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오늘 건국여성동맹이 창립했다. 사진은 41년 6월 중국 충칭에서 출범한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식 사진. 국가보훈처

조선 해방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건국부녀동맹’이 출범했다. 일제 치하 독립운동을 하던 좌우익 여성 활동가들이 뭉쳐, 독자적으로 여성 해방을 추구하고 건국에 기여하자는 취지였다. 유영준이 위원장, 박순천이 부위원장을 맡았고, 황신덕 등 16명이 집행위원이 됐다.

건국부녀동맹의 핵심 강령은 조선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해방이었고, 행동강령은 평등선거ㆍ피선거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남녀 임금차별 철폐, 공ㆍ사창제 등 인신매매 철폐, 임산부 사회적 보호시설 설치, 여성 문맹과 미신 타파, 창조성 제고 등이었다.

그들의 발 빠른 조직화는 앞서 여운형 등이 주도한 건국동맹의 도움이 컸다. 일제 패망을 확신한 여운형은 44년 8월 비밀결사 ‘건국동맹’을 결성했다. 전시 일제의 살벌한 감시망을 뚫고 건국동맹은 전국조직과 농민, 청년학생, 부녀자, 노동자 조직 등 하부 조직을 구축해나갔고, 유사시 후방 교란을 위해 군사위원회를 두고 노농군 편성계획과 무기 조달 계획을 추진하기도 했다. 당시 무기조달 연락담당이 손기정이었다.

건국부녀동맹은 건국동맹의 영향을 받았지만, 하부조직이 아닌 독자적인 정치ㆍ사회 결사였고, 여성의 문제가 조국의 문제라는 점을 집중 부각했다. “우리 조선의 전국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됨에 의하여서만 그의 일부분인 우리 여성문제가 비로소 해결될 것이며, 동시에 우리 여성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전국적 문제가 또한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건국부녀동맹이 출범하던 날 건국동맹은 건국준비위원회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건국부녀동맹은 좌우 분열과 대립 분위기에 휩쓸려 열흘 만인 8월 25일 우익계열의 임영신 등이 조선여자국민당으로 분열했다. 여자국민당은 해방정국의 애국부인회 등과 더불어 이승만 계열의 정치기반으로 변질됐다. 건국부녀동맹은 45년 12월 전국부녀단체대표자회의를 거쳐 조선부녀총동맹으로 확대 개편, 대중운동으로 저변을 확산해갔다.

46년 미군정의 부녀자인신매매 금지령과 47년의 ‘공창폐지법’이 조선부녀총동맹의 주요 활동 성과였다.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이임하 ‘해방공간, 일상을 바꾼 여성들의 역사’ 참조)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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