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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호랑이 등에 탄 남북미

입력
2018.08.12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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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정세가 소강상태를 맞고 있다. 비핵화 협상은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지,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말지 분기점에 놓여있다. 그러나 갈등 속에서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국면이 지속되고 있음은 그나마 다행이다. 남북미 3자는 협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탔고 이젠 쉽게 내리기 어렵다.

북한은 북미정상회담 이후 미국의 비핵화 요구에 강력 반발하면서도 협상 자체를 깨지는 않고 있다. 미국이 비핵화 조치만을 요구할 뿐 정작 종전선언에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인다며 비난하고,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직후에는 미국이 ‘강도적 요구’를 일삼고 있다고 수위를 높였다. 하지만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협상에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다. 강경매파는 비난하면서도 정작 트럼프 대통령은 추켜세우고 있다. 빈손귀환한 폼페이오의 손에 깍듯한 예의를 갖춰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내는 친서를 전달했다.

협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아직 내릴 생각은 아니다. 먼저 협상을 포기하면 김정은도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 제재는 더 강해지고 애써 만든 국제적 입지마저 사라지면서 또 다시 긴장과 전쟁의 위기를 감수해야 한다.

미국도 북미정상회담 이후 비핵화의 선제적 조치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비핵화 이전엔 종전선언이 불가능하다며 북한이 먼저 비핵화 시간표를 제시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도 협상이라는 판을 깰 생각은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회 있을 때마다 김정은을 칭찬하고 있다. 김정은에 감사를 표시하고 미국과 북한은 긴밀히 소통하고 있고 비핵화는 결국 이행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로서는 비핵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이익을 챙길 수 있다. 오바마가 손도 대지 못했던 북핵협상이 이뤄지는 모양새를 갖춰야 국내정치적 지지확대를 꾀할 수 있다. 실상 비핵화가 진전되지 않아도 북핵협상이라는 판을 먼저 깰 필요는 없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비핵화 난항과 함께 남북관계에 장애물이 등장하고 있다. 비핵화는 주춤거리고 종전선언은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북이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비핵화가 더디고 남북관계가 갈등해도 문재인 정부 역시 비핵평화 협상이라는 호랑이 등에서 내릴 수는 없다. 남북관계를 주도해서 한반도 운전자론이 작동해야만 북미협상을 견인하고 비핵화도 진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소강 국면에서 조기 남북정상회담을 만지작거리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평화국면은 지방선거 압승에 분명 기여했고 호랑이 등에서 내리는 순간 남북관계도 비핵화도 한반도 평화도 물거품이 되고 만다.

어렵사리 비핵평화 협상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남북미는 섣불리 내릴 수 없다. 각자의 목표와 셈법은 다르지만 지금 달리는 호랑이 등에서 내리기는 쉽지 않다. 먼저 판을 깨지 않는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이왕 올라탄 호랑이가 잘 달리도록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챙겨야 한다는 점이다. 우선 남북미를 태운 호랑이가 일정한 속도를 내야 한다. 어렵게 올라탔지만 달리지 않는다면 내릴 수밖에 없다. 과속을 해서도 안되지만 느리더라도 협상은 나아가야 한다. 또한 호랑이가 달리려면 남북미가 목표지점에 합의해야 한다. 목적지를 제각각으로 주장하면 호랑이는 제대로 달릴 수 없다. 북한은 평화체제, 미국은 비핵화, 한국은 남북관계라는 각자의 목적지만 일방적으로 요구해선 안 된다. 균형있게 병행할 수 있는 공통의 목표에 합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목적지에 안정적으로 도달하기 위한 효율적 로드맵과 시간표를 도출해야 한다. 정교하고 치밀하고 빈틈없는 동시 행동 조치가 짜져야 한다. 목표만 정한다고 목적지까지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속도를 내고 목표를 정하고 목적지까지의 로드맵을 합의해내야만 호랑이 등에서 내리지 않고 달릴 수 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말이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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