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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못 가진 자를 잡아먹는 ‘괴물’들의 세상... 치정극 형식으로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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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못 가진 자를 잡아먹는 ‘괴물’들의 세상... 치정극 형식으로 그려

입력
2018.08.10 04:40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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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작가. 21세 때인 2005년 등단했다. ‘뉴(N.EW)’가 7번째 장편소설. 2016년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살며 글을 쓴다.“빈부 격차며, 인종 문제며, 미국 분위기가 험악해 돌아올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사과 작가. 21세 때인 2005년 등단했다. ‘뉴(N.EW)’가 7번째 장편소설. 2016년부터 미국 뉴욕 맨해튼에 살며 글을 쓴다.“빈부 격차며, 인종 문제며, 미국 분위기가 험악해 돌아올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불륜 소설이죠.” 9일 전화로 만난 김사과(35) 작가는 새 장편 ‘뉴(N.E.W)’를 그렇게 정리했다. 치정이라니, 김사과라는 이름에서 ‘청춘의 대변자’라는 수식어를 걷어낼 때가 온 걸까. 2005년 데뷔한 김 작가의 초기 소설은 폭력, 살인, 공포, 광기, 실험 같은 성분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청춘의 분노를 내지르는 김 작가의 화법이었다. 2013년 낸 장편 ‘천국에서’에서 돌연 발작을 멈추더니, 이번엔 한결 순해졌다.

어디까지나, 스타일이 그렇다는 얘기다. 소설엔 영아 살해, 존속 살해, 신체 훼손부터 식인까지 나온다. 그걸 묘사하는 대신 불친절하게 암시한다. 김 작가가 잔혹함을 포기한 게 아니라, 더 선연하게 드러내는 방식을 탐구 중이어서다. “잘 짜인 심리 묘사를 하면 폭력을 자극적으로 표현하지 않고도 굉장한 임팩트를 줄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번 시도해 봤는데, 재밌었다. 나는 사실 영화의 잔인한 장면 같은 걸 되게 못 보는 사람이다(웃음).”

소설은 괴물들의 이야기다. 재벌이라는 직함 덕에 상식, 윤리, 금기를 지킬 의무를 면제받은 괴물. 1대 괴물은 오손그룹 회장 정대철, 2대 괴물은 아들 정지용이다. 대철은 회사 남자 직원들과 바람을 피우고, 부인은 자살한다. 지용은 학자 가문 출신 엘리트 최영주와 정략 결혼한다. “시아버지가 호모섹슈얼이면 며느리한테 집적거릴 일도 없을 거 아니니?” “어머니로서의 특성이 증발된” 영주의 어머니가 결혼을 밀어 붙인다. “우주선에 태워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닥치고 타야 한다. (…) 누구든지 다 짓밟고 조종석을 차지하고 말 거니까.” 영주도 동의한다.

김사과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남궁선
김사과 작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남궁선

지용과 영주의 관계는 껍데기다. 영주가 임신하자마자 지용은 BJ 이하나에게 빠진다. 사랑을 느껴서가 아니라, “잘 먹고 아주 잘 자는 성격 좋은 커다란 개” 같아서다. “장 보러 가는 젊은 아주머니처럼” 촌티 나는 하나에게 지용은 “톱의 세계로 가는” 초고속 황금마차다. “저년은 대체 얼마짜리지?” 세상은 하나를 조롱하고, 하나는 지용의 돈에 중독된다. 영주는 지용의 불륜 사실을 양가에 알린다. 돌아온 반응은 ‘그래서?’ “나는 최상급 암소에 불과할지도 모른다”고 영주는 깨닫지만 이내 눈을 꽉 감기로 한다.

지용은 영주와 하나 사이를 오간다. 오가는 규칙은 단 하나, 짜릿함이다. 갈등이라곤 느끼지 않는다. “최영주가 본인이 주장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제일 잘난 여자라면, 일반인들의 윤리와 상식 또한 뛰어넘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용은 그렇게 믿는다. “지겹지도 않은 듯이 계속해서 멍한 표정을 짓는” 그는 괴물 중의 괴물이다.

재벌가 막장 통속극이 소설 하반부까지 이어지고, 순식간에 ‘김사과극’으로 전환한다. 괴물들이 본색을 드러내면서다. “아버지, 저희를 위해 죽어주시면 안 되나요? (…) 아버지에게 드리는 제 유일한 부탁이에요.”(지용) “아들아, 나는 네가 영주를 잡아먹는 꼴을 보고 싶다. 네가 그 녀석을 호로록 삼키는 걸, 챱챱 씹어 넘기는 걸, 꿀꺽 넘기는 꼴을 보고 싶단 말이다.”(대철) 승자는 역시나 지용. 대철은 지용의 손에, 지용의 후계자인 아들은 영주의 손에 죽는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지용은 하나의 팔을 잘라 맛본다. “맛있었어요.”(지용) “고마워요, 맛있게 먹어줘서…”(하나) 못 가진 자의 비극은 존재 자체를 잡아먹혀야 끝나게 마련이라는 걸 직설적으로 은유했다.

김 작가는 왜 ‘불륜’을 썼을까. “3각, 4각 관계라는 구도가 줄 수 있는 충격이 엄청나다. 그 자체로 독자를 몰입시키고 마음을 흔든다. 마음을 뺏고 빼앗기는 일들이 어떤 폭력보다 자극적이다. 예컨대 내가 짝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보고 웃는 걸 보면 굉장히 충격적이지 않나(웃음). 최영주라는 이름도 4각 관계를 그린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따왔다.”

소설은 술술 읽힌다. 이야기는 빠르고 문장엔 장식이 없다. 김 작가 특유의 문체 실험도 거의 하지 않았다. 경쾌한 냉소로 인물들을 비트는 부분에선 피식 웃음이 터진다. “이 또라이X은 왜 그렇게 프릴에 집착하는 것일까? 전생에 재봉틀이었나?”, “매우 가볍고 얇은 소재로 된 슈트가 정 회장의 몸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꼭 맞아서, 언뜻 봤을 때 아주 비싼 내복을 입고 있는 듯했다” 같은 대목에서다. 단, 작가가 사실상의 화자로 등장해 사회를 열렬히 비판하는 몇몇 부분은 몰입을 방해한다.

뉴(N.E.W)

김사과 지음

문학과지성사 발행∙287쪽∙1만3,000원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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