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문학평론가서 생태사상가로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 창간
생태학과 생명사상 담론 등 주도
사회이슈 비판적 성찰로 대안 모색

한국적인 생태사상 추구
자연과 인간, 생명과 사회 관계
협동 공동체ㆍ상부상조 사회 통해
공존 모색하는 생태학적 계몽 주력

생태학은 현재ㆍ미래 동시 사상
자연 파괴부터 기후 변화까지…
오늘날 ‘지구의 어둠’ 똑바로 인식
정신적 교감 공동체로 해결 노력
김종철, 이름 석자는 곧 '녹색평론'과 동일하다. 김종철은 생태주의자인 동시에, 머리만이 아닌 몸으로도 그 주의를 증명해 보이려는 지식인 중 한 명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사상을 공부하다 보면 취향이라는 게 생긴다. 비슷한 위상에 놓인 지식인들 가운데 관심이 더 가는 이들이 있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미셸 푸코보다는 위르겐 하버마스에, 에릭 홉스봄보다는 토니 주트에, 밀란 쿤데라보다는 움베르토 에코에 더 애착이 간다. 왜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내가 하버마스와 주트와 에코의 사상에 더 깊게 공감하고 그로부터 의식적ㆍ무의식적으로 더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터다.

한국 현대 사상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해온 지식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문학평론가 김종철이다. 요즘에는 생태학자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김종철을 내가 존경하는 까닭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생태사상가이기 때문이다. 더하여, 진리에 대한 그의 태도 또한 내게 작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지식인의 덕목으로 신념윤리를 제시한 바 있다. 행위의 결과에 책임을 지는 게 정치가의 책임윤리라면, 옳고 그름의 진리를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하는 것이 지식인의 신념윤리다. 우리 사회에서 이 신념윤리에 가장 충실한 이로 나는 김종철을 꼽고 싶다. 문학평론가에서 생태사상가로의 지적 여정에서 그와 언제나 함께한 것은 인간과 자연의 존중이라는 지식인의 양심이었다.

문학평론가에서 생태사상가로

김종철은 1947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남대 등에서 가르쳤다. 1970년대 이후 김종철은 백낙청 염무웅 김현 김병익 유종호 김우창 등과 함께 문학평론가로 활동했다. 1978년에는 문학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종철의 문학평론에 대해 김우창은 “주어진 대상의 가능성을 철저하게 검토함으로써 어떠한 결론에 이르려는 그의 논리의 끈기는 당대에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었다고 고평(高評)했다.

김종철이 지식사회에서 관심을 크게 모은 것은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이후부터였다. 그는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의 역할을 맡았고, 생태학과 생명사상 담론을 주도해 왔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1999), ‘간디의 물레’(1999), ‘땅의 옹호’(2008),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2008), 그리고 ‘발언 IㆍII’(2016) 등은 그 동안 김종철이 발표한 저작들이었다.

이 가운데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는 ‘녹색평론’을 펴내면서 쓴 서문들을 모은 것이다. 서문 모음집이라고 해서 이 책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각 권의 ‘녹색평론’을 대표하는 글들인 만큼 김종철 사유의 넓이와 깊이를 엿볼 수 있다. 그는 말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전대미문의 생태학적 재난은 (...)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인 결과로서의 사회적, 인간적, 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 이 지구상에서 사람이 삶을 영위한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하는 진실로 심오한 철학적, 종교적 문제에 직결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어 김종철은 강조한다. “우리와 우리의 자식들이 살아남고, 살아남을 뿐만 아니라 진실로 사람다운 삶을 누릴 수 있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협동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상부상조의 사회관계를 회복하고, 하늘과 땅의 이치에 따르는 농업 중심의 경제생활을 창조적으로 복구하는 것과 같은 생태학적으로 건강한 생활을 조직하는 일밖에 다른 선택이 없다.”

1991년 11월 ‘녹색평론’ 창간호 서문에서 펼친 김종철의 생각이다. 오늘날에도 경청할 만한 주장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외려 설득력이 더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의 ‘책머리에’에서 그는 경고한다. “인간적인 덕성과 자질을 뿌리로부터 부정하는 물신주의의 일방적인 위세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망가지는 인간관계, 그에 따른 인간성의 황폐화... ‘근대의 어둠’은 훨씬 더 깊어졌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91년 녹색평론 창간 당시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녹색평론 창간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에서 다뤄지는 주제들이 이런 생태학적 분석과 처방만은 아니다. 삼풍백화점 붕괴, 외환위기와 IMF 사태, 황우석 사건과 생명공학, 월드컵 거리 응원과 공동체, 그리고 한미 FTA 등에 이르기까지 1990년대 이후 우리 사회를 달궜던 주요 이슈들을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지속 가능한 대안을 모색한다. 길지 않은 서문들의 모음집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근대에 어둠’에 맞서는 생태학적 계몽과 인문학적 비판정신을 선사한다.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위하여

‘발언 IㆍII’는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김종철이 언론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것이다. 두 권으로 이뤄진 이 책은 자연과 인간, 생명과 사회, 미래와 대안에 대해 더욱 원숙한 통찰을 선보인다. 그는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는 (...) 자연과 사회적 약자를 끊임없이 파괴하고 희생시키지 않고는 한 순간도 지탱할 수 없는 이 비인간적인 시스템을 어떻게 벗어날 것이며, 그리하여 조금이라도 더 인간적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문제를 안고 이 암울한 시대를 비통한 심정으로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일 것이다.”

김종철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는 무위당 장일순이다. 장일순은 우리 사회에서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선구적으로 일깨워준 사상가였다. ‘녹색평론’은 장일순의 글들을 모아 ‘나락 한 알 속의 우주’를 편집해 출간하기도 했다. 김종철은 최시형에서 장일순으로 이어지는 생명사상을 서구 생태학 담론과 접목시켜 한국적 생태사상을 모색했다.

김종철의 생태사상은 서구의 ‘심층생태학’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생태학’과 ‘정치생태학’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협동의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관계,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호혜적 경제, 생태적 생활의 조직화다. 우리 사회와 문화 속에서 인간과 자연, 개인과 공동체 사이의 공존 및 공생을 모색하는 생태학적 계몽이 김종철이 추구해온 한국적 생태사상이다.

어느 나라든 사상가에겐 두 그룹의 독자가 있다. 현재의 독자뿐만 아니라 미래의 독자도 존재한다. 김종철은 현재의 독자는 물론 미래의 독자에게 그가 말한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위한 생태학적 메시지들을 타전한다. 우리 사회에선 드문 미래지향적 사상가는 바로 김종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생태사상의 미래

서구 인문ㆍ사회과학에서 생태학은 아르네 네스의 ‘심층생태학’, 머레이 북친의 ‘사회생태학’, 앙드레 고르의 ‘정치생태학’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해 왔다. 심층생태학이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역설한다면, 사회생태학은 의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동시에 강조한다. 그리고 정치생태학은 자본주의 생산 및 소비체제의 급진적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생태사상과 그 대안에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가 공존한다. 단기적 시각에서 볼 때는 생태학적 대안이 원칙은 옳으나 다소 한가로운 이상적인 주장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시각에서 볼 때 생태학적 대안은 이상주의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진정한 현실주의적 주장으로 파악할 수 있다.

녹색평론 서문을 모아 펴낸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

김종철의 생태사상이 갖는 의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오늘날 자본주의가 기존의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나아가, 이 지속 불가능한 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선 무엇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에 대한 우리의 물질주의적 의식 및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하는 것도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은 절박하게 주장한다.

“지금 세계는 벼랑 끝에 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임박한 생태적 파국이다.(...)인간은 자기 자신의 소멸을 자초하고 있는 소행성인지도 모른다. (...) 인간이 지구라는 행성에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절실한 것은 장기적인 비전과 공생의 윤리이다.”

자연 파괴에서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지구의 미래는 암울하다. 장기적 비전과 공생의 윤리를 탐구하는 생태학은 현재의 사상인 동시에 미래의 사상이다. ‘근대의 어둠’을 올바로 인식하며 그 근본적 해결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 ‘정신적 교감의 공동체’를 일궈가야 하는 것은 신념윤리를 가진 지식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나는 생각한다.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김호기의 100년에서 100년으로’는 지난 한 세기 우리나라 대표 지성과 사상을 통해 한국사회의 미래를 생각하는 연재입니다. 다음주에는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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