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뒤편으로 이석구 기무사령관이 일어나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배우한 기자

3년 전 잠수함을 탔을 때다. 한참 설명을 듣는데 사복 차림 남성이 슬그머니 다가와 시치미를 떼고 섰다. 묘한 기운이 감돌았다. 영 어색해서 물었더니 본부에서 나온 기무사 상사라고 떨떠름하게 답했다. 눈초리가 싸늘해지자 멋쩍은지 우리 일행을 향해 으스댔다. 지난주에 울릉도에 다녀와서 아는데 뱃멀미가 엄청 심해 여기 온 걸 후회할 거라면서. 그렇게 30분쯤 지났다. 울렁거리는 속을 부여잡고 다들 진땀을 흘리는데 저쪽에서 침상에 주저앉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짜증 섞인 말투가 들렸다. “얼른 멀미약 가져와.” 이후 아무도 그와 말을 섞지 않았다.

과거 기무사 요원들은 일선부대를 휘젓는 ‘촉수’와 같았다. 자잘한 먹잇감도 정보로 가공돼 권력의 원천이 됐다. 지휘계통의 천적관계에 아랑곳없이 먹이사슬의 정점에서 생태계를 교란하는 황소개구리와 다를 바 없었다. 한때 셀프 개혁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워낙 헤아릴 수 없는 원죄를 저지른 탓에 오장육부를 도려내다 못해 부관참시를 당해도 감내해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그런 기무사가 간판을 새로 달았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기묘한 명칭이다. 군사와 안보의 결합이 생경한데다 기무사가 지원업무를 한다는 발상이 놀랍다.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억지춘향으로 짜맞춘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정부 고위관료는 “기무사의 이름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다 알면서 뭘 물어보느냐”고 타박했다.

안보는 최상위 가치다. 통상 전략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민과 군의 영역을 모두 다루기 때문에 ‘국가안보’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청와대에도 국가안보실이 있다. 반면 군령을 총괄하는 합동참모본부에는 ‘군사’ 지원본부를 뒀다. ‘안보’ 지원본부가 아니다. 이처럼 안보와 군사는 구분된다. 하필 기무사를 군사안보라는 회색지대에 끼워 넣어 청와대와 합참 사이에서 모종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굳이 안보 앞에 ‘군사’라는 꼬리표가 달린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래야 기무사의 업무범위를 가급적 좁힐 수 있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민간인 사찰을 넘어 계엄령까지 쥐락펴락하며 국가의 근본을 흔들려 했던 기무사의 만용이 드러난 만큼, 어떻게든 손발을 옥죄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군사보안’이라고 속 시원하게 밝히는 편이 낫다. 차라리 ‘보안’도 나쁠 게 없다. 반면 안보와 보안은 의미와 어감이 천양지차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를 통째로 바꾸라는 ‘해편’(解編)을 지시한 마당에 안보라는 큰 모자를 씌우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동향 감시’라는 독소조항이 여전히 살아있어 우려가 가시지 않는 상황이다. 논란의 불씨를 남겨둘 이유가 없다.

돌이켜보면 기무사는 방첩대, 보안사로 불렸다. 아무리 뜯어고쳐도 방첩과 보안이라는 핵심 임무는 변함없다. 현 정부도 인정하지만 앞선 정부를 적폐로 내몰다 보니 당시 용어도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제 보안, 방첩은 금기어”라며 “군사안보라는 설익은 표현은 일종의 고육책”이라고 해석했다.

‘지원’ 사령부라는 표현도 개운치 않다. 정부 관계자는 “기무사가 다시는 전면에 나서지 못하도록 지원이라는 단어를 추가했다”고 말했다. 뒷방 늙은이로 밀어낸 셈이다.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끝내 관철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명패로 내건 군사안보라는 개념조차 모호한데 대체 무엇을 지원한다는 건지 가늠하기 어렵다. 군수지원의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오산이다.

예로부터 귀하게 얻은 자식은 이름을 천하게 지었다. 그래서 지탄이 쏟아지는 기무사에 일부러 고상한 명찰을 달았는지 모를 일이다. 다만 가게 간판을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면 장사가 될는지 의문이다. 마침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기무사 관련 태스크포스(TF)를 동시에 가동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쯤에서 작명소 밖으로 발을 뺀다면 국회라도 출생신고를 제대로 할 필요가 있다.

김광수 정치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