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어만 허용” 민족국가법 논란 거세질 듯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아랍계 시민들과 인권단체 회원들이 ‘유대민족국가법’을 주도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스라엘의 한 아랍계 의원이 아랍어로 의원직 사퇴서를 작성해 제출했다가 의회로부터 거부당했다. 유대 민족의 언어인 히브리어로 쓰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스라엘을 ‘유대인의 배타적 민족국가’로 규정, “이 나라 인구의 20%인 아랍인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지난달 의회를 통과한 ‘민족국가법’이 야기한 갈등이다.

8일(현지시간) 예루살렘 포스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아랍계인 와엘 유니스 의원은 이날 율리 에델슈타인 의회 대변인에게 서한을 보내 의원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통보했다. 소속 정당의 ‘의원직 교대 원칙’에 따라, 다른 동료에게 자리를 넘겨주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그의 사퇴서는 곧바로 반려됐다. 해당 서한이 아랍어로 작성된 사실을 문제삼으면서 에델슈타인 대변인이 서명을 거부해 버린 것이다. 에델슈타인 대변인은 “아랍계 의원들은 내가 모르는 언어로 서한을 쓰는 꼼수를 쓰려 했다”며 “아랍어를 존중하긴 하지만, 내가 읽을 수도 없는 문서에 서명을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유니스 의원은 히브리어로 사퇴서를 써야만 의원직을 사임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다.

유니스 의원은 즉각 반발했다. 그는 “단지 아랍어로 작성됐다는 이유로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 대변인이 나의 사퇴서에 서명을 거부해선 안 된다”며 “아랍어의 지위가 강등됐음을 실질적으로 보여 준 사례”라고 말했다.

이번 충돌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민족국가법이 지난달 19일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주도하에 의회를 통과할 때부터 예고됐던 일이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들의 조국이며, 그들만이 민족 자결권을 지닌다’고 규정한 이 법은 히브리어와 함께 공용어였던 아랍어를 ‘특수 지위’ 언어로 격하시키고, 히브리어만을 국가 공식 언어로 지정했다.

더 많은 유대인을 정착시켜 공동체를 설립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스라엘 인구 900만명 가운데 180만명을 차지하는 아랍인이 공공서비스, 교육 등에서 차별을 겪는 현실에서, 아예 법적으로 ‘2등 시민’임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때문에 ‘아랍어 사퇴서’ 파동은 민족국가법 관련 논란에 다시 불을 지필 전망이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해당 법안을 반대했던 레우벤 리블린 이스라엘 대통령이 아랍어를 격하하는 취급에 반대하는 의미로 ‘아랍어판 법안’에 서명하겠다는 의사를 비공식적으로 밝혀 온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또 이스라엘의 아랍계 지도자들은 전날 고등법원에 “민족국가법은 인종차별적, 식민주의적, 불법”이라면서 반대 청원을 내기도 했다.

김정우 기자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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