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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환 칼럼] 신음하는 지구, 생태민주주의는 숙명이다

입력
2018.08.09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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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아니 지구가 뜨겁다. 지난 몇 주에 걸쳐 북반구 여기저기서 40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으로 인해 수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생명을 잃었고 수만 명의 사람들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기록적인 열파에 수많은 가축과 양식 어류가 폐사하고 대량의 농작물이 가뭄에 타 들어가는 등 재산상의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극지방 및 고지대의 만년설과 빙하가 빠르게 녹아내리고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이 온난화를 부채질 하고 있다는 환경재난 뉴스에 접하노라면 우리의 유일한 삶의 터전인 지구가 더 이상 안전한 곳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구심을 품게 된다. 게다가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는 조속히 다른 행성을 개척할 필요가 있다는 고 스티븐 호킹 교수의 경고가 불현듯 뇌리를 스쳐 지나가기라도 하면 순간적으로 묵시록적인 종말의 공포에 휩싸이기도 한다. 지구의 대기가 더 뜨거워지면, 이 지구와 우리 자손들의 미래는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산업혁명 이후 화석연료에 기반 한 비약적인 산업발전으로 인류의 생활수준은 극적으로 향상됐다. 하지만 자연에 대한 인간의 무분별한 착취는 지구생태계를 회복불가능 할 정도로 파괴하여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은 과거의 산업발전 모델을 답습하고 있고, 선진 산업국들 역시 과거의 성장주의 모델을 청산하지 못하고 있어서 상황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생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가? 이른바 ‘기술적 해법(technological fix)’을 지지하는 기술만능주의자들은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여 위기에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후천성면역결핍증(AIDS)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性)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태도를 바꾸는 것보다 백신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식이다.

지구생태계가 날로 악화되고 있는 점을 감안해보면 ‘기술적 해법’의 현실적 타당성을 부인하기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을 공존의 파트너로 인식하며 환경 친화적인 생활방식을 추구하도록 변화시키는 전략은 인간의 본성과 사안의 긴급성을 볼 때 실효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여 환경오염과 온난화의 속도를 대폭 늦추거나 중단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하지만 ‘기술적 해법’은 과연 믿을 만한가? 새로운 기술 개발이 최선의 해결책이라면 그 동안 기술이 꾸준히 발전해왔음에도 생태환경 위기가 더 심화되어온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기술의 개발 단계에서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했거나 기술을 활용하는 인간의 의도나 방법이 그릇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기술적 해법’과 윤리적ㆍ정치적 해법을 엄격히 분리시켜서는 생태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태민주주의는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생태민주주의는 상호 존중과 소통의 원리를 생태자연에까지 확장시킨 민주주의 형태다. 그것은 환경 관련 이익이나 부담의 분배, 환경 위험의 제거, 쾌적한 환경의 유지와 향유 등 기존의 인간주의적인 환경관리 차원을 훨씬 넘어선다. 그것은 미래의 인류와 다양한 생물 종, 그리고 전 지구적인 생태환경을 윤리적ㆍ정치적 판단의 중심에 끌어들임으로써 개인적ㆍ집단적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류와 생태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을 추구한다. 따라서 탈 인간중심적이며 탈 국가주의적인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생태민주주의는 지구생태계의 위기에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생태자연의 보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공감하는 모든 개인들과 집단 그리고 국가들의 연대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지구적 민주주의로 나아간다. 동시에 생태자연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정치세력과 지구적 시민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각 지역의 주민자치운동, 여성운동, 평화운동과 연대를 구축함으로써 파급력을 극대화시키고자 한다.

친환경 에너지와 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현대 국가와 기업의 행태는 이미 국가와 기업이 생태자연의 요구에 어느 정도 반응하고 있다는 좋은 증거다. 하지만 국가와 기업의 친환경 행보는 아직 환경오염과 생태위기에 공포를 느끼는 수많은 개인들의 안전 욕구에 편승한 정략적ㆍ상업적 반응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생태 위기에 대한 기술적ㆍ정책적 대응들이 생태자연의 균형 회복과 지속가능한 발전에 진정으로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생태적 가치관과 윤리관에 기반 한 전 방위적인 사회ㆍ정치ㆍ문화운동과 접목될 필요가 있다. 안전한 삶과 삶의 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생태민주주의의 구현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심리적 기반이다.

가까운 미래에 지구적 생태위기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마법 같은 신기술이 개발될 것이라고 그 누가 100% 자신할 수 있는가? 생태민주주의는 더 이상 헛된 몽상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인류의 숙명이다.

김비환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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