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집 ‘읽거나 말거나’ 출간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1970년 번역된 춘향전도 언급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한국일보 자료사진

그의 시는 한국 작가들이 어떤 결정적 순간에 찾아 읽었다고 고백하곤 하는 시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 말이다. 그의 서평집 ‘읽거나 말거나’(봄날의책)가 나왔다. 1967년부터 무려 35년간 폴란드 신문에 연재한 글을 모았다. “비필독서 칼럼”이라 스스로 정의한 대로, 그의 서평은 독특하다. 문학∙출판 주류가 입 모아 추천할 만한 책은 일부러 피했다. ‘나는 안다’를 내려놓고 쓴 글은 수필에 가깝다. 소박하고 유쾌하다.

쉼보르스카가 읽은 책 목록 중에 ‘열녀 중의 열녀 춘향 이야기’가 있다. 폴란드 1세대 한국학 학자 할리나 오가렉 최가 1970년 폴란드어로 번역한 책이다. 북한 김일성대에서 유학하고 국립 바르샤바 대학에 폴란드 최초의 한국학과를 만든 이로, 최씨 성은 북한 사람인 남편의 것이다. 당시 폴란드에서 한국은 미지의 나라였다. 남한과는 수교도 하기 전이었다. 쉼보르스카가 춘향전을 집어든 건 왜일까.

‘읽거나…’를 번역한 최성은 한국외국어대 폴란드어학과 교수의 설명. “쉼보르스카는 여행을 즐기지 않았다. 유럽 몇 나라를 다닌 정도고, 아시아는 한 번도 방문하지 않았다. 대신 책으로 세상을 보고 들었다. 노장 사상 같은 아시아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시에 자연 친화, 생명 존중 같은 아시아 정서가 녹아 있는 건 그 때문이다. 춘향전도 그런 호기심에서 읽었을 거다.”

쉼보르스카가 1972년 읽은 '열녀 중의 열녀 춘향'. 봄날의책 제공

서평에서 쉼보르스카는 춘향전의 낯선 줄거리를 소개한다. 덧붙인 소감에서 춘향의 ‘발’에 주목한다. 변사또의 첩이 되는 걸 거부하다 “쇠가 박힌 대나무 몽둥이에 맞아 부서진 작고 여린” 그 발. “과연 춘향의 발꿈치뼈는 아무런 흉터도 남기지 않고 잘 붙었을까. 안심해도 좋다. 완벽하게 잘 아물었을 것이다. 틀림없이 춘향은 잘생긴 배우자 옆에서 절뚝거리며 걷지도 않았을 테고, 첫날밤에 원앙이 수 놓인 이불을 덮어 자신의 뒤틀린 두 발을 애써 가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동화는 결코 현실의 삶에 완전히 항복하는 법이 없으니까.” 쉼보르스카가 읽은 건 이야기 너머의 이야기다. 그는 춘향의 발을 걱정한 최초이자 마지막 독자가 아닐까.

쉼보르스카는 1972년 나온 영문 번역본 ‘삼국지’ 읽기를 시도했다 포기한다. 등장인물 이름과 지명 표기며 전투 장면 묘사 방식의 난해함을 지적하고 “완독이 불가능한 책”이라고 선언한다. “이 책을 끝까지 꼼꼼하게 읽은 사람은 편집자들밖에 없을 듯하다. 1만부나 되는 초판을 찍어 놓고 고작 두세 명이라니…” 노벨상 시상식에서 “진정한 시인이라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고 말한 시인답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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