 다만 인권문제나 남북관계 또는 노동분야 등에서 상당히 진보적인 견해를 가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_김 위원장이 정치를 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 정치권은 지금까지 진보와 보수, 친문과 비문, 친박과 비박을 두고 논쟁만 거듭했다. 글로벌 분업체제에서 어떻게 산업구조를 바꾸고 4차 산업혁명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등의 현실적인 당면과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정치권의 의제와 담론구조를 바꿔보자고 정당 안으로 들어왔다. 국가주의 의제를 던진 것도 같은 이유다.”

인터뷰=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정리=김정현기자 virtu@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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