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자테마터널∙석탄박물관에선 무더위를 한방에…
문경 마성면 박열의사기념관에 전시된 박열과 가네코후미코 사진. 문경=최흥수기자

극적인 삶은 영화에나 존재하는 줄 알았다. 부끄럽게도 문경에 도착할 때까지 독립운동가 박열(1902~1974)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마성면 오천리 산기슭에 위치한 박열의사기념관 건물도 처음엔 영화를 근거로 부풀린 게 아닐까 생각했다.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면 영화 속 이야기는 그의 삶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기념관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이는 박열이 아니라, 그의 연인 가네코후미코(金子文子, 1903~1926)다. 옥중에서 박열과 결혼했기 때문에 부인이라 불러야 마땅하지만 둘의 극적인 인연을 생각하면 연인이 더 어울린다. 주차장 바로 옆 언덕에 후미코의 묘소가 있다. 무덤 앞에는 불꽃처럼 살다간 그녀의 넋을 위로하듯 진분홍 배롱나무 꽃이 하늘거린다. 영화는 옥중에서 둘이 결혼기념사진을 찍는 것으로 끝나지만, 그 이후의 이야기도 드라마틱하다.

가네코후미코 묘소 앞에 배롱나무 꽃이 붉게 피어 있다.
가네코후미코의 묘와 안내판.
아이러니하게도 박열의 묘는 북한에 있다. 기념관에는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

박열과 후미코는 1923년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 다이쇼 천황과 히로히토 황태자 암살 모의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는다. 후미코는 1926년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은사장(恩赦狀)을 찢어버리고, 끝까지 천황을 저주하며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박열과 평생을 함께하고자 한 그의 뜻에 따라 박열의 형 정식씨는 직접 일본으로 건너가 제수씨의 유골을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온다. 후미코의 유해는 그렇게 문경읍 팔영리 박씨 집안 선산에 묻혔다가 2003년 기념관이 들어선 현재의 자리로 이장했다.

한편 기념관에는 박열의 묘 대신 추모비만 세워져 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출소한 그는 1949년 귀국해 한국독립당 특임촉탁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전쟁의 혼란 속에서 납북된 후 북에서의 구체적인 활동은 알 수 없으나, 1974년 사망한 그의 유해는 북한의 애국열사묘지에 안장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진 월북이 아니었으나 사회주의 계열의 여러 독립운동가와 마찬가지로 그의 공적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야 그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고, 기념관이 세워진 건 한참이 지난 2012년이었다.

박열의사기념관 전경. 너무 크게 지은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은 기념관을 둘러본 후 말끔히 사라진다.
박열의사기념관 내부.
박열과 가네코후미코가 한복을 입고 재판정에 나온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영화 ‘박열’ 포스터에 가네코후미코 역을 맡았던 배우 최희서와 이준익 감독이 서명해 놓았다.

“나의 사상과 행동은 언제나 올바르고 보다 정의로운 것을 지표로 한다.” 기념관 입구에는 ‘신조선 혁명론’에서 쓴 글이 그의 행동 강령처럼 적혀 있다. 재판정에서 당당하게 천황을 조롱하고, 준엄하게 일본 제국주의를 꾸짖은 기개가 읽힌다. 수십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전히 심장을 뛰게 하는 문구다. 기념관은 박열과 후미코의 인연, 둘의 재판을 도운 일본인 변호사, 박열이 출소할 때 1만5,000명이 운집한 사건, 일본인 교도소장이 아들을 박열에게 양자로 보내고자 했던 사연 등 영화가 다루지 못한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보여준다. 당시의 신문기사를 비롯해 둘에 대한 기록이 예상외로 많다. 아나키스트이자 독립운동가, 영원한 동지이자 열렬한 ‘사랑꾼’, 박열과 후미코의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 하나하나가 흥미롭고도 숙연하다. 어쩌면 박열∙가네코후미코 기념관이라 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광복절의 의미를 되새기는 여행지로 손색이 없고,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가볼 만한 곳이다.

폭염 식힐 오미자터널과 문경새재 맨발축제

기념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독한 폭염을 날려버릴 명소가 있다. 3번 국도 진남휴게소에 차를 대고 주차장 뒤편으로 돌아가면 ‘문경오미자테마터널’이다. 석탄을 실어 나르던 폐선로 터널을 지역특산물인 오미자를 홍보하는 시설로 개조했다.

문경오미자테마터널 입구. 이 정도 위치에서도 찬바람이 술술 불어온다.
터널 내부의 오래된 온도계가 약 17도를 가리키고 있다. 이날 문경의 기온은 38도였다.
LED 조명과 우산으로 장식한 터널 내부.
500m 터널을 다양한 주제로 장식해 심심하지 않다.

터널 내부는 사시사철 14~17도를 유지해 한여름에도 서늘하다. 입장료 2,500원을 내고 입구에 들어서면 찬바람이 술술 분다. 500m 터널 내부에는 와인 바와 카페가 있고, LED 조명과 캐릭터 등으로 장식해 재미를 더했다.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는 외부와 온도 차가 커서 터널 안에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그래도 습하지 않고 공기는 보송보송하다. 그 분위기를 제대로 느끼려면 오전 9시30분 개장시간에 맞춰서 가야 한다. 환풍시설을 가동해 일부러 안개를 빼내기 때문이다. 건강 때문이라니 어쩔 수 없다. 직원들은 이 날씨에도 하루 종일 두꺼운 점퍼를 입고 근무한다.

가은의 문경석탄박물관에서도 잠시나마 더위를 식힐 수 있다. 석탄박물관은 1994년에 문을 닫은 ‘은성탄광’이 있던 자리다. 1938년 개발을 시작해 문을 닫기까지 국내 2위의 석탄생산지였다. 탄광촌의 빛나던 시절을 보여주는 전시장을 지나면 갱도체험관으로 이어진다. 걷는 게 아니라 거미열차를 타고 고생대부터 미래까지 16분간 에너지 탐방을 떠난다. 체험관 뒤편 폐 갱도에서도 서늘한 바람을 맞을 수 있다.

가은읍 문경석탄박물관 전시장 내부.
‘거미열차’를 타고 16분간 에너지 탐방을 할 수 있다.
고구려시대 사극을 주로 촬영하는 가은오픈세트장.

석탄박물관 뒤편 언덕에는 가은오픈세트장이 있다. 탄광 폐석을 쌓은 흙더미 위에 고구려시대 궁과 민가, 장터 등을 재현했다. 15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모노레일을 이용해도 좋지만, 무더위가 물러가면 천천히 산책해도 괜찮은 거리다.

한국의 대표 걷기길인 문경새재에서는 18일 '오감만足 문경새재 맨발 페스티벌’이 열린다. 7km 문경새재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며 동료, 가족, 연인들이 건강과 우애를 다지는 축제다. 걷기와 함께 야외공연장에서는 맨발단체줄넘기, 달리기, 닭싸움, 노래자랑 등 다양한 이벤트와 공연이 열린다. 참가비 1만원(어린이 2,000원)을 내면 7만8,000원 상당의 티셔츠를 기념품으로 지급한다. 자세한 사항은 ‘문경맨발페스티벌 참가신청하기(http://naver.me/GcMu6QLO)’ 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문경=글∙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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