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록키호러쇼'로 이색 역할 도전

뮤지컬 ‘록키호러쇼’ 마이클 리
코믹하면서 무서운 내면 가진
프랑큰 박사 역할 완벽 소화
“1년 동안 기다려 온 무대
다른 모습 보여줄 수 있어 감사”
뮤지컬 배우 마이클 리는 어떤 역할을 맡든 맞춤 옷을 입은 듯 소화한다. 캐릭터의 감정을 녹여내기 위해 끝없이 고민한 결과다. 홍인기 기자

“공연을 하면 프랑큰 퍼터 박사의 말대로 닫힌 마음을 열고, 열린 마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돼요.”

방송에서 그를 먼저 본 사람이라면 빨간색 손톱이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한 오디션프로그램에서는 중저음의 차분한 목소리로 참가자들을 평가했고, 따뜻한 한마디를 덧붙이곤 했다. 그런데 뮤지컬 ‘록키호러쇼’ 무대에서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인간을 직접 창조해 내고,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코믹함 속에 무서운 내면을 가진” 역할을 연기한다. 게다가 양성애자인 외계인 과학자다. 의외라는 생각도 잠시다. 노출 심한 의상에 진한 화장, 하이힐까지 신고 무대에 오르는 배우 마이클 리(45)는 마치 자신의 맞춤 옷을 입은 듯 프랑큰 퍼터 박사를 소화해냈다.

최근 만난 마이클 리는 무대 위의 모습이 정말 신나 보였다는 말에 1년 동안 이 무대를 기다려 왔다고 했다.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에 연상되는 역할만 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록키호러쇼’를 통해 다른 색깔을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전 너무 감사해요.”

뮤지컬 '록키호러쇼'에서 양성애자 외계인을 연기하는 마이클 리의 손톱에 빨간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다. 홍인기 기자

‘록키호러쇼’는 유쾌하다. 줄거리 자체도 그렇지만, 공연 형식도 파격이다. 공연 전부터 앙상블 배우들이 극장 로비에서 관객을 맞이하는 등 끊임없이 관객의 참여를 요구한다. 마이클 리는 ‘록키호러쇼’의 첫 공연 무대에 오르기 불과 3일 전까지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거리의 음유시인인 그랭구아르 역으로 무대에 섰다. 재미교포인 그는 “여전히 (‘록키호러쇼’ 속) ‘생화학적 경외’나, ‘새로운 돌파구를 목격할 것입니다’같이 일상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는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하지만 언어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애쓴 흔적은 무대 위에서 드러났다. 그는 “한국어가 모국어인 배우처럼 머리 속에 있는 대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게 목표이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보다 더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고 했다.

마이클 리는 1995년 미국에서 배우 활동을 시작했다. 데뷔 작품이기도 한 ‘미스 사이공’으로 2006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2013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지저스 역을 맡으며 ‘마저스’(마이클 리와 지저스의 합성어) 열풍을 일으켰고, 본격적으로 한국 활동을 하게 됐다. ‘벽을 뚫는 남자’ ‘노트르담 드 파리’ ‘서편제’ ‘나폴레옹’ 등 쉴 새 없이 무대에 올랐다. 지난해 한국 프로덕션으로는 처음으로 영어 버전 ‘헤드윅’을 공연했고, 이 작품으로 대만에까지 진출했다. 마이클 리는 이달 17~26일에도 대만 타이베이에서 공연을 한다.

‘헤드윅’ 역시 여장남자로 무대에 서지만 ‘록키호러쇼’와는 완전히 다르다. “프랑큰 박사는 여자 옷을 입고 놀이를 즐기지만, 머리 속에서는 스스로를 남자로 인식한다고 봤어요. 그에 반해 헤드윅은 완전한 여자죠. 그래서 헤드윅은 마음가짐부터 완전히 새롭게 하고 무대에 서요.” 마이클 리는 곡의 감성을 살려 설득력 있는 캐릭터를 선보인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미국에서는 동양인 배우라서 헤드윅 무대에 설 수 없었어요. 소수자로서의 경험 때문인지 헤드윅에 더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의 캐릭터 표현에 가장 큰 가르침을 주는 이는 아내 킴 바홀라씨다. 1996년 미국에서 뮤지컬 ‘렌트’에 출연하며 만난 뮤지컬 배우다. 막이 내려가자마자 그날의 무대 평가를 위해 아내가 기다린다.

마이클 리는 스탠포드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며 진로를 바꿨다. 그는 중학생 때 ‘마이 페어 레이디’의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뮤지컬을 처음 접했다. 그는 “뮤지컬이 연기, 춤, 노래가 어우러진 엄청난 예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대학생 때까지 동아리에서 노래하는 정도로 뮤지컬 배우의 꿈을 대신했던 그는 로스앤젤레스에서 배우들의 삶을 직접 본 뒤 용기를 냈다. “돈이나 지명도가 아니라 그저 이 일이 좋아서 노래와 연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자극을 받았다.

마이클 리는 하고 싶은 역할이 아직 많다.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모든 작품 속 배역과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미스 사이공'에서 아직 맡아보지 않은 엔지니어 역할까지 맡고 싶다. 홍인기 기자

지금도 브로드웨이에서는 그에게 오디션을 보라는 제안이 끊이지 않는다. 2015년에는 브로드웨이 창작뮤지컬 ‘앨리전스’에 출연했다. 여러 작품을 소화했지만 아직도 숨결을 불어넣고 싶은 역할이 많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미스 사이공’의 엔지니어, 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작품에 있는 역할은 다 해보고 싶어요. 내 모습, 내 목소리로 캐릭터를 태어나게 할 수 있는 창작뮤지컬도 정말 좋고요.”

마이클 리는 브로드웨이와 한국 무대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멀티캐스팅 시스템을 꼽는다. 브로드웨이에서는 주인공을 여러 배우가 맡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한국에서는 2~3명이 한 역할을 맡는 더블ㆍ트리플캐스팅이 흔하다. 마이클 리는 “어떤 경우든 장단점은 있지만 원캐스트일 경우 매일 무대에 서면서 배우 스스로 큰 공부가 되나 멀티캐스트는 연습시간이 줄어든다”고 했다. 깊이 있는 캐릭터 몰입이 쉽지 않다는 뜻이다. 주연배우 모두와 합을 맞춰야 하는 앙상블 배우들의 경우는 더 그렇다. 마이클 리는 “한국 뮤지컬 산업의 성장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며 “작품의 흥행만을 생각하기보다 뮤지컬 산업의 지속적 발전이 가능한 방법을 찾는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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