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생이 퀴즈 문제를 푸는 공영방송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해, 답을 쓰는 칠판에 어떤 문구를 썼다. 방송 내내 모자이크되어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유발했던 문구는 바로 ‘동일범죄, 동일처벌’이었다. 이 문구를 모자이크 처리한 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가는 사이, 과거에는 혐오 표현이 별다른 처리 없이 전파를 탄 일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혐오 표현이 아닌 여성주의적 의미를 담은 구호가 지워질 때, 속어가 섞인 혐오 표현은 버젓이 공영방송 화면에 잡힌다. 모자이크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없는 것이다.

내용 외에도 차이가 있는 부분이 하나 더 있다. 그건 바로 성별이다. 만약 실제와 반대로 남학생이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적고 여학생이 혐오 표현을 적었다면 어땠을까? 제작진의 해명대로 ‘첨예하게 주장이 엇갈리는 정치적ㆍ종교적ㆍ문화적 이슈’이기 때문에 똑같이 전자만 모자이크되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와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을 근거로 모자이크가 성별을 근거로 한 편견과 차별이 아닌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불법 촬영물과 이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련의 일들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사건이었다면, 여성들은 이를 차별이라고, 편파 수사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동일 범죄에 동일 수사를 하고 동일 처벌을 내려라’라는 여성들의 주장이 나오게 되기까지는 많아도 너무 많은 근거가 될 만한 사건이 앞서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왔다. 불법 촬영물 피해자 여성이, 이들을 돕는 활동가가 수사를 요구할 때 지금까지 경찰은 어떤 대답을 했는가? 불법 사이트에서 술 취한 여성에 대한 강간 모의가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많은 여성이 수사를 요청할 때 경찰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아직도 떠돌아다니는 셀 수 없이 많은 화장실을 비롯한 공공장소 불법 촬영물에 정부와 경찰은 어떤 대처를 해 왔는가? 이 땅에 사는 여성들의 삶이 포르노로 소비될 때, 경찰은 무엇을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다 나와 있고, 바로 그 대답을 근거로 여성들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동일하게 수사하고 동일한 처벌을 내릴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여성이 모여 앉아 한목소리로 불법 촬영 편파 수사를 규탄하고 엄정하고 동일한 수사를 해 줄 것을 요구한다고 해도 경찰이 이 목소리를 듣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제야 막 시작된 경찰의 엄정한 수사의 본보기로 여성부터 수사할 때, 당신은 그 대상이 ‘하필이면’ 여성이었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번 워마드 운영자 체포 영장 발부 소식이 편파 수사가 아니라고 말하기엔, 그렇다고밖에 말할 수밖에 없는 많은 근거가 있다. 지금까지 음란물 유포 방조죄 건과 관련하여 단 한 건이라도 남성 혐의자에게 국제 공조 수사를 의뢰할 정도의 성의를 보여 왔다면, 여성들이 이토록 분노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불법 촬영물 유포로 극심하게 고통받고 심지어 목숨을 끊는 여성들을 지켜 보아 온 살아남은 여성들은, 수사가 이렇게나 신속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게 한 사건부터 이번 사건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받는 사회적 메시지는 동일하다. 대한민국은 여성에게 공정한 사회가 아니다. 이 사회는 여성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하여 ‘나는 워마드가 아니지만’이라는 단서를 달 생각이 없다. 일베를 비롯해 불법 촬영물과 음란물이 버젓이 올라오고 유포되는 수많은 사이트보다 워마드를 먼저 엄정하게 수사하는 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순서라면, 여성인 나는 언제나 남성보다 먼저, 더 많이 처벌받는 잠재적 워마드이며 다음 워마드일 것이기 때문이다. 경찰의 공정한 수사를 촉구한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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