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헌 금감원장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의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

라나 포루하 지음ㆍ이유영 옮김

부키 발행ㆍ532쪽ㆍ1만8,000원

▦추천사

‘월스트리트(Wall Street)는 어떻게 메인스트리트(Main Street)를 파괴했는가’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금융이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maker)하기보다는 지나치게 자체의 수익만 추구(taker)하면서 미국경제를 망가뜨렸다고 비판합니다. 새로운 성장 동력과 일자리 창출이 절실한 지금, 금융이 어떤 역할을 해야할 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거저먹는 자들(takers)이 어떻게 해서 만드는 자들(makers)을 압도하게 됐는지를 생생하게 살펴보자.”

뉴스위크, 타임을 거쳐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일하고 있는 저자는 베테랑 저널리스트답게 간명한 문장으로 책 내용을 요약한다. ‘거저먹는 자들’로 명명된 주체는 금융권, 정확히 말해 월스트리트(월가)로 통칭되는 미국 유력 금융기관들이고, ‘만드는 자들’은 제조기업들이다. 자고로 금융기관의 본업이란 원활한 자금 흐름을 통해 기업의 생산과 혁신을 돕고, 이를 통해 국민경제의 기반인 기업과 가계(저자는 이를 ‘메인스트리트’로 명명한다)의 번성을 돕는 동반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 경제는 금융이 메인가의 동반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주인공이자 목적인 체제로 변했다. 저자가 금융화(financialization)라고 정의한, 이러한 가치전도 상황이 미국 경제를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일관된 주제다. 저자는 “실물 산업이 아니라 카지노가 경제를 완전히 장악해 버렸다”는 원색적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금융화의 폐해가 세계를 도탄에 빠뜨렸던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도 월가의 반성 없는 약탈적 행태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현실을, 책은 선명한 사례들을 동원해 폭로한다. 캘리포니아주 남부 지역은 금융위기 여파로 주택시장을 비롯한 지역경제가 파탄이 난 가운데 유독 월세만 상승했는데, 저자는 현장 취재를 통해 블랙스톤과 같은 대형 사모펀드들이 헐값에 집을 사들여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위기의 주범이라 할 만한 투자은행들은 원자재 투기에 여념이 없다. 코카콜라를 위시한 미국 기업들은 2010년부터 수년간 지속된 골드만삭스의 알루미늄 사재기로 고통을 받았는데도 대놓고 항의하지 못했다. 회사채 발행, 인수합병 등 골드만삭스의 도움이 필요한 주요 경영활동이 차질을 빚을까 우려했기 때문이다. 고객 기업을 ‘벗겨 먹는’ 지경에 이른 월가의 행태가 미국 경제를 망치고 있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더 심각한 문제는 월가의 사고 방식이 기업으로 전염되고 있는 것이다. 책 앞머리에 배치된 사례에서, 스티븐 잡스에 이어 애플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오른 팀 쿡은 2013년 취임 직후 170억달러 차입을 결정한다. 당시 애플이 은행에 쌓아둔 현금이 1,450억달러이고 매달 30억달러의 수익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쿡이 굳이 거액을 빌린 이유는 칼 아이칸과 같은 자칭 ‘행동주의 투자자’의 주가 부양 요구에 따라 자사주를 사들이고 배당금을 올려줄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쿡은 나아가 여유 자금을 다른 기업의 회사채 매입에 쓰고 있다. 공장 신설, 제품 개발 등 제조기업 본연의 역할을 잊고 은행을 흉내 내며 손쉬운 돈벌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금융위기 직격탄을 맞기 전 인수합병, 소비자대출 등 금융사업을 방만하게 벌이면서 대량 인력 구조조정을 일삼았던 제너럴일렉트릭(GE)의 옛 CEO 잭 웰치 역시 쿡과 같은 부류다. 저자는 “잡스가 지금의 상황을 봤으면 뭐라고 했을까”라고 꼬집으며 금융화의 악순환을 벗어나 새로운 성장 모델을 모색할 것을 제안한다. 이훈성 기자 hs0213@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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