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선생님, 거기 잘 도착했어요? 나는 여기 있어서 그걸 잘 모르겠네요. 모르면 만날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난 왜 이렇게 무식하지? 그랬는데, 그때마다 선생님은 아니다, 너처럼 옳은 애를 내 못 봤다 그랬는데, 그때마다 아는 애가 아니라 옳은 애라고 해 줘서 나는 그게 참말 좋고도 겁났는데, 그러니까 그 옳다라는 말, 내 보기에 그리 옳을 것도 없는데 옳다고 자꾸 그러니까 왠지 옳아야 할 것 같아서 되도록 옳은 것을 좇게 한 어떤 ‘태도’란 걸 선생님 덕분에 나는 선생님이 좋아하는 여름 민어의 부레만큼이나 될까 싶게 아주 조금 배운 와중이었는데, 그런데 다 가르쳐 주지도 않고 어디로 가셨을까, 우리 선생님. 몰라요. 나는 호기심 천국인데, 세상살이는 나날이 의문투성이인데, 그래서 물어볼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선생님은 또 이렇게 고아를 알아야 한다고 고아의 심정을 가르쳐 주네요. 선생님은 또 이렇게 선생이네요.

전화를 해도 안 받으니까 나는 그게 아주 섭섭해서 휴대폰에 남은 선생님 문자랑 이메일에 남은 선생님 편지나 다시 열어 보는 참이네요. 선생님과의 인연은 2005년부터였지요. 그때 나는 ‘문예중앙시선’을 만들고 있던 터라 비교적 자주 선생님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는데 이유는 분명했지요. 시인들더러 시집 해설 누구에게 부탁할까요? 하면 대부분이 가장 먼저 황현산, 이라는 이름을 불러냈으니까요. 그 시절에 꽤 쓰셨지요. 특히나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먹기 힘들다는 식의 ‘난해’라는 이름으로 묶인 젊은 시인들의 시를 정확하면서도 열렬히 읽어 주셨지요. 그렇게 우리들 가운데 ‘완전 소중 황현산’이라는 친구로 술자리마다 밥자리마다 커피자리마다 있어 주셨지요.

2015년의 황현산 전 문예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기억하세요? 이게 시냐 뭐냐 온갖 말들을 듣게 했던 내 첫 시집을 읽고 보내 주신 글 속 이 구절이요. “괘념치 마라, 네가 너무 일찍 썼다.” 그때부터였을 거예요. 씰룩씰룩 특유의 오리 엉덩이 걸음이시던 선생님의 뒤를 미운 오리 새끼처럼 졸졸 따라다녀야지 결심한 순간이요. 그런 가운데 만들게 된 선생님의 저작들. 출판사 로고만 있을 뿐 책은 하나 내지도 않았던 시절에 선생님 글 좋아하니까 무조건 선생님 책 낼래요, 했던 내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러도록 하자, 했던 선생님. 그렇게 나온 선생님의 첫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2013)가 널리 읽혀 나날이 바빠진 선생님이 어느 날 아파져서 내가 몹시 슬픈 마음에 제발 그 트위터 좀 그만하시라니까요, 하니까 소통은 필요하다, 했던 선생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엄살 아닌 통증의 그 흔한 아, 소리 한번을 안 내던 선생님. 아프신 가운데에서도 정의롭지 못한 우리 세상 구석구석에 눈길을 두시고 글길을 트셨던 선생님. 제발 그만 좀 쓰고 쉬시라니까요, 할 때마다 이건 일도 아니다, 했던 선생님. 이게 일이 아니면 뭐가 일인가요, 할 때마다 큰일들은 다들 하고 있다, 했던 선생님. 그렇게 마지막 저작인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2018)의 서문을 보내며 보태신 말씀에 나는 그만 엉엉 울어 버렸다지요. “며칠 전 밤에 쓰러졌다. 회복 중. 또한 쓰고 있는 중에 완성. 민정아, 이제 서문 보낸다. 내게 힘이 없으니 글에도 힘이 없구나.”

황현산 전 문예위원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새 책에 사인하시기를 즐겨 했던 선생님에게 하트도 하나 그려 주세요, 했던 날이 있었지요. 별도 그리고 달도 그리고 꽃도 그리시던 선생님이라 졸랐던 건데 선생님이 그러셨지요. 하트는 가끔 그리도록 하자. 나는 그 말이 너무 예뻐서 휴대폰 바탕화면에 한동안 새겨 두기도 했다지요. 그리고 떠나시기 얼마 전 내게 새 책을 펴서 사인을 해 주신다며 펜을 쥐셨는데 끝끝내 그려 달라는 하트는 안 그려 주시고 내 이름인 듯하나 모두의 이름인 듯한 모음과 자음을 나열하시고 황현산이라는 이름인 듯하나 웬일인지 하하, 라는 두 글자를 남기셨다지요.

하하… 끝내는 이렇게 웃다 우는 법까지 가르쳐 주시고 끝끝내 울다 웃는 법까지 알게 하실 선생님, 하여간에 뭘 자꾸만 가리켜서 가르치는 선생의 달인인 선생님! 독일에 있는 시인 허수경 언니가 그러는데요, 우주의 시계는 지구의 시계와 다르대요. 그러니까 잠시 장에 간 거라고 생각하래요. 그 말을 들으니까 힘이 막 났어요. 거기 잠깐만 계세요. 여기 잠깐만 있을게요. 그리고 우리 곧 만나요, 선생님.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문화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