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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준 칼럼] 정부수립 70주년의 국가대전략

입력
2018.08.14 11:47
수정
2018.08.1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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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지도자 각 시기마다 국가전략 제시

다양한 난제 직면한 지금, 미래비전 필요

대통령 광복절 기념사에서 듣게 되기를

하버드대학을 포함한 미국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 미국 정치를 공부할 때, 예외없이 읽어야 하는 책이 있다.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포함하여 토머스 제퍼슨, 알렉산더 해밀턴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작성했거나 연설한 문건을 모은 책이 그것이다. 이러한 문서들을 읽으며 미국 엘리트 학생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어떠한 정신하에서 건국되었는가를 반추하면서 미래 미국의 정치와 외교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일본의 엘리트들이 공부하는 동경대에서도 비슷한 책이 출간된 바 있다. 기타오카 신이치 교수가 편집한 일본외교논집에는 요시다 시게루와 오카자키 히사히코 등 전후 시대의 대표적인 정치가들과 외교관, 그리고 아마야 나오히로 등 대표적인 경세가들이 논한 일본 정치외교의 방향에 대한 글들이 담겨 있다. 동경대 학생들은 이러한 책을 읽으며 미래 일본이 지향해야 할 국가건설의 방향에 대해 숙고하게 된다.

한국의 대학에는 이러한 책이 아직은 없다. 다만 필자는 역대 대통령들의 안보전략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 한국의 정치외교사에서 평가되어야 할 주요 연설이나 문건이 무엇일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연설 가운데에는 1948년 9월, 국회에서 행한 연설이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 연설에서 그는 정부 수립 직후의 한국이 “민족적 민주주의” 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즉 왕조국가와 달리 주권이 국민에게 존재하는 국가, 그리고 분단된 남북 간에는 동족상잔의 참화를 피하면서 통일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구상이 제시된 것이다. 비교적 보존이 잘된 박정희 대통령의 연설문집 가운데에는 1966년 1월에 행한 연두교서가 그의 국가전략을 잘 요약하고 있다. 이 교서에서 그는 “조국근대화”를 국가비전으로 제시하면서, 3차례의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이 완성되는 70년대 후반까지 조국근대화를 이룩하고, 그 연후에 남북통일을 추진한다는 일종의 국가전략을 제시하였다.

노태우 대통령의 경우에는 1988년 10월의 유엔총회 연설이나 다음해 7월에 행한 라디오 주례방송 등이 중요하다. 이 연설들에서 그는 북방정책의 기조와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통일기반 조성의 정책방향 등을 잘 설명하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많은 연설 가운데에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밝힌 1998년 10월의 일본 국회연설과 햇볕정책의 기조를 밝힌 2000년 3월 베를린 자유대학에서의 연설이 중요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능동적 국가안보전략의 필요성을 역설한 각군 사관학교 졸업식 연설과 동북아 균형자론을 제창한 2005년 3ㆍ1절 기념사 등이 그 시대를 표상하는 연설이지 않았나 싶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신생 정부 가운데서 우리나라는 한국전쟁의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간 경제발전의 눈부신 성과를 거두었고, 민주주의도 발전시키면서 국제사회에 당당한 국가를 건설하게 되었다. 그 이면에는 정치지도자들이 각 시기마다 이러한 연설들을 통해 국가전략의 비전을 제시하였고, 국민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국가건설 노력에 동참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정부수립 70주년을 맞는 지금의 우리는 경험해 보지 못한 다양한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 개최 이후에 조성된 새로운 정세 속에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미중 간의 전략적 경쟁이 전개되는 국제질서 속에서 국제협력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가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지속적으로 확보해 가야 한다.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창의성에 기반한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하고, 청년들에게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러한 난제들에 대한 국가전략적 고민을 대통령의 광복절 기념사에서 듣고 싶다. 학생과 청년 세대에게 미래에의 비전을 던져주고, 북한 주민을 포함한 동아시아 시민들에게도 한국의 국가적 품격을 전하는 국가대전략이 대통령의 연설에서 표명되기를 기대한다.

박영준 국방대 안보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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