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대작 볼 만 한가요 '목격자'

이성민, 무력ㆍ격정 오가는 몸짓
가족 지키려는 가장 역할에 입체감
곽시양 살인마 연기도 무난한 편
카메라 시선 비틀고 거리감 조절
익숙한 아파트를 서늘하게 변주
'내 일 같아서' 현실 공포 그려
살인마의 위협보다 더 무서운 건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집단 이기주의 아닐까. 영화 ‘목격자’는 방관자 효과를 떠올리게 하는 설정으로 묵직한 메시지를 던진다. NEW 제공

한국 영화 여름 ‘빅4’의 마지막 주자 ‘목격자’(15일 개봉)가 ‘인랑’과 ‘신과 함께-인과 연’ ‘공작’에 이어 드디어 흥행 대전에 나선다. 앞 세 작품과 달리 막대한 제작비와 현란한 볼거리, 스타 멀티캐스팅 같은 휘황한 위용은 갖추지 못했지만, 탄탄한 시나리오를 앞세워 ‘여름 극장가 유일한 스릴러’로 관객을 유혹하려 한다.

일찌감치 입소문이 난 ‘목격자’의 이야기는 이렇다. 회식 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해 늦은 밤 귀가한 상훈(이성민)은 섬뜩한 비명소리를 듣고 베란다에 나갔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을 목격한다. 상훈이 신고 전화를 하려는 순간 살인마 태호(곽시양)가 불이 켜져 있던 상훈의 집 층수를 손가락으로 세고, 두 사람의 눈길이 마주친다. 황급히 불을 끄고 숨어 버린 상훈은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일념에 경찰(김상호)의 증언 요청과 또 다른 목격자의 절박한 호소를 외면하고 만다. 상훈이 양심에 괴로워하자 살인마는 상훈의 아내와 딸을 위협해 오고, 상훈과 살인마의 치열한 심리 대결은 벼랑으로 치닫는다.

과연 ‘목격자’는 ‘신과 함께-인과 연’과 ‘공작’이 양분한 여름 극장가에서 흥행 반란을 일으킬 수 있을까. 지난 3주 동안 매주 여름 대작 한 편씩을 짚어봤던 한국일보 영화담당 기자들이 항목별로 나눠 ‘목격자’를 꼼꼼히 들여다봤다.

늦은 밤 살인을 목격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범한 가장 상훈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외면하고 괴로워한다. NEW 제공
스토리

양승준 기자(양)=내 일 같아서 소름이 돋는, 보기 드문 공포 영화다. ‘목격자’는 기존 작품과 공포를 굴러가게 하는 연료가 확연히 다르다. 살인 사건을 목격하고 전전긍긍하는 주인공 상훈(이성민)을 범인보다 앞세워 공포에 불을 지핀다. 상훈은 행여 딸과 아내가 다칠까 살인 사건을 모르쇠로 일관한다. 불의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비애와 두려움을 설득력 있게 잘 풀었다. 살인의 현장은 아파트 단지 한복판. 집값 떨어질까 쉬쉬하는 주민의 무관심은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래서 영화는 섬뜩하다. 당신이라면? 현실의 비겁함을 잘 포착한 영화는 관객의 심란한 마음을 헤집어 놓는다. 후반부에 ‘과욕’만 자제했더라면. ‘테이큰’ 시리즈를 연상케 하며 ‘산’으로 간 장르 이탈에 공든 탑이 무너진다. (★★★)

김표향 기자(김)=언제든 내 집 앞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서 더욱 오싹해지는 현실 공포.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에 나였다면?’이라는 질문을 되뇌게 된다.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던 ‘당위’가 나와 내 가족의 안위 앞에서 맥없이 허물어지는 순간 윤리적 딜레마가 덮쳐 온다. 아파트 집값에만 전전긍긍하는 집단 이기심, 익명성에 숨은 개인주의, 책임과 양심을 외면한 방관자 효과 등 현대 사회의 그늘을 정확히 찌르면서 영화는 긴장의 밀도를 높여 간다. 서로가 서로에게 목격자가 돼 주는 것만으로도 예방 효과가 있다는 교훈적 진단도 극 전개상에 무리 없이 담았다. 하지만 마무리가 아쉽다. 스릴러에는 반드시 액션이 나와야 한다는 강박이 지나쳤다. 잘 달려오던 이야기가 마지막 4분의 1에서 돌연 행로를 이탈해 급기야 ‘진흙탕’에 처박히고 만다. (★★★)

아파트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라서 더욱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NEW 제공
◆ ‘목격자’ 20자평과 종합 별점

★다섯 개 만점 기준, ☆는 반 개.

비주얼

양=갑자기 켜졌다 꺼지는 거실의 불빛. 태호는 아파트에서 살인을 저지른 뒤 불빛이 꺼진 집의 층수를 손가락으로 세며 호수를 되뇐다. 태호가 망치로 누군가를 내려치는 핏빛 살인 현장보다 아찔하다. 감독은 목격의 공포를 카메라로 잘 요리한다. 상훈은 야구방망이를 손에 쥔 채 문에 기대 잠이 든다.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가상적 장면과 결합해 두려움을 극대화한다. 큰 볼거리는 없다. 다만, 소소한 장치로 몰입도를 높이는 조규장 감독의 연출은 주목할 만하다. 퇴근길 상훈의 손에 든 과자(맛동산)는 가정적인 면모를 부각해 그의 침묵에 힘을 실어 준다. 극 후반 진흙으로 범벅이 된 얼굴 뒤에 흰 눈동자를 클로즈업해 극과 극 대비를 준 화면은 인상적. (★★☆)

김= 아파트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특별한 눈요기거리는 없다. 그러나 카메라의 시선을 살짝 비틀거나 거리감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안락하고 편안한 삶의 공간을 서늘하게 변주한다. 익숙한 그곳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올 때 아파트는 단순 배경이 아닌 살아 있는 실체로 재구성된다. 대단지 고층 아파트가 도미노처럼 겹겹이, 혹은 직각으로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냉혹하기 그지없어 마치 괴물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층층이 집집마다 불 꺼진 창은 양심의 암막 같다. 메시지를 단순 명료한 이미지로 감각화한 점은 돋보인다. (★★☆)

김상호의 빼어난 연기가 극 전개에 촉매제이자 윤활유 역할을 한다. NEW 제공
연기

양=‘사람 냄새’ 나는 이성민이 부박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맨 얼굴을 잘 보여준다. “살려주세요” “우리 보호해줄 수 있어?”라는, 이성민의 절규에도 ‘세상’은 침묵한다. 이성민은 무력과 격정을 오가는 몸짓으로 극의 비극과 캐릭터의 입체감을 살린다. 이성민이 분투로 극을 이끌지만, 한계는 분명하다. 범인의 캐릭터가 너무 평면적이다. 그가 왜 ‘혐오 살인’에 빠졌는지를 알 수 없다. 곽시양이 무난하게 태호 역을 연기했지만, 캐릭터가 입체적이지 못하다 보니 힘이 빠져 보일 수밖에. (★★☆)

김=그야말로 이성민의 원맨쇼. 일상을 옥죄는 두려움과 가족을 지키려는 절박함을 생생하게 그렸다. 주인공의 이기적 선택에 실망감이 들 때도 이성민이 열연을 펼쳐서 기어이 설득력을 부여한다. 대사 한 마디 없이 살인마를 연기한 곽시양의 노고도 눈 여겨 볼 만. 목격자 자리에서 서서 마침내 내뱉는 한 마디 대사는 특히 소름. 형사의 날카로운 촉과 강한 의지를 특유의 생활감으로 빚어 낸 김상호도 빠질 수 없다. 목격자와 살인마의 팽팽한 심리 대결에 촉매제이면서 윤활유였다. 마지막 4분의 1은 불필요한 액션 대신에 김상호의 활약에 맡겼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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