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계속되는 폭염으로 10일 전남 나주시 나주호의 물이 빠져 바닥이 갈라지고 조개가 말라 죽어 있다. 나주=홍인기 기자

겨울 첫 눈의 설렘, 잊은 지 오래다. 언제부턴가 함박눈이 쏟아지면 본능적으로 짜증이 난다. 막히는 도로 때문에 출퇴근길은 엉망이 되고, 신문 기사 마감시간도 당겨지기 일쑤다. 차를 몰고 출퇴근하는 아내의 빙판길 운전은 큰 걱정거리다. 물론 20대엔 이러지 않았다. 하얀 눈이 내리면 이유 없이 들떴다. 눈길을 걷는 건 낭만이었고 행복이었다.

태어나서 보름 이상 해외에 머문 적 없으니 내 몸은 1971년 이후 한반도의 최저 기온을 직접 경험했을 것이고, 피부로 느낀 당시 추위의 강도는 기상 관측 기록과 일치할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혹독했던 추위는 1993년 12월 논산훈련소에서 맞은 군대에서의 첫날밤으로 기억한다.

날씨에 대한 반응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가 “날씨만큼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없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창 밖의 빗소리에 누군가는 위로를 받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우울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태양을 향한 사람들의 태도도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알랭 코르뱅 등 프랑스의 인문학자들이 쓴 책 ‘날씨의 맛’은 햇빛에 대한 인간의 감수성이 최근 200년간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한다. 18세기 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햇빛이 몸에 해롭다고 여겨 태양을 두려워했다고 한다. 신체에는 우주적 질서가 있어 햇빛 노출을 경계해야 한다는 중세 물리학과 의학의 영향 때문이었다. 햇빛에 많이 노출된 사람일수록 다혈질이고 잔인하며, 거칠다는 게 당시 통념이기도 했다.

태양에 대한 공포는 햇빛이 생명의 섭리를 조절한다는 광합성 메커니즘의 발견으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20세기 사람들은 햇빛과 접촉하는 일광욕을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발견했고, 태양이 지배하는 ‘맑은 날씨’에 대한 집착도 커졌다. 비가 내리면 보험금을 주는 ‘우천 보험’이 1961년 프랑스에 등장할 정도였으니, 태양이 없는 날은 ‘악천후의 재해’로 여겨졌다.

태양에 대한 이미지가 공포와 혐오에서 찬양과 희열로 바뀐 탓인지, 폭염이 치명적인 재난이란 사실을 사람들은 종종 잊는다. 미국 기상청에 따르면 매년 폭염으로 인한 미국 내 사망자는 허리케인, 토네이도, 홍수, 지진 등 다른 자연 재해로 인한 사망자보다 많다.

일주일간 7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던 1995년 시카고 폭염을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에릭 클라이넨버그 미국 뉴욕대 교수는 그의 책 ‘폭염 사회’에서 폭염이 대중적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내지 않거나 다른 기상 재난처럼 엄청난 볼거리를 제공하지 않아서”라고 설명한다. 폭염이 ‘소리 없는 살인자’라 불리는 이유다.

클라이넨버그 교수는 더 큰 이유로 “희생자들이 노인, 빈곤층 등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자연 재난과 마찬가지로 실제 폭염 사망률이 높은 지역은 대부분 유색인종,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밀집해 사는 지역이었다. 날씨에 대한 느낌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날씨로 인한 피해도 ‘공평’하지 않은 것이다.

다만 주목할 것은 가난한 독거노인 등 취약 계층이 몰려 사는 지역 중에서도 서로 어울리며 교류하는 공동체가 형성된 곳은 사망자 수가 적었다는 점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잘 알기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올해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폭염을 고려할 때 여름철 태양은 다시 공포의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폭염은 앞으로 계속 가난하고 고립된 사람을 괴롭힐 것이다.

장기적으론 지구온난화를 막아야 할 테고, 당장 전기요금 누진제를 손볼 필요도 있겠다. 다만 공동체 바깥으로 밀려난 빈곤층이 어디서 어떻게 생활하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우선이어야겠다. 그래야 위급 상황 때 쏟아 붓는 지원이 헛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고립되고 단절된 그들이 원하는 건 사회의 관심과 안부 인사가 아닐까. “오늘 당신의 날씨는 어떤가요. 어제는 잘 버티셨나요.”

한준규 디지털콘텐츠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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