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굴기 중국, 위협받는 주력산업] <1> 반도체 '초격차' 지켜낼 수 있을까


#1
용산상가 20배 中 선전 화창베이
짝퉁 천국서 혁신 메카로 변신
대부분 자국 제품들이 점령
#2
中정부 ‘중국제조 2025’ 발판
앞서가던 한국 기업 턱밑 추격
“시스템반도체 이미 앞서” 평가
세계 최대 전자상가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선전 화창베이 거리. 화웨이 비보 오포 등 중국 스마트폰 매장이 거리 입구를 차지하고 있다. 맹하경 기자

세계 최대 전자상가 중 하나로 꼽히는 중국 선전(深圳) 화창베이(華强北). 배터리, 칩 등 각종 부품부터 스마트폰 로봇과 같은 완제품이 용산전자상가 20배에 달하는 규모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귓전을 울리는 박스테이프 뜯는 소리에 멍해질 때쯤 화창베이 상가 관계자는 “이 소리가 다 배송할 상품 포장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1㎡ 남짓한 크기의 가판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서로 다른 가게라는 걸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작은 부품상가들을 가리키며 “이 작은 한 칸 한 칸이 다 독자적 중소기업”이라며 “각자 부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가지고 있고 현장판매와 온라인 주문이 쉴새 없이 밀려든다”고 덧붙였다.

화창베이는 몇 년 전만해도 삼성과 애플이 신제품을 공개하는 당일 똑같이 생긴 가짜 스마트폰이 등장할 정도로 ‘짝퉁의 천국’이라고 불렸던 곳이다. 하지만 이제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특허를 배출하는 혁신 공간이자 정보통신기술(ICT) 트렌드를 미리 엿보는 메카가 됐다. 우리 정부가 쇠퇴한 용산전자상가의 미래상으로 여겨 배우러 올 정도다. 짝퉁폰이 진열되던 가장 목 좋은 자리를 지금은 화웨이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매장들이 점령했다.

화창베이 건물 내부에서 각종 칩을 판매하고 있는 가판대 모습. 맹하경 기자

손님 상대하랴, 박스 포장하랴 정신 없는 상가 사이에 대낮부터 불이 꺼져 있는 매장이 눈에 띄었는데, 출시된 지 3년이 넘은 ‘갤럭시 탭S2’ 포스터만 덜렁 붙어 있었다. 상가 관계자들은 “원래 삼성전자의 최신 제품을 체험하는 곳이었는데 언제부턴가 충전 선들만 남아있더라”며 “애플 매장도 많이 줄었고 이젠 중국 제품이나 부품이 점령해 외국제품 매장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고 했다. 초입에 자리한 화웨이 매장의 주력 스마트폰 ‘P20’에는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칩세트 ‘기린 970’이 탑재돼 있었고, 화면을 채운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은 중국 BOE가 만든 것이었다.

선전은 ‘세계의 공장’이라 불릴 정도로 제조 인프라가 탄탄한 환경과 첨단 부품 자체 생산을 추진하는 중국 정부의 적극적 산업 육성 정책이 만나 어느새 세계 전자산업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 정부의 대표적 첨단제조업 육성책이다. 2025년까지 핵심 부품과 소재 국산화 비중을 70%까지 올리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중국 정부는 민간 기업이 미래 산업에 투자할 경우 지방정부와 국유기업이 최대 80%까지 출자할 수 있도록 하고 정부가 초기 매출을 보장해 주는 등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쏟아붓고 있다.

불 꺼진 화창베이 삼성전자 제품 체험 매장의 모습. 맹하경 기자

이를 통한 중국의 선진기업 추격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삼성전자는 여전히 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 기업이지만 트리플 카메라 장착, 인공지능(AI) 반도체 탑재 등에서 ‘세계 최초’ 타이틀은 화웨이가 가져갔다. 이제는 세계 최초 폴더블 스마트폰을 두고 삼성과 화웨이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장악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 기술격차는 3, 4년까지 좁혀졌다. 중국 대표 기업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스(YMTC)는 현재 32단 낸드플래시(영구저장 메모리반도체) 양산을 준비 중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양산 기술은 각각 96단, 72단인데, 지금 YMTC 속도로는 2019년 64단, 2020년 96단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이미 중국이 한국을 앞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시스템 반도체를 설계하는 ‘팹리스’ 중국 업체가 1,300여 곳으로 한국의 10배 수준이다. 전 세계 점유율도 중국(4.1%)이 한국(3%)보다 높다.

시스템 반도체가 들어가게 되는 대표적 미래 산업인 사물인터넷(IoT)에서도 중국은 한국보다 한발 앞선 미래를 현실화하고 있다. 7월 31일~8월 2일 선전시와 중국사물인터넷산업응용연맹 등이 공동 주최한 ‘제10회 선전 국제 IoT 박람회’에서는 생활 곳곳에서 구현되는 ‘무인(無人) 시대’를 확인할 수 있었다.

2일 중국 선전에서 열린 ‘제10회 선전 국제 사물인터넷(IoT) 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참가 기업들의 전시 부스를 둘러보고 있다. 맹하경 기자

지능형 선반 등을 제조하는 엔디아는 책의 위치와 수량 체크, 빌려 간 사람 등에 대한 통계 분석을 자동으로 수행하는 무인 도서관을 선보였고, 무인 편의점 솔루션 개발사 인벤고 부스에서는 입장과 계산까지 얼굴 인식으로 가능한 매장을 구현해 관람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인벤고 관계자는 “무인 편의점 5곳이 이미 중국 길거리에서 운영되고 있다”고 밝혔다. 로봇 팔이 과일의 상태를 식별한 뒤 껍질을 깎고 과즙을 짜내 주스를 만드는 자판기를 출품한 기비 관계자는 “인공지능(AI) 주스 자판기는 이미 중국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이번에 내놓은 제품은 과일 상태 관리를 스스로 하고 간편결제도 가능하도록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자의 제품과 솔루션에 탑재한 시스템 반도체에 관해 전시회 참가 기업들은 하나같이 “자체 개발한 것”이라고 답했다.

‘제10회 선전 국제 IoT 박람회’에 기비가 전시한 인공지능 생과일 주스 자판기. 맹하경 기자

정준규 코트라 선전 무역관장은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가는 중국의 전략을 잘 보여주는 현장”이라고 말했다. 전 관장은 “한국이 ‘초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의 경우 중국은 현재 수준이 낮은 저가 반도체들을 생산하고 있지만, 제품 안정성을 확보한 뒤부터는 고부가 상품까지 빠르게 치고 올라갈 것”이라며 “중국의 빠른 추격을 뿌리치려면 몇 년 정도 앞서는 게 아니라 ‘몇 세대’를 앞서가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 기업들이 중국이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 중국에 공급해야 하는데, 자칫 추격당하면 중국이 기술 주도국이 되고 우리는 중국에 필요한 걸 개발해 주는 하청업체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선전=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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