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서울 영등포 119대원들이 영등포 쪽방촌 일대에 물을 뿌리며 지열을 식히고 있다. 류효진기자
폭염 사회
에릭 클라이넨버그 지음ㆍ홍경탁 옮김
글항아리ㆍ472쪽ㆍ2만2,000원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다. 없는 듯 있는 존재로서 알게 모르게 사람들 목숨을 빼앗는다. 담배라고 생각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하지만 에릭 클라이넨버그 뉴욕대 사회학과 교수가 가리키는 이 ‘연쇄살인마’는 폭염이다. 무엇이든 때려부술 듯한 기세로 요란하게 왔다 가는 허리케인에 대해선 사람들이 경계심을 갖지만, 정작 허리케인보다 더 치명적인 기상현상이 폭염이라는 것이다.

40℃를 웃도는 여름날씨가 지속되자 정부는 재난 상황으로 받아들이며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에어컨 가동 등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누진제를 손질하고 있다. 여러 물음표가 꼬리를 문다. 전기요금 경감이 얼마나 가계에 도움을 줄까, 에어컨 자체가 없는 취약계층은 누진제 변경으로 어떤 혜택을 받는 것일까, 취약계층이 여름철 생존을 위한 필수 전자제품이 된 에어컨을 구입할 때 국가 보조금을 지원받아야 하나….

폭염에 대한 국가적 대책을 세운다고 하나 역시 힘없고 가난한 자가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제아무리 더워지고 추워진다고 해도 계층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있거나 젊은 사람이 날씨 때문에 목숨을 잃을 확률은 낮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폭염은 가난처럼 나라도 어찌하지 못하는 걸까. 클라이넨버그의 저서 ‘폭염사회’는 사회에서 실현 가능한 답을 넌지시 제시한다.

책은 1995년 미국 시카고의 유난했던 더위에 초점을 맞춘다. 1995년 7월에 덮친 불볕 더위로 시카고의 사망자 수는 급상승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7월 14~20일 사망자 수는 평소보다 739명이 많았다. 당시 시체안치소에는 시체가 쏟아져 들어왔고, 보관 가능한 최대치인 222구를 수백 구나 초과했다. 한 지역육류포장업체 대표가 자진해서 제공한 냉동트럭에 시체를 보관할 정도로 죽은 자들이 넘쳐 났다.

'폭염 사회' 표지. 글항아리 제공

폭염 탓만 할 일은 아니었다. 저자는 ‘사회적 병인’도 중요하다고 봤다. 조사 결과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 차별 및 불평등의 지형도와 대부분 일치했다”. 유색인종이 몰려 사는 빈곤 지역일수록 폭염 피해가 컸다. 가장 높은 사망률을 보인 지역 10곳 중 8곳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사는 곳이었고, 빈곤한 노인들이 폭력 범죄를 피해 집에서 더위를 참고 지내다 숨진 사례가 집중된 곳이기도 했다. 너무 뻔한 결론이라고?

책은 한발 더 나간다. 취약계층들이 몰려 사는 곳이라고 폭염 무방비 지대가 아니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많이 살고 노인 비중도 높은 오번그레셤이라는 지역은 부유층이 사는 지역보다 오히려 폭염 피해가 덜했다. 공동체가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오번그레셤 사람들은 누가 어느 곳에서 어떻게 사는지 잘 알기에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서로를 격려했다. 요컨대 재난은 사회적 요인에 의해 커질 수도 작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책은 폭염과 사회적 요인의 관계와 결과를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집요하게 파고든다.

원제는 ‘Heat Wave: A Social Autopsy of Disaster in Chicago’다. 부제를 번역하면 ‘시카고 재난에 대한 사회적 부검’이다. 어느 정도 기온이 높이 올라 사람이 얼마나 죽었고, 전기소모량이 얼마나 늘었으며 가구당 전기요금 부담은 얼마나 커졌냐는 수치에 대한 책이 아닌 셈이다. 재난의 이면을 들여다보고 사회가 재난의 파괴력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이번 폭염이 지나가면 우리 사회도 이런 연구를 해야 하지 않을까.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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