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상봉 20~26일 금강산서
71세 딸 만나는 황우석씨
“영영 못 볼 줄 알았는데…”
20~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에서 북측 딸과 68년만의 만남을 앞두고 있는 황우석(87)씨가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한국일보

“지금까지 살아줘서 고맙다고 말 해야지”

3살배기 딸을 북녘에 두고 왔던 청년이 89세 노인이 되어 71살이 된 딸과의 재회를 기다리고 있다. 오는 20~26일 금강산에서 열리는 제21차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앞두고 68년만에야 혈육과 재회하게 된 이들의 사연이 15일 전해졌다.

1남3녀 중 장남이었던 황우석(89)씨는 1950년 1ㆍ4 후퇴 이후 인민군에게 끌려가기 싫어 고향인 황해도 연백을 떠났다. “딱 3개월만 피해있자”는 생각으로 당시 세 살이었던 딸 영숙(71)씨를 두고 왔던 게 오늘에 이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영영 못 볼 줄 알았던 딸이 일흔 한 살 노인이 되어 자신의 딸까지 데리고 나온다고 한다.

꿈에 그리던 딸과의 재회를 앞뒀지만 황씨는 미안한 마음을 어떻게 전할지 벌써부터 막막하다. 그는 “집안에 남자라곤 아버님 한 분이었는데, 일찍 돌아가셨다. (딸이 혼자) 고생했을 것이고, 외로웠을 거야. 그래서 참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나마 걔(딸)까지 죽었으면 이번에 상봉도 안되고 내 혈육을 찾을 길이 없잖아. 어려움 겪으면서 이렇게 지금껏 살아줘서 진짜 고마워”라고 말했다.

강화도가 고향인 박기동(82)씨도 자신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선분(73)씨, 혁동(68)씨 등 두 동생과의 상봉을 앞두고 있다. 서울 배제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던 박씨는 전쟁이 나자 고향으로 돌아갈 틈도 없이 가족과 이별해야 했다. 강화도의 부모님이 두 동생을 데리고 마구간에 묻어둔 찐 쌀을 가지러 나갔다가 그 길에 인민군들에게 잡혀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정도다.

당시 여섯 살, 두 살이던 동생들이 자신을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박씨는 어렴풋이나마 동생들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남동생은 왼쪽 이마에 반점 비슷하게 튀어나와 있었어요. 여동생은 서양사람 비슷하게 생겨서 소련 여자라고 놀렸던 기억도 나고”라고 회상했다.

북녘의 큰 형님과의 상봉을 앞둔 이수남(77)씨는 형님과 만날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거짓말 같아서 처음엔 이웃들에게 상봉 소식도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보다 10살 많았던 큰 형 종성(87)씨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8월 인민군에게 끌려갔다. 이씨는 “우리는 형님 하나를 잃었지만, 형님은 모든 가족을 잃어버리고 사셨던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우리는 이게 마지막 상봉이 될 수도 있겠지만, 정부는 계속 (이산가족상봉을) 추진해야겠죠. 한민족이니까”라고 말했다.

한편 20일부터 금강산에서 열리는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 최종 점검을 위한 정부 선발대가 15일 금강산으로 떠났다. 이종철 적십자사 실행위원을 단장으로 한 18명의 선발대는 행사가 끝나는 26일까지 금강산에 체류하며 행사 관련 시설을 점검하고 북측과 행사 세부 사항을 조율할 예정이다.

공동취재단ㆍ조영빈 기자 peoplepeopl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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