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 혼동한 듯
소상공인 불복종 움직임, 사회의 뇌관
소득재편하는 ‘부(負)의 소득세’ 검토를

서구사회에서 빈곤의 원인을 파악하는 관점으로 크게 두 가지가 대립한다. 하나는 개인의 능력이 원인이라는 개인주의 관점, 다른 하나는 사회구조가 원인이라는 구조주의 관점이다. 관점이 중요한 것은 빈곤 해소 방법론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로이스의 저서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에 따르면 개인주의 관점에서 빈곤은 지능지수 등 개인 결함 때문에 빚어지고, 업무를 대하는 가치관이나 태도 등의 하자가 원인이다. 구조주의 관점에서 빈곤은 복지제도 등 사회적 결함이 원인으로 권력과 기회, 자원의 불평등한 분배 등에서 유래한다. 우리 사회의 ‘흙수저 금수저’와 유사한 맥락이다.

이들 관점은 인종 민족 국가 등의 문제로 확대되기도 한다. 똑똑하고 잘사는 인종 민족 국가도 있지만 반대 경우도 있다. 미국 이민 사회에서 유대인이나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계가 두각을 나타내는 것을 민족이나 문화적 특성으로 분류하는 ‘빈곤 문화론’의 근거다.

개인주의 관점으로 왜곡한 대표적인 것이 ‘복지 여왕(welfare queen)’이다. 임신만 하고 일하기 귀찮아하는 흑인 10대 미혼모의 이미지다. 로이스는 이런 이미지 때문에 빈곤에 대한 담론이 불평등 차별 일자리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에서 게으름, 사회적 일탈, 복지의존 등의 개인 문제로 옮겨 갔다고 분석한다.

두 가지 관점은 해법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개인주의 관점에서는 빈곤 퇴치를 위해 빈곤층을 개조하고 재사회화시켜야 한다. 노동시장에서 경쟁하는데 필요한 기술과 태도, 동기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구조적 관점에서는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야 한다. 개인주의 관점은 보수, 구조주의 관점은 진보에 가깝다.

지금 우리는 어느 쪽일까. 문재인 정부의 관점은 구조적 관점이 강하다. 우리 사회는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극도로 심화하면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정부는 그래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각종 해법을 동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정치ㆍ사회적 제약으로 힘에 부치는 듯하다. 족집게 정답을 찾지 못한 탓도 있겠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은 을(乙)간 갈등은 물론, 소상공인의 불복종을 유발해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뇌관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인상 외에 다른 대안은 없는 걸까. 우선 정부가 최저임금과 생활임금의 개념을 혼동했거나, 아니면 적어도 혼합했다는 느낌이다. 그렇지 않고선 최저임금을 2년간 29%나 인상하는 것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생활임금은 노동자의 실질적 생활이 가능하도록 법정 최저임금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다.

스위스 핀란드 등에서 추진했던 기본소득은 어떨까. 복지 차원이 아니라 인간 존엄을 유지할 수 있는 기본권으로 일정액을 모든 국민에게 나눠 주는 것이다. 이는 재벌 총수 등 부자들에게도 똑같이 돈을 나눠 줘야 한다는 것에 반감이 많다. 2년 전 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도 전 국민에게 1인당 월 30만원의 기본소득을 주자는 방안이 제시됐지만 연간 180조원에 달하는 재원 때문인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정부 곳간이 화수분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부(負)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ㆍNIT)’가 대안으로 제시되는 모양이다. 소득수준이 면세점에 미달하는 저소득자에게 과세 전 소득과의 차액의 일정 비율을 정부가 지급하는 방식이다. 효과는 기본소득과 유사하나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되고, 그들에게는 기본소득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지 최근호의 분석이다. 복지 전달 과정도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최저임금 인상처럼 소상공인의 불만을 일으킬 소지도 없고 오히려 그들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우리도 근로장려세제(EITC)가 있으나 여러 제약조건이 붙어있다. OECD도 NIT가 기본소득보다 저소득층에 훨씬 나은 방법일 것이라고 분석했다니 정부가 진지하게 확대 적용을 검토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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